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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놈, 미국을 엿보다(54) / 볼더의 <GREEN ROCK>
게시물ID : travel_2754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2막인생
추천 : 0
조회수 : 57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9/07/18 23: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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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글을 쓰다보니 문득 나름대로 자세히 쓴답시고 쓴 글이 보는 이들에게는 불편할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들었다. 그래서 글을 한참 건너 뛰고 옮기기로 했다.
 
 
볼더 체류 막바지에 발견한 <GREEN ROCK>
    
볼더는 장엄한 로키산과 그 산맥을 뒤로 하고 앞으로는 광활한 평원이 끝없이 펼쳐진 도시이다. 그 동안 평원이라 할 도시 주변은 거의 매일 돌아다니며 볼더를 엿보았는데 산은 <RED ROCK>를 올라본 것이 전부였다. 분명 도시의 뒤쪽으로 거대한 산이 웅장하게 자리하고 있지만 등산로를 알 수 없었다. 아들은 학업에 바쁜 탓에 그리고 며느리는 혼자 산행을 할 수가 없었기에 등산에는 관심이 없었다. 따라서 아들 내외도 나의 바람에는 아무 도움이 되지 못했다.
늘 그랬듯이 이 날도 혼자 길을 나서 다시 RED ROCK>을 등산하기로 했다. 혹시 가다가 또 다른 등산로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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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입구에 이르니 띄엄띄엄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을 따라가면 길을 엉뚱한 곳으로 드는 일은 없을 것이므로 부지런히 산을 올랐다. <붉은 바위>는 지난번에 올라가 보았으므로 그저 한 번 올려다보는 것으로 스쳐 지났다. 산은 거대한 산의 끝부분에 해당했기 때문에 아직은 등산로가 완만했으며 계속 아래로 이어지고 있었다. 야트막한 고개를 넘고 보니 그 너머에는 넓은 도로가 있고 자동차들이 신나게 달리고 있었다. ‘이건 뭐지? 또 엉뚱한 곳으로 왔나?’ 하는 생각이 들어 되돌아가야 하고 생각하는 차에 도로 너머 산에서 두어 사람이 나오는 것이 보였다. 저쪽에 또 등산로가 있는 모양이구나 하는 생각에 무작정 산을 내려가서는 대로를 건넜다. 그런데 이게 어쩐 일인가? 지도에서 보았던, 지금까지 엉뚱한 곳에서 헤매었던 <GREEN ROCK>으로 들어가는 입구였다. 혼자 환호를 지르며 성큼 산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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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등산로 입구에 들어서자 혼란에 빠졌다. 길이 두 갈래로 나뉘어져 있는데 왼쪽은 급한 산으로 이어지고 있었고, 오른쪽은 완만한 산책로로 이어지고 있었다. 우선은 길을 잘 모르기 때문에 산입구에 설치된 등산로 지도를 보아도 잘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우선 오른쪽 길로 오르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제껏 길을 걷다가 갈래 길이 나오면 이상하게도 십중팔구는 엉뚱한 길로 들어섰었다. 확률이 50%이면 절반을 맞추어야 할 텐데 내 경우는 그야말로 확률을 철저히 무시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10여분을 오르다보니 길은 계속 완만하게 이어져서 산책로로 적합해 보였다. 다시 오던 길을 되돌려 이번에는 왼쪽 길로 들어섰다. 그곳은 처음부터 길이 가팔랐다. 등산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따가운 햇살도 숲속에서는 그저 온화하게 느껴질 정도로 시원한 바람과 그늘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땀을 닦을 일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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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산을 오르자 거대한 바위들이 나타났는데 신기하게도 대부분의 거대한 바위들이 푸른 이끼를 몸에 두르고 있었다. 그래서 이곳을 <GREEN ROCK>이라고 부르는 모양이었다. 등산로는 주변의 나무뿌리들이 땅 위에서 촘촘히 얽힌 채로 산을 움켜쥐고 있는 곳이 많았다. 그런 뿌리들 덕분에 등산로는 마치 계단처럼 되어 있어 산을 오르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언젠가 중앙교육연수원에 강의를 하러 갔다가 점심시간에 잠깐 올라본 우면산이 꼭 그랬다.
이곳저곳 사진을 찍기도 하고 발아래로 펼쳐지는 볼더의 대평원을 내려다보기도 하며 천천히 올랐다. 가끔씩 등산객들이 내 옆을 바람처럼 스쳐 지나기도 했다. 그때마다 그들은 내게 가볍게 미소를 보내주기도 했고, ‘hi’ 라고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아무도 무심하게 그저 스치는 사람은 없었다. 어쩌다 내려오는 사람과 마주쳐 길을 옆으로 비켜주면 모두가 하나 같이 ‘excuse me’ 또는 ‘thank you’라고 인사했다. 나도 그런 그들에게 어느 순간부터 ‘you’re welcome’ 하고 답했다. 그런데 그 말이 적절한 말인지는 지금도 사실 잘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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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네 집엘 간다고 한 해 전부터 영어회화 공부를 나름대로 했으나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에 내리는 순간 그 동안 내가 뭘 했는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물론 연식이 오래된 탓에 외워도 금방 잊어버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뭐라도 한 마디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기도 했으나 그대는 그저 기대일 뿐이었다. 공항에서도 내가 꿀 먹은 벙어리임을 알자 직원은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 ‘no problem’라고 말해 준 것을 겨우 알아들은 정도였다. 그러니 산길에서 마주치는 사람에게 뭐라도 적절한 인사말을 해주고는 싶었지만 그저 벙어리 냉가슴 앓듯할 뿐이었다.
산허리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눈이 가물거리도록 끝없이 펼쳐진 평원을 내려다보았다. 환상적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표현 같았다. 온통 녹색의 향연이었고, 그 사이로 알알이 박힌 집들이 한껏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시 중심부에만 겨우 제법 높은 건물이 보일 뿐 대부분의 지역은 집이 있는지 없는지도 잘 모를 지경이었다. 집은 숲과 공존하고 있었다. 이곳 사람들에겐 자연 보호가 아니라 자연과 함께, 즉 공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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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잔디 깎기를 제외하면 자연을 인위적으로 손질하지도 않는 것 같았다. 산 아래로 겨우 보이는 길을 따라 그 동안 내가 걸었던 곳들을 가늠해 보았다. 시의 중심부와 숲의 오른쪽에 위치한 콜로라도 대학교 볼거 캠퍼스를 제외하면 도무지 위치를 가늠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우리의 관리들이 이곳에 오면 시야를 가린다고 시내의 모든 수목들을 싹뚝 잘라버리지나 않을까? 우리는 뭐든 시원시원하게 보여야 하니까 말이다. 그래서 내 주머니 것은 꽁꽁 숨겨도 남의 주머니는 들여다 보아여 속이 시원한 모양이다. 요즈음은 자고 나면 남의 주머니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 바람에 요즈음은 가진 자들의 수난시대이다.
산을 오르다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우리의 경우 동네 뒷산만 올라도 모두 등산복을 입고 간다. 물론 등산화는 필수이다. 그래서 산은 온통 등산객들로 인해 울긋불긋하다. 계절에 관계없이 산은 사시사철 가을 산 같다. 그런데 이곳에서 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아무도 등산복을 입지 않았다. 고작 동네 뒷산 정도를 가는데 뭐 거창하게 등산복을 입고 가느냐는 모양이었다. 20대로 보이는 젊은 여자는 아예 핫팬티와 티셔츠 차림이었다. 그리고 조금 전 스쳐 지난 40대쯤의 남자는 편안한 반바지 차림이었다. 티 나게 등산복을 입고 있는 사람은 나 혼자였다. 그 사람들은 그런 나를 향해 별 웃기는 사람 다 있다고 속으로 웃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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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등산 붐을 타고 등산복이 불티나게 팔린다. 등산복은 이제 일상복이 되어 등산뿐만 아니라 야유회며 해외여행 때도 히말라야 등정을 하는 것도 아닌데 입고 간다. 적어도 나들이를 간다고 하면 폼 나는 등산복을 입고 나서야 체면이 좀 서는 것 같기도 하다. 우리에겐 실리보다는 언제나 명분이 앞선다. 명분 없는 일은 사회적 지탄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 놈의 명분이 한 때 나라를 어지럽힌 일도 부지기수였다. 오늘날 명절 차례도 사실은 그러한 명분론의 한 자락이라고 생각된다. 우리에겐 아직도 명분을 중시하던 과거 문화가 잔영처럼 우리의 핏줄을 타고 흐르는 모양이다.
한참을 산 아래를 내려다보며 생각에 젖어 있는데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금 어디에 있는지 위치를 알려주면 차를 가지고 오겠단다. 늦은 시간에도 돌아오지 않으니 걱정이 되었던 모양이었다. 볼더에서는 6월인데도 해가 9시쯤이 되어서야 지는 듯 했다. 지금은 6시 경. 그러니 아직도 해가 중천이다. 그래도 저녁은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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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내가 지금 어디에 있지? 볼더 계곡에서 <RED ROCK>을 거쳐 산을 넘어왔으므로 아들에게 위치를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내가 있는 곳을 내가 모르다니. 참으로 황당했다. 어떻든 내려가는데 30분 정도가 소요될 것 같으니 30분 후에 주변을 살펴보고 표시가 전화를 하겠다고 했다. 내려와서 보니 등산로 입구는 볼더 시립 병원 바로 옆이었다. 아들과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가보고 싶었던 산을 하루 종일 돌아다닌 덕분에 기분이 좋아 진 내게 피곤은 접근을 꺼리고 있었다. 종일 산을 걷고 산 아래 볼더를 내려다보는 동안 짐짓 조선시대 김정호의 심정이 혹시 이렇지 않았을까 하는 염치없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었다. 그 탓이었을까? 식구들과 저녁을 겸해 집 주변에서 들이킨 맥주 맛이 기가 막혔다. 마치 세상이 목을 타고 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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