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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내 귀를 비우고 싶네
게시물ID : lovestory_8807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2
조회수 : 28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9/07/25 07:54:44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pvZSiQXHL_E






1.jpg

김경주저녁의 염전

 

 

 

죽은 사람을 물가로 질질 끌고 가듯이

염전의 어둠은 온다

섬의 그늘들이 바람에 실려온다

물 안에 스며 있는 물고기들

흰 눈이 수면에 번지고 있다

폐선의 유리창으로 비치는 물속의 어둠

선실 바닥엔 어린 갈매기들이 웅크렸던 얼룩

비늘들을 벗고 있는 물의 저녁이 있다

멀리 상갓집 밤불에 구름이 쇄골을 비친다

밀물이 번지는 염전을 보러 오는 눈들은

저녁에 하얗게 증발한다

다친 말에 돌을 놓아

물속에 가라앉히고 온 사람처럼

여기서 화폭이 퍼지고 저 바람이 그려졌으리라

희디흰 물소리죽은 자들의 언어 같은

빛도 닿지 않는 바다 속을 그 소리의 영혼이라 부르면 안 되나

노을이 물을 건너가는 것이 아니라 노을 속으로 물이 건너가는 것이다

몇천년을 물속에서 울렁이던 쓴 빛들을 본다

물의 내장을 본다







2.jpg

맹문재이자의 거리

 

 

 

이자의 추락으로 즉사한 한 가장의 사건을

텔레비전에서 특집으로 다루었다

이자학과 대학교수며 이자 전문가며 이자 실무자들이

방송에 출연해 긴급 토론을 벌였다

어떻게 하면 이자의 추락으로부터 피할 수 있는지

이자의 파편을 막을 수 있는지

부상당한 경우는 어떤 비상조치를 취해야 하는지

논의가 분분했다

간판같이 내걸린 거리의 이자는

언제 추락할지 몰랐다

바람이 불거나 눈비가 오는 날

확률이 더 높다는 연구 발표가 있었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다

이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텔레비전의 특집 방송 날에도

거리로 몰려들었다







3.jpg

정윤천울어본 자의 노래를 위하여

 

 

 

몸 깊은 어딘가에

그 어떤 짓으로도 소용이 닿지 않는

토악질을 할 때만이 반응한다는

근육 한 줌이 있다고 한다

어쩌다 먹은 것 다 게워낸 뒤에

눈초리 가득 눈물방울이 맺혔던 것은

그것들이 퍼올린 안간힘의 물기였는지 모른다

 

누군가의 이름 하나를 늦게까지 불러보다가

낑낑 울어 본 자의 노래여






4.jpg

이성선

 

 

 

내 귀를 비우고 싶네

거리의 소리가 너무 높아서

진실도 거짓도 알기 어려워

내 귀는 쉬고 싶네

 

내 귀를 이젠 바다를 향한

보석함으로 두고 싶네

 

사람의 파장을 뛰어 넘어서

다른 떨림이 울림 속에 들어가 살고 싶네

 

풀잎 사이에 내려 놓고

풀잎들의 맑은 목소리나 듣고 싶네

나무들의 숲으로 가서

짐승과 별과 달과 바람이 얼굴 비비며

속삭이는 나라의 소리를 듣고 싶네

 

내 귀를 이젠 비우고 비워서

떨리는 사랑의 소리나 가려듣고 싶네







5.jpg

이상국감자밥

 

 

 

하지가 지나고

햇감자를 물에 말아 먹으면

사이다처럼 하얀 거품이 일었다

그 안에는 밭둔덕의 찔레꽃이나

소 울음도 들어 있었는데

나는 그게 먹기 싫어서

여름이면 어머니와 싸우고는 했다

그 후 논밭과 사는 일은

세상에 지는 일이라고 나는 멀리 떠났고

어머니도 감자밭을 버리셨지만

해마다 여름이 와서

온 몸에 흙을 묻힌 채

시장에 나오는 감자를 보면

거기에 어머니가 있는 것 같아

나는 빈집처럼 허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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