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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신입사원 때 화장실에 갇힌 이야기.
게시물ID : humordata_182610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tory
추천 : 14
조회수 : 3950회
댓글수 : 20개
등록시간 : 2019/07/29 20:5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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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해준 이야기입니다.

-

어쩌다보니 조금 규모있는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다만 입사한 날 무슨 내부 정리가 덜 되어있어서 팀이 애매모호하다고 했다.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병아리답게 얌전히 자리에 앉아서 어리버리하게 있다가 퇴근하고 했다.




며칠 정도 반복되었을까.

어느날 출근하는 아침에 배가 살짝 아팠다.
급똥인가 아닌가를 빠르게 판단한 후, 
급똥이 아닌 걸 확인한 나는 똥을 쌀거면 돈을 받고 싸겠다는 의지로 빠르게 출근길에 올랐다.

출근하고 가방을 자리에 놓고 컴퓨터를 켜자마자 나는 똥이 급하지 않다는 사실을 최대한 어필하기 위해 여유부리며
'화장실좀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옆자리 선배에게 또박또박 말한 후에 화장실을 뚜벅뚜벅 걸어갔다.

화장실에 들어서자마자 빛의 속도로 바지를 내렸고 나는 낮은 탄식을 내뱉으며 돈 받고 똥을 싸는 기분을 만끽했다.

이 기분은 오래가지 못했다.
휴지가 없었다.





순간 머릿속이 멍해졌다.
진짜인가? 이 상황이 실화인가?
입사한 지 일주일도 안 되었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같은 일이란 말인가.

나는 화장실칸 옆에 붙어있는 점보롤 플라스틱 케이스 안에 손을 집어넣고 하염없이 더듬어댔다.
손에 닿는 휴지심의 단단한 감촉이 아무리 더듬어봐도 끝나지 않았고 좌절감을 더더욱 증폭시켰다.

아, 상황 판단을 빠르게 해야한다.
화장실에 간다고 해놓고 너무 오래 시간을 끌면 변비라고 오해받거나
아니면 화장실 가서 딴짓하는 불량한 신입사원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다행히 우리 회사에는 비데가 있었다.
세정 버튼을 꾸욱 눌러보았다.





세 번 정도 세정 버튼을 누르며 턱을 괴고 생각했다.
이 정도의 물줄기로는 나의 깊은 곳 까지 깨끗하게 해결해주지 못할 거라고.

어디선가 본 것 처럼 양말을 쓸까.
그런데 그러면 슬리퍼도 안 사다 놓은 회사에서 맨발로 하루를 견뎌야 하는데 그게 가능할까.
그것보다 쓰레기통도 없는데 이 화장실에는.

누구한테 부탁할 사람이 없나.
팀 배정이 안 되어서 번호 저장된 사람도 없었고, 동기는 여자였다.
유일하게 저장되어있는 회사 사람은 나와 면접을 본 임원 정도 뿐이었다.
이사님에게 휴지좀 가져다 줄 수 없냐고 물어볼 수는 없지 않은가.

화장실에 들어오는 누군가에게 휴지좀 가져다 달라고 하기에도 애매했다.
그 누가 되었든 내 선배일테고, 이 사실을 알게되면 나는 아무리 진급해도 똥쟁이라는 타이틀이 붙어서 
퇴사할 때 까지 선후배 모두에게 영원히 놀림받을 것 같았다.
가뜩이나 소심한 나에게 그건 정말 악몽이었다.

그러다 문득 위험한 아이디어 하나가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점보롤 케이스는 자물쇠로 잠겨있었다.
나는 그 아래 구멍에 팔을 넣어 조심스럽게 휴지심 주변부를 더듬어보기 시작했다.
나름 출근한다고 신경써서 짧게 깎은 손톱이 살짝 원망스러워졌다.

그러던 중 손톱에 틱 하고 걸리는 부분을 찾았다.
나는 그 부분을 살살 긁어내면서 휴지심의 표면을 뜯어내기 시작했다.

유레카.

나는 길쭉한 황색의 휴지심 표면을 얻을 수 있었고, 그건 이 상황을 탈출할 수 있는 동앗줄로 보이는 착각도 들었다.
하지만 이 걸로 닦기에는 너무 뻣뻣한 게 단점이었다.
나는 이 종이를 하염없이 구기고 구기다가 문득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비데의 세정기능으로 주변부는 세척을 했다.
그렇다면 남은 건 골짜기 깊은 곳 밖에 없지 않은가.

나는 종이를 두 손으로 비벼가며 긴 끈 같은 형태로 만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난생 처음 느껴보는 종류의 감각이었다.

아마도 언젠가 들어본 이야기에 나오던, 긴 새끼줄에 왔다갔다 하며 처리를 했다던 그런 이야기가 생각났다.
아마 티팬티를 입을 때 이런 느낌이 들 것 같았다.
영원히 입어볼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줄 한 번 지나가는 일은 정말 숭고한 작업이었다.
그렇게 한 번으로 해결이 되었으면 좋겠으나 문제는 또 한 번 있었다.



여러분은 닦을 때 언제까지 닦는가.
그 기준이 어디인가.

나같은 경우는 닦아낼 때 느껴지는 묘한 쾌감보다 나의 소중한 블랙홀이 느끼는 쓸림의 아픔이 더 커질 때 닦는 것을 그만둔다.
그러면 만족스러운 닦음이 되고는 한다.
그 지점을 나는 블랙홀의 만족지점이라고 부르고싶다.

이 동앗줄이 한 번 지나갔으나 블랙홀의 만족지점에 다다르지 못했다.
나는 잠깐 고민했다.
이 찝찝함을 안고 간다면 오늘 하루의 기분이 분명 안 좋을 것이다.
그리고 동앗줄이 블랙홀에 닿은 곳은 한 쪽 면 뿐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블랙홀은 만족했다.

이제 문제는 비데의 세정능력으로 인한 주변부에 튄 수분 정도 뿐이었다.
몇 가지 방식을 고민해 보았다.

어차피 물이니까 그냥 옷 입고가도 괜찮지 않을까?
좀 더 앉아서 말리고 가면 괜찮지 않을까?

어째서 그 비데에 건조기능이 있다는 걸 알지 못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촌놈이었던 탓에 비데 사용이 익숙치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저 물이 나오니 낮은 탄식을 질러대기 바빴던 것이지.

고민하고 고민하던 끝에 뭔가 나는 갑자기 깨달았다.
머리에 번개가 내리치는 기분이었다.




나는 속옷과 바지를 무릎 위까지 올리고 문을 살짝 열어 화장실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재빠르게 옆칸으로 들어갔다.

그 곳에는 점보롤이 충만하게 있었다.

나는 무표정으로 점보롤을 바라보다가 평소보다 두뼘은 더 많이 끊어서 블랙홀을 닦고 또 닦았다.
쓰라림의 고통이 쾌감을 앞지른 지 오래되었지만 그래도 상관 없었다.

젠장, 젠장, 미안해 블랙홀, 이렇게 보드라운데, 이렇게 보드라운 휴지가 있는데 저따위 것을. 저렇게 거친 것을.
하고 속으로 사죄하며 닦고 또 닦아냈다.
출처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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