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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게 주어진 72시간
게시물ID : panic_10070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플라잉제이
추천 : 5
조회수 : 1749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9/08/25 02:2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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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석현은 지금 인생의 마지막 72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는 정확히 삼일 뒤에 죽게 될 예정이다. 어떤 형태로 죽게 될지 아직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삶을 마무리할 시간이 매우 짧게 남아 있다는것이다.





2



석현은 얼마전 친구 병수와 '선구자의 집'에 방문했다. 병수는 너무도 생생한 불길한 꿈을 꾸었다며, 석현에게 '선구자'를 만나러 가자며 졸라댔다.




"내 친구 남기 있잖아. 걔 친척 중에 하나가 이 선구자한테 72시간 예언받고 진짜 딱 삼일 뒤에 죽었잖아. 무서워서 삼일째 되는 날 집밖에도 안 나갔는데 갑자기 심장마비로 죽었대. 그거 듣고 완전 소름 돋았잖아. 꼭 그거 아니어도 점쟁이처럼 점도 봐준다니 속는셈치고 한번 가보자."




'선구자'란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회의 고위계층이다. 그들은 태어나길 '선구자 '계급으로 태어났다. 보통 부모 중 한명은 '선구자' 계급이어야 자식도 그 계급이 될 가능성이 있다. 즉 부모 두 명이 '평민' 계층이라면 '선구자' 계급의 자식은 절대 나올 수 없다. 그들은 성인이 되는 해에 국가에서 치르는 공인시험을 통해 공식적으로 '선구자'라는 타이틀을 부여받게 된다.


 

그들의 뛰어난 능력 중 하나는 타인의 죽음을 미리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보통 사람이 죽기 72시간 전이 되면 이마에 72라는 숫자가 발광하기 시작한다. 72라는 숫자는 카운트 다운을 시작해서 0에 수렴하는 순간 그 사람은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선구자'들이 자신의 재능을 무료로 누구에게나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보통의 경우 '선구자의 집'이라는 자신만의 가게를 열고 돈을 받고 알려준다. 간단한 점사도 봐주고 조언을 해주기도 한다. 자신이 죽기 삼일 전이 뭐가 궁금해서 목돈까지 쥐어주고  여기를 찾아올까 싶냐만은 실제로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너 말고 네 친구! 이름이 석현이라 했나? 마무리 잘해. 이제 곧 72시간 남았네."




병수의 재촉으로 얼떨결에 가게 된 '선구자의 집'에서 석현은 병수가 아닌 자신이 시한부 인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본의 아니게 자신의 마지막을 알게 된 석현은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대학교 원하는 과에 입학했을때 보다, 서른번의 탈락 후 합격한 지금의 회사 합격소식보다, 더욱더 믿기 힘들었다.




" 내가 삼일 뒤면 죽는다고요? 확실해요? 이렇게 건강한데...혹시 사고로 죽나요?"




" 그것까진 나도 몰라. 그냥 이마에 숫자보고 아는거지. 안 죽으면 나중에 환불받으러 와. 열배로  쳐서 보상해줄테니. 근데 그럴일 없을거야. 환불받으러 온사람 십년동안 한번도 없었거든."




석현은 남은 삼일을 어떻게 써야할지 고민스러워졌다. 한때 유행하던 버킷리스트를 써본적도 없고, 딱히 해보고 싶던 것, 가보고 싶은 곳도 없던 그였다. 열심히 살아오긴 했다. 좋은 대학에 가서 열심히 공부해 성적 장학금도 종종 타고, 부모님의 어깨가 으쓱해질만한 대기업에도 취업했다. 그렇게 사는 것이 맞는 것이고 옳은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예상치 않은 삶의 끝자락을 어떻게  마무리 해야할지는 정말 감이 오지 않았다. 그 어느 누구도 죽음에 대비하는 법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3




석현은 문득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이제 겨우 스물 일곱살. 목숨을 내줄 수도 있는 열렬한 사랑도 못해봤다. 술에 진탕 취해서 길바닥에 드러누워 토악질도 안해봤고, 나이트 클럽에서 부킹한 여자와 하룻밤 잠자리를 해본 적도 없다. 심심하리 만치 반듯하고 설계된 인생을 살아왔다. 그런 석현이 이제 죽을 날까지 삼일도 남지 않았다. 



석현은 이대로 무색무취의 인생을 종료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문득 그에게 남은 기간을 기회로 사용하기로 했다. 방문을 잠그고 지난 날을 회상하기 시작했다. 눈을 감고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으며 무엇인가 떠오르기를 기다렸다. 머지않아 '그' 를 떠올리곤 호흡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개자식. 그 새끼때문에 내 중학교 시절이 암울했었지'



잊고 있었던 중학교 동창 하나가 생각났다. 초등학교 때는 가장 친했던 친구 '길현'은 중학교에 같이 입학하고 난 후 변하기 시작했다. 어울려 다니는 양아치 무리에게 일부러 보여주기라도 하는듯이, 석현을 노골적으로 괴롭혔다. 수업시간 석현의 하복 와이셔츠 뒤에 검정펜으로 고양이를 그리면서 그의 무리들과 낄낄댄 적도 있다. 복도에서 지나치면 이유없이 뒷통수를 치곤 했다. 피구대항전에선 같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석현의 얼굴 부분에 공을 날려 안경을 분질러놨다. 



석현은 '길현'이 본인 인생의 유일한 오점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망쳐놓은 중학교 시절의 기억만 없앨 수 있다면, 모든 것이 평온하다. 그러나 이미 지나쳐온 과거를 지울 수는 없다. 하지만 '길현'이라는 인간 자체를 지우는건 가능하다. 문득 생각이 거기에까지 미쳤다. 



'남에게 한번도 해를 끼치지 않고 살아온 내가 스물일곱살에 죽는데 그런 버러지같은 놈이 더 오래 사는건 앞뒤가 맞지 않아!'



죽을날 까지 삼일이 채 남지 않았다. 그말인 즉슨 누구를 죽이든,  어떠한 불법을 행하든, 처벌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석현은 자신의 죽음을 미리 아는 것이 나쁜지만은 않다고 자위했다.
출처 투 비 컨티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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