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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죽어가던 화초가 살아가야 하는 이유
게시물ID : freeboard_185474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용사☆
추천 : 4
조회수 : 213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9/08/26 01:4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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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어느 화초가 있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허리가 구부정하던 노인이 언제부터인가 키우던 것이었다.

노인으로 말할 것 같으면 흔히 말하는 바깥 생활에서 은퇴한지는 오래전이었고, 지금은 집과 조금 멀리 떨어진 공원을 별생각없이 전철로 오가며 시간을 죽이는 삶을 살고 있었다.

지루함이 일상이 됐고 일상이 지루함이 됐다.
문득 이대로 죽어가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곤 했다.

그날도 노인은 전철역에서 나와 공원으로 느린 걸음을 옮겼다.
공원으로 가면 벤치에 앉아서 그저 멍하니 시간을 보낼 것이다.
얼마전 같았으면 같이 이야기라도 나눌 친구가 있었을텐데 이제는 없으니 그저 멍하니 앉아 시간을 때울 것이다.

그렇지만 그날 노인은 공원에 가지 않았다.

특별히 일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갑작스레 몸이 안 좋아진 것도 아니었고 무언가 중요한 일이 생긴 것도 아니었다.
그저 가는 길에 생긴 꽃집이 눈길을 끌었고 노인은 공원 대신 그곳에 들렸다.

마침 주인인지 직원인지 모를 젊은 사내가 조금 불만인 표정으로 화분 하나를 들고 나오던 참이었다.

한눈에 봐도 말라죽어가던 화초 하나.
얼마전부터 또 죽어가기 시작했는데 상태가 좋아질 기미가 안 보여 이번엔 그냥 밖에 내놓을 생각이었다는 것을 노인은 고민없이 구입했다.
사내가 팔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해도 노인은 고집을 부려 그 화초를 샀다.
왠지 이 화초가 아니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라도 들었던 모양이다.
화초를 사서 나오는 길에 언뜻 [잘 살아봐라]라는 목소리를 들은 것 같기도 하지만 개의치 않았다.

노인과 화초는 그렇게 만났고 화초의 자리는 볕이 잘드는 창가가 됐다.

이제 노인의 하루의 첫 일과는 공원으로 나가 시간을 죽이다 오는 것이 아니라 화초를 챙기는 것이었다.

처음엔 그저 며칠에 한번씩 물을 줬다.
시간이 더 지났을 땐 집에 찾아온 자식들에게 컴퓨터를 하는 법을 배웠고 그것으로 인터넷창을 켜서 더듬더듬 화초를 키우는 법을 검색해서 알아갔다.
더 시간이 지났을 땐 화초에게 '순디'라는 이름까지 지어주고 매일같이 부르며 말을 걸며 웃곤 했다.
이대로 죽어가나 생각했던 노인의 일상에 작은 기쁨이 하나 생겨났다.


화초는?

아, 화초.
화초에겐 딱히 특별할 것은 없었다.
그저 어느 꽃집에 살면서 사는게 재미없다며 벌써 세번째로 자살을 시도했고, 가게 주인이던 사내가 이번엔 그냥 못넘어간다며 화분채로 들고 나가던 것을 노인이 발견해서 사갔고 그렇게 꽃집을 떠나 살게 됐던거니까.
처음엔 저 구부정한 노인네가 자신을 잘 키워봤자 얼마나 잘 키우겠냐며 속으로 꿍얼대기도 했지만 상당히 정성을 들이는 모습에 마음이라도 바꾼건지 아직까진 잘 살고 있는 듯 하다.

덤으로 순디라는 이름이 마음에 안들어 다시 확 시들어버릴까 하다가 얼마전에 식물영양제도 받아먹었으니 내일 아침쯤 꽃봉오리 하나 보여주자 생각하는 것은 이 화초만 아는 작은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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