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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고 싶은 실직자가 일을 할수 없는 이유
게시물ID : society_533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aiidyn
추천 : 2
조회수 : 98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9/09/06 15:10:24
1. 일하고 싶은 실직자가 일을 할수 없는 이유
일을 하고 싶은데 일을 할수가 없다.
일자리가 없어서는 아니다.
일자리는 널려있다. 
그런데 정당한 댓가가 보장되는 좋은 일자리가 없다.
내가 원하는 것은 일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 정당한 댓가이이며, 
내가 피하는 것 역시 일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 부당한 댓가이다.
정당한 댓가만 보장된다면, 심지어 말려도 대단한 노력이나 희생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나에게 주어진 일자리에서 보장되는 기회나 댓가란 것이
그동안 내가 준비한 능력과 노력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나는 내가 들인 시간과 정신에 비해 최대한 많은 댓가가 보장되는 가성비 높은 일을 바라는데
내가 선택할수 있는 일자리란게 전부 부당할 정도로 가성비가 낮은 것이다.

충분한 댓가가 보장되는 좋은 일자리 자체가 별로 없기 때문에
그런 좋은 일자리 기회는 나보다 더 많이 준비한 사람에게만 제공되고 있는듯 하다.
따라서 일하고자 하는 내가 지금 나의 시간과 신경과 돈으로 해야 하는 것은 구직이 아니라 자기계발이다.
그렇게 하여 정당한 댓가가 보장되는 일자리를 차지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나의 아까운 자원을 투자하여 좀더 나은 스펙, 학력, 경력, 실력을 구축해야 한다.
문제는, 나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바보가 아닌다음에야 정당한 댓가는 나만이 바라는 것이 아니다.
좋은 일자리는 한정되어 있는데 그것을 원하는 사람은 많으니 또다시 소모적인 경쟁이다.
이들과 경쟁해서 이기기 위해서는 더 확실한 정보가 필요하고 더 특별한 연줄이 필요하고 권위가 필요하다.
죽쒀서 개준다고 그러는 과정에서 이런것들을 갖추고 있는, 자기계발을 하게 하는 곳만 신이 났다.
대표적인 것이 학력을 위한 대학교이고, 자격이나 실력을 위한 학원이다. 
기성회사나 임대업도 마찬가지다.
스펙이 필요한 구직자들에게 적당한 경력을 주면서 싼값에 열정적이기 까지한 고급인력들을 마음껏 써먹고 있다.
임대업자들은 일할 의지는 충만한데 사업자금이 없는 사람들 덕에 잘 먹고 사는 것이다. 
구직자들의 불가피한 자기계발 열풍덕에 이들 계층은 정말이지 별다른 노력없이도 엄청난 호황을 누리고 있으며,
좋은 일자리를 바라는 구직자들만 아무렇게나 휘둘리는 것이다.



2. 자기자원을 자기계발에 쏟는것 만큼이나 불안한 것도 없다.
모든 사람에게는 나름의 자기자원이란 것이 있다.
자기자원에는 시간과 신경이라는 본연의 자원과 파생 자원이 있다. 
파생자원에는 연줄, 신뢰, 권위, 경력 같은 입지와 능력, 돈 같은 것이 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자기자원과 파생자원을 잘 활용하여 일생에 걸쳐 최종적이고 궁극적으로 취해야 하는 것을
최대한 충만한 기억과 감정과 관념을 경험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자기자원을 자기계발에 쏟는것 만큼이나 불안한 것도 없을 것이다.

여행 같은데를 가서 자기자원을 직접 누리는데 쓰면 확실하고 즉각적인 직접적인 보상이 따른다.
다만, 여기에는 돈 같은 파생자원이 필요하고 소모된다.
그렇다. 직접적인 누림행동을 위해서는 파생자원이 필요한 것이다.  
(물론 그냥 파생자원 소모없이 그냥 휴식하면서 신경자원을 회복할수도 있지만 이런 간접누림행위에도 기회 시간자원비용은 발생한다.)
이런 파생자원을 확보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자신의 일부자원을 남을 위해 희생한다.
남에게 자신의 시간과 정신과 능력과 노력을 사용하고 양도함으로써 
그 남으로부터 돈이라는 남의 자원을 사용할수 있는 파생자원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돈이라는 간접적인 보상은 즉각적이지는 않지만 직접누림 만큼이나 직접적인 보상을 상당히 확실하게 보장한다.

그런데 자기계발은 이도저도 아니다.
자기계발은 현재의 확실한 자기자원을 미래의 불확실한 자신의 파생자원을 늘리는데 사용하는 셈이다.
그래서 자기계발에는 분명히 상당한 수준의 자기자원이 소모되는데 이 행위에서는 어떤 분명한 보상이 보장되지 않는다.
자기계발에 따른 보상은 즉각적이지도 확실하지도 않다.  
자기계발을 위해 상당한 수준의 자기자원을 소모했음에도 원하는 스펙을 못 얻을수도 있고,
더욱이 얻었다 할지라도 원하는 수준의 좋은 일자리가 보장되는지는 그보다도 더 불확실하다. 
그리고 이런 불확실성이야 말로 사람을 초조하게 하고 불안하게 한다.
특히나 그것에 자신의 생존문제가 걸린 경우라면 더욱 그러하다.

마지막으로 더 큰 문제가 남아 있다. 
얼마 안되는 좋은 일자리, 고급 일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알고보니 능력이나 경력보다는 연줄이 더 주요하게 작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사실을 직시하면서
구직자들을 불안을 넘어 절망하고 있는듯 하다.



3. 왜 좋은 일자리가 적나?
일자리는 널렸지만 좋은 일자리가 적다.
일 할 만한, 자기 자원(능력, 노력)을 들일 만큼 충분한 파생자원(댓가,기회,입지)의 보상이 보장되는 일자리 말이다.
왜 좋은 일자리가 적나?
그것은 항상 성장동력이 되는 혁신산업이 발생할수가 없기 때문이며, 무엇보다도 자동화 때문이다.
자동화는 사람의 일을 로봇이나 기계가 대신하는 것이다.
기술발달로 로봇이나 기계가 사람보다 훨씬 정확하고 빠르며 저렴한 일이 많아지고 있다.
자동화를 통해 사업가는 큰 돈을 벌 기회가 생기기도 하는 반면, 자동화는 필연적으로 적지않은 노동자를 실직시킨다.
기계나 로봇에 들어가는 비용의 임금을 받고 일하겠다는 노동자라면 당연히 그는 직업을 지킬수 있겠지만
말한바와 같이 사람이 원하는 것은 일이 아니라 정당한 댓가이기 때문에 
그런 막심한 손해를 감당하면서까지 직업을 지키려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자신이 구축한 특별한 입지로 하여금 구직자들에게 자기계발의 기회를 제공하는 비생산적 일자리가 아닌 (예컨데 임대업) 
소비자로 하여금 직접누림을 추구하게 하는 생산성 일자리를 크게 계발직, 생산직, 써비스직으로 나눈다면
자동화로 이중 생산직 계층이 위협받게 돼는 것이다.
특별한 입지나 돈도 없고, 로봇에게 전문노동 경쟁력을 뺏긴 구직자들이
돈을 벌기 위해 남들에게 내 놓을수 있는 것은 시간과 신경밖에 없다.
그리고 뭐든 공급이 많아지면 가치는 떨어지게 되어있다.
그리하여 들인 시간과 신경에 대해서 충분한 댓가가 지불되는 좋은 일자리는 줄어들게 된다.

하지만 자동화의 역사는 백년도 더되었다.
자동화 현상은 사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에는 일자리가 계속 유지되어 왔다. 
그것은 그동안의 자동화 기술은 그렇게 까지 발달하지 않아서 비용이나 정확도 등을 고려했을때 여전히 사람의 손이 필요한 작업이 많았고,
또한 자동차다 인터넷이다 하면서 끊임없이 다른 분야의 기술혁신도 있어왔기 때문이다.
소비자들로 하여금 들인 돈에 비해 더 낳은 써비스와 가치를 보장하면서 가성비를 높이는 기술혁신은 
새로운 편리나 효율성이나 가치를 만들고 이는 새로운 수요로 연결되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법이다.
제도나 정치나 유행 이벤트 사건사고가 아닌, 가치있는 기술혁신이야 말로 일자리를 만들고 시대를 본질적으로 바꾸는 핵심적인 원동력일 것이다.
새로운 문화, 과학, 사회현상을 유도하는 기술혁신이야 말로 경제성장의 본질적인 원동력일 것이다.
즉, 기술혁신을 통해 기존의 일자리는 줄어들수 있지만, 또한 기술혁신을 통해 새로운 분야의 일자리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쯤에는 기술혁신을 통한 자동화 기술이 너무 발달해서 자동화 기술에 의한 일자리 감소 속도를
기술혁신을 통한 일자리 창출 속도가 감당할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이것은 앞으로도 바뀌기 어려워 보인다.
즉, 지금의 자동화 추세대로라면 지속적인 일자리 감소는 필연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다시말하면 지금의 기술발달 추세대로라면 장기적으로 볼때 실업자는 늘어날수 밖에 없어보인다.
물론 의술발달에서의 필연적인 고령화로 인해 일할수 있는 사람 숫자도 줄어들기 때문에 그것이 실업자 문제를 어느정도 완충할수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어나는 일할수 없는 사람을 줄어드는 일할수 있는 사람이 먹여 살려야 한다는 문제만 더욱 부각된다.



4. 일자리는 줄어들고, 일할수 없는 사람은 늘어날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의 대책은?
고도의 자동화로 인해 일자리는 줄어들수 밖에 없고
계속되는 고령화로 인해 일할수 있는 사람은 늘어날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일할수 없는 사람도 사람처럼 먹고는 살아야 한다.
소수의 일하는 사람은 자신은 물론이고 다수의 일 못하는 사람들도 먹여살려야 하는 것이다. 
부양자는 줄어들고 피부양자는 늘어나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기술계발등을 통해 생산성이 충분히 향상되어야 할 것이다.
일단 한사람이 예컨데 열사람 몫을 생산해낼수 있는 기술이나 조건이 갖춰져야 이 문제를 해결해볼수 있다.
그러나 충분히 발달한 생산성 만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수 있느냐 하면 그렇지가 않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부의 분배문제도 반드시 신경써야 한다. 
한 사람이 열사람이 아닌 백사람 몫을 해도 부의 분배 문제를 신경쓰지 않으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생산성이 향상하더라도 그로 인해 형성된 부가 대부분 소수의 자본가에게만 분배된다면
다수의 비자본가들은 기본적인 존엄한 생존에 곤란을 겪게 될 수도 있기 때문에
구성원들 모두가 최소한 사람처럼 먹고는 살게 하려는 면에서 보면 
이런 생산성 기술이라면 정체되는 것이 차라리 나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부의 분배만 제대로 진행된다면 지금의 생산성 정도로도 비교적 무난하게 이 문제를 해결할수 있을 듯 하다.
(물론, 생산성이 더 높으면 높은만큼 더 풍요롭고 좋아 지겠지만 말이다)
따라서 지금쯤에 주의깊게 신경써야 하는 것은 생산성 향상 보다는 부의 분배문제일 것이다.
이제는 어떻게 생산성을 높일것인가 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생산성을 유지한 채로 합리적이고 공정하게 부를 분배할 것인가에 집중해야 할 때인 것이다.

어떻게?
지금은 먹고 살려면 돈을 벌어야 하고 
돈을 벌려면 직업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결론적로 먹고 살려면 직업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처럼 직업을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맞겨버리면 (최저임금은 미봉책)
직업수요에 비해 직업공급이 턱없이 부족할 미래는
재앙 그 자체가 될 것이다.
따라서 직업선택을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맞겨놓아서는 않될 것이다.

기본소득제는 직업을 수요와 공급 테두리에서 벗어나게 하는 한 방법일수 있겠다.
실업자가 필연적으로 만연할 미래, 울며 겨자먹기로 나쁜 일자리에 내몰려 피해받을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일을 하던 안하던 모든 시민들에게 정기적으로 일정금액의 돈을 지급함으로써
일할 능력이 없는 사람은 생존을 보호하고, 일할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나쁜 일자리를 거부할 힘을 주는 것이다. 
무슨 돈으로?
로봇세를 도입하면 된다. 
로봇 때문에 일자리를 잃었기 때문에, 로봇으로 벌어들인 수익에 일정부분 세금을 물리는 것이다.
로봇으로 사라진 일자리는 로봇이 구축된 정도에 비례할 것이기 때문에
구축된 로봇으로부터 발생된 실업자가 늘어난 만큼
그에 비례해서 구축된 로봇으로부터 발생된 로봇세 세수도 늘어날 것이다.
따라서 비용문제는 로봇이 많든 적든 알아서 적합하게 해결된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맞겨놓아서는 않되는 또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집이다.
존엄한 생존에 주거지, 즉 집은 직업만큼이나 중요하다.
그래서 집값이 아무리 비싸도 집이 이토록 필수적이니까
억울하고 부당한 가격일 지언정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그렇게 사는 것이다.
그러는 과정에서 실제로 사용할 생각도 없으면서 구매권을 미리 선점해서 
실제로 사용해야하는 절박한 임대인이 걸려들기만을 기다리면 되는 임대업자만 편하게 먹고 사는 것이다.
다른 건 모르겠고 집만은 임대업을 막아야 할것 같다.
투기해서, 무리하게 대출해서 집을 사는 사람들이 사라져야만이 집값에 거품이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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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나는데로 주저리주저리 적어본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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