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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2) 담배 주세요.
게시물ID : readers_3428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윤인석
추천 : 3
조회수 : 386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9/10/26 10:31:46

“깜빡 잊고 안 가져 왔어요.”

신분증을 달라는 말에 축구 잘하게 생긴 남학생이 말했다.


주춤하는 모습이 딱 미성년자였다.

편의점 야간 근무 중에 종종 미성년자들이 담배를 사러 온다.


미성년자에게 잘못 담배를 팔았다간 청소년 보호법 위반으로 걸려 몇십에서 몇백의 벌금을 물 수도 있다. 

그것도 업주가 아니라 판매한 알바생이 내야 한다.


걸리면 경찰서에 들락거려야 하고, 벌금까지 내야 하니 끔찍한 일이다.


사실 어지간해선 걸리지 않지만

경쟁 업소에서 미성년자를 보낸 후 신고를 하기도 하고,

미성년자는 처벌받지 않는 점을 이용해 담배를 산 후, 알바생이나 업주에게 돈을 갈취하는 경우도 있다.


무서운 세상이다.


“죄송합니다. 다음에 신분증 가지고 다시 와주세요.”

나는 꺼내 놓은 담배를 다시 매대에 넣었다.


물러갔던 남학생이 잠시 후 다시 매장에 들어왔다.

“이거면 되죠?”

어디서 구했는지 군대 전역증을 가지고 왔다.

나는 전역증을 들고 물었다.


“전역하신지 얼마 안되셨네요?”

“네. 제가 군대를 좀 일찍 갔어요.”

“군번 외우시죠?”

“...그, 아, 씨...."

난 냉정히 말했다.

“안됩니다.”

“씨....”


그렇게 남학생이 돌아가고 다시 10분 쯤 흐른 후였다.

전역증을 가져왔던 남학생이 매장 문을 벌컥 열고 성큼 성큼 다가왔다.


검게 그을린 피부에 나보다 한뼘은 더 큰 덩치가 흥분한 표정으로 빠르게 다가오자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됐다.


‘뭐야? 담배 안 팔았다고 복수하러 온 거야?’


탁!


다시 한번 계산대에 전역증 올라왔다. 내려 놓는 손이 전보다 거칠다.


주먹이 날라오는 게 아닌가 긴장하며 지켜보는데 남학생이 입을 열었다.


해맑은 목소리였다.


“외웠어요!”


뿌듯함과 설렘이 묻어나는 목소리에 잠시 할 말을 잊었다.


어.... 그러니까 지금 10분간 군번을 완벽하게 암기하고 왔으니 담배를 달라는 소리지? 진심인가?


“...이제와서 외우면 뭐 해요....”


“아, 진짜 외웠는데....”


이 친구 진심이었다. 외우라며?라고 얼굴에 써놓은 것 같다. 배신 당했다는 듯한 표정이다.

“외웠는데...." 

내 얼굴에서 무엇을 읽었는지 남학생에게 아, 이게 아닌가 하는 표정이 스쳤다.

그리곤 안쓰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제발요. 한번만요. 네?”

다행이다. 그래도 눈치는 있구나. 그조차 없었으면 처음 보는 친구의 미래를 걱정할 뻔 했다.


아무튼 그렇게 간절한 목소리로 말해 봤자 어쩔 수 있나.


“죄송합니다. 안됩니다.”


남학생은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돌아갔다.


덩치도 담배도 귀여움과 거리가 먼데 귀여워 보여서 헛웃음이 났다.


이게 갭모에인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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