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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주 100시간 근무를 버텨내는 이유는?
게시물ID : gomin_177498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좀비형남자
추천 : 7
조회수 : 963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9/10/31 21:5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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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안녕하세요.
고독과 싸우는 고독한 게임 개발자입니다.

이 글은 지난 5년간 주 100시간 노동을 버텨냈던 한 인간의 사연과 소회의 기록입니다.
개인의 미세먼지 같은 경험이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공감해 주실 분들이 계시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끄적여 봅니다.

아래부터는 개인의 관점에서 다나까체를 빼고 수필식으로 써봅니다.
주저리 주저리 글이 길기 때문에 바쁜 현대인들은 맨아래 3줄 요약을 봐주세요.



[아이 러브 좀비]

이유를 설명하긴 어렵지만 난 어릴 때부터 좀비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좋아하는데 특별한 이유가 없는게 진정한 사랑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렇게 좀비를 소재로 한 영화나 게임 등을 섭렵하면서 사랑을 키워갔다.
이름 두 글자만 들어도 나를 미소짓게 만들던 좀비는 나에게 너무도 소중한 존재였다.

오랜 시간 동안 게임을 만들어 오며 꿈꿔오던 열망이 하나 있었다
'언젠가는 좀비가 등장하는 나만의 게임을 만들거야!' 라는 생각이었다.

I_love_zombies



[회사에게 고하다 세이 굿바이~]

노동자로 살아온 15년의 세월동안 좀비는 좀처럼 나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다.
길고 긴 외사랑을 끝낼 시간이 오고 있는 것일까?

이대로라면 꿈을 실현할 기회는 영영 오지 않을 것이다.
용기있는 자가 미인을 차지하듯 기회가 오지 않으면 스스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언제까지 방구석에 앉아 신세한탄만 하고 있을텐가?
그래 지금 도전해 보는거야! 라는 악마의 속삭임에 넘어간 나는
전재산을 탈탈 털어 고독과 싸우는 1인 개발자가 되었다.

퇴사

그렇게 주 100시간의 노동을 견뎌내야 하는 극한직업을 스스로 선택했지만 즐거웠다.
아니.. 즐거웠었다.. ㅠㅠ



[좀비를 찾아 주세요!]

회사를 미련없이 박차고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모든 구상을 머리 속으로 그려놨었기 때문이었다.

1. 좀비가 나오는 게임을 만든다.
2. 개쩌는 게임을 만든다.
3. 게임을 만들어 부자가 된다.

이 얼마나 멋지고 완벽한 계획인가?
하지만 이 완벽한 계획은 울타리를 박차고 야생으로 나와보니 허술하기 짝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듣도보도못한발상

생각해 보니 나는 개쩌는 게임을 혼자서 만들만한 능력이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게임을 만들어 부자가 되는 계획에는 차질이 있었다.

현타를 겪은 후 나는 생각했다.
'뭔가 새롭고 신선하며 시장에는 없었던 그런 특별한 게임을 만들자! 그럼, 경쟁력이 있을꺼다!' 라고 말이다.

그러다 문득 옛날에 재미있게 했었던 지뢰찾기가 떠올랐다.
숫자로 숨어있는 좀비를 찾아서 총으로 막 파바박 뚝배기를 날려주면 엄청 재미있을 것 같은데? 응?
게다가 좀비와 지뢰찾기는 뭔가 안어울릴 것 같지만 이 신선한 느낌 뭐야 무서워..

몰라뭐야그거무서워

왜 갑자기 지뢰찾기가 떠올랐는지는 모른다. 이거슨 운명의 데스티니?
잘 풀어내기만 한다면 뭔가 엄청난 녀석이 나올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아르키데메스에 빙의해 "유레카!"를 외치며 미친 몰입력으로 개발을 시작했다.

장르는 퍼즐로 정했지만 여전히 새로운 것을 원했던 나는 액션 연출을 가미해 타격감 쩌는
퍼즐을 만들고 싶었다. 이건 진짜 빙구짓만 안하면 대성공 각이다 응? 인정어?인정!

게임 개발 초기는 이렇게 뽕맞은 것처럼 즐거움의 연속이었다.
개발 초기는 다 그러하다.



[나 혼자 밥을 먹고~ ♬ 나 혼자 개발 하고~ ♬ 이렇게 나 울다 웃고...]

사전도 아닌 것이 게임 개발의 A부터 Z까지 모든 작업을 혼자서 감당해야 했다.
게임에 들어가는 짤막한 보이스와 좀비 소리도 직접 녹음 했는데 그때를 떠올리면 손발이 오그라든다.
그래도 생각보다 쓸만한 것 같아서 게임에 사용하게 됐는데 좀비를 쏴 죽일 때마다 자꾸 내가 죽어 나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곤 한다.

패기 넘치게 혼자서 개발을 시작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자신감은 비트코인처럼 떡락하고 있었다.
첫 삽을 떠올릴 때만 하더라도 조금만 파면 우물이 나올 것만 같았지만 현실은 혹한기였다.
깊이 들어갈수록 헛점들이 많이 노출되기 시작했고 견고하게 다지기 위해서 끝없는 삽질이 시작됐다.

그렇게 수없이 수정과 삭제를 반복하며 강도 높은 노동을 하면서 좀비와 물아일체를 경험했다. (좀아일체가 맞으려나?)
가수는 노래 제목 따라간다고 하던데 게임도 그런건가? 개발자가 좀비 게임을 만드니 좀비처럼 일하게 됐다.

모태 은둔형 외톨이였던 나는 그래도 혼자서 꾸역꾸역 잘 버텨내 가고 있었다..

우냐



[나르시시즘에 빠지다]

야생의 환경은 나를 강하게 만들지.
세상 수줍음 많던 초샤이가이라 남들 앞에 서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던 나는 생존을 위해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시작했다.

1. 자신감 회복
2. 객관적인 외부의 평가
3. 개발 자금

이 세 가지를 위해 도전했던 오디션들에서 좋은 성과를 냈다.
잭팟이 터졌다고 해야 하나?
한 평생의 행운을 다 여기에 몰빵한 것처럼 좋은 일들이 일어났다.

여러가지 기회를 얻어 떡락하고 있었던 자신감은 다시 떡상하고 있었고
이제 곧 완성 똭! 글로벌 런칭 똭! 불행 끝! 행복 똭!
이런 행복한 미래를 그리고 있었다.

흡족



[진퇴양난 현실의 맛!]

개발 초기에 예상했던 최대 개발 기간인 2년을 훌쩍 넘어 3년 3개월만에 국내에 런칭할 수 있었다.
사실 이것도 시간에 쫓겨 저질러 버렸지만 그래도 잘 해나갈 자신이 있었다.
일말의 의심도 없이 조금만 더 다듬어서 글로벌 런칭하면 성공할꺼라 확신했다.

현실의 맛은 어땠을까?
굉장히 쌉싸름 하면서도 달콤한 초컬릿 맛일 것 같았지만 현실은 100% 카카오의 흙맛이었다.

런칭 후 수많은 버그와 싸워야 했고
게임이 개어렵다는 불만을 성토하는 유저들과 직면해야 했다.

잉? 이게 무슨 소리야? 내가 눈감고 발로도 할 정도로 만들었는데!?
지식의 저주라고 들어본 적이 있는가?
내가 아는 것은 남들도 당연히 쉽게 알고 있을꺼라고 착각에 빠지는 무서운 저주이다.

게임처럼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고 공감해야 하는 컨텐츠를 기획하거나 만드는 사람이
걸리게 되면 답이 없는 저주이다.

다시 태어나야 된다.

유저와 비교했을 때 나는 매일 매일 100판씩의 단련으로 나도 모르게 원펀맨이 되어 있었던 거시다.
그렇게 따뜻한 봄날에 대공황이 찾아왔다.

그렇다면 게임의 결과는 어땠을까? 말잇못..
초반에서 생각보다 많은 이탈이 이어졌고
매출도 당연히 말도 꺼낼 수 없는 수준으로 초라했다.

나의 멘탈은 가출을 선언했고 한동안 방황하게 됐다.
그대로 밀고 나가야 할지 사람들의 의견에 좀 더 귀기울여야 할지 선택이 필요했다.

그래도 약간의 반전인 것은 재미에 대한 높은 평가였는데
비록 지속하기는 어려웠지만 핵심적인 재미에 대한 부분은 긍정적인 평가가 많았다.
스스로 인정하기 힘들었지만 실패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만 했다.

죽겠어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간다!]

극심한 갈등의 시간을 겪었고 가출한 멘탈은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설상가상으로 바디 시스템도 파업을 선포하며 한동안 모든 업무는 마비 되었었다.

결정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대로 손절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포기를 모르는 인간.

만신창이가 되더라도 끝까지 가보자!
그렇다. 나는 이런 무모한 타입의 인간형이었던 것이다.

총체적 난국이었지만,
7,000여분이 남겨주신 스토어 평점 4.8에 한 번 더 승산을 걸어보자라고 마음 먹었다.

유저분들이 남겨주신 리뷰를 곱씹으며 팩폭에 부들부들 하기도 했지만
게임의 문제점들을 개선하기 위해 하나하나 꼼꼼히 체크하고
개선하려고 노력했고 부족했던 컨텐츠도 보강했다.

그렇게 절치부심의 마음으로 또 1년을 주 100시간씩 좀비와 함께했다.

아이돈케어



[새로 태어난 나 그리고 좀비 스위퍼]

그렇게 길고 긴 1,700일의 여정 끝에 드디어
개편 버전을 업데이트 하고 본격적인 서비스를 시작했다.

애증의 게임 좀비 스위퍼.

돌아보면 이 긴 시간동안 왜 이만큼 밖에 못했나 싶기도 하다.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난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적어도 후회는 없을 것 같다.



[마치며..]

다들 눈치 채셨겠지만 이 자전적 이야기는 최후의 발악 같은 것이기도 합니다.
홍보 비용을 조금이라도 남겨뒀어야 했는데 바보같이 모두 탈탈 털어서 다 개발비로 써버렸어요.
그래서 이렇게라도 게임을 알려 보려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있습니다.

아래 영상을 보시고 관심이 가신다면 다운로드도 부탁드리겠습니다.
오유인들의 따뜻한 응원의 메시지도 좋고 날카로운 비평도 좋습니다.
무플 방지 위원회 분들은 꼭 모실께요!


구글 플레이 스토어 : https://play.google.com/store/apps/details?id=com.arcgamestudio.zombiesweeper
애플 앱스토어 : https://apps.apple.com/app/id1466058039

긴 글 읽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복 받으실꺼에요!

제 미래의 모습이 되지 않도록 응원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3줄 요약]
- 좀비 좋아함, 게임 좋아함, 좀비 게임 개발 혼자서 시작
- 개힘듦, 5년간 주 100시간 노동 극한직업
- 마지막 1년은 개편 작업에만 올인, 따뜻한 관심 필요!
- 3줄 요약만 보고 가면 3년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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