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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하거나 뻔한 이야기(2) / 일탈
게시물ID : readers_3433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철수와영이
추천 : 1
조회수 : 22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9/11/17 23:3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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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남자는 먼 기억을 떠올렸다. 강화도. 몇 년 전에 그곳에서 2년을 근무한 적이 있었다. 처음 출근하던 날은 그 많은 근무지를 놔두고 왜 이 먼 곳으로 보냈는지 모르겠다며 투덜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내가 강화도로 발령이 날 어떤 이유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런 강화도였다. 그런데 차츰 그곳 근무에 익숙해지고 그곳 사람들과 친숙해지자 사정은 달라졌다. 오히려 강화도에서 근무하게 된 것을 감사하게 되었다. 사무실 뒤편 아트막한 산은 밤나무가 가득했고, 꼬불꼬불한 읍내 골목길은 정겨움이 가득했다. 그 길은 내 어린 시절 뛰어놀던 동네 골목길을 연상하게 했다.
 
그때는 낮잠을 자고 나도 남을 만큼 하루가 길었다. 아이들은 늘 동네 골목에서 재잘거렸고, 떼를 지어 동네를 휘졌고 다녔다. 골목골목 틈새마다에는 조그마한 텃밭이 있었고, 그곳에는 늘 푸성귀가 자라고 있었다. 푸성귀는 어디에나 가득히 널려 있었고 식사 때는 곧바로 식탁에 올라왔다. 그 때는 하늘이 참 파랗고 맑았다. 밤하늘엔 별들이 더 매달릴 틈이 없이 가득했고, 반짝거리는 북두칠성은 북쪽 먼데 하늘에서 느린 걸음으로 개미 쳇바퀴 돌 듯 하고 있었다. 그 끝으로 북극성은 늘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여름과 초가을에는 마당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 별을 헤며 잠이 들었다. 돗자리 위에는 언제나 할머니의 먼 옛날이야기가 있었고, 마당 한 끝에는 모깃불이 꾸역꾸역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밤하늘에는 길게 별똥별이 줄을 그으며 산을 넘어갔다. 개똥벌레가 환한 빛으로 그 뒤를 따랐다. 별똥별이 개똥벌레로 되는 줄 알았던 유년시절을 강화도의 야트막한 산이며, 구불구불한 골목길에서 되새길 수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신기했다. 강화도를 고향 같다고 생각했다. 살 냄새나는 사람들의 삶은 언제나 읍내 시장 골목에 가득했다. 나는 틈나는 대로 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삶의 냄새를 맡으려고 시장 골목을 어슬렁거렸다. 그리고 뒷산이며, 때로는 북문까지 산보를 했다. 북문 올라가는 길은 봄이면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고, 성벽 옆으로 난 소로는 숲이 우거진 탓에 멋진 등산로가 되었다. 강화도. 그녀의 뜻밖의 제안에 나는 기억 속에 고스란히 담아두었던 강화도를 떠올리고 그 끝에 내 유년시절의 골목길을 떠올렸다.
-글쎄요. 강화도라, 거긴 너무 멀지 않을까요?
 
그래. 강화도는 실제 거리보다 더 먼 곳이다. 그리고 아무리 시간이 일러도 그렇지 강화도라는 곳은 오가는 시간이 만만치가 않다. 남자는 여자의 옆얼굴을 보았다. 그게 장난으로 한 말이기를 바라면서. 그러나 운전을 하고 있는 여자의 얼굴 표정은 태연하고 천연덕스러웠다. 그저 앞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차가 공단 끝의 아파트 단지를 옆으로 끼고 돌았다 남자는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 바람에 여자와 남자는 텅 빈 낯선 동네를 한 바퀴 돈 셈이 되었다.
-꼭 가고 싶다면 가죠 뭐.
-가기 싫으시면 그만 두고요.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너무 멀지 않을까 해서 말이지요.
칙칙한 하늘이 차츰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 한 가운데로 이름 모를 새 한 마리가 빠르게 지나쳤다. 다시 큰 길로 나왔다.
-어디로 가요. 또 한 바퀴 돌아요?
-아니, 그게 아니고. . 그래 영종도는 어떨까요?
-강화도에 가면 아는 분들 만날까봐 그러는 거지요?
-그런 건 아니지만. 아니지. 혹시 그럴지도 모르지. 하여튼 거긴 좀 멀지 않을까 해서요.
 
남자는 멀뚱거리며 차창 밖으로 시선을 주고 있었다. 거대한 도시의 도로는 잠시도 쉴 틈이 없다. 소음과 공해와 찰나적인 사고가 공존하며 생명을 위협하는 곳, 도로는 그런 곳이다. 인간들은 그들의 삶의 편리를 위해 생명의 위협을 담보로 하고 있다. 그건 어리석은 일이다.
-언제 한번 술을 마시고 취해봤으면 좋겠어요. 정말 술이 취하면 생각이 안 날까? 아무래도 이해가 안 돼. 거짓말 같아.
불쑥 여자는 천연덕스럽게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맑게 웃었다. 언젠가도 여자는 그런 말을 했던 것 같다. 기회가 닿으면 한번쯤 술을 취하도록 마셔봤으면 좋겠어요. 아마 그랬던 것 같다. 그냥 농담 삼아 하는 말이려니 했었다. 옆 차선의 차들이 빠르게 지나치고 있었다. 남자는 생각의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영종도 가는 길을 잘 모르거든요?
-내가 가르쳐주는 대로 가세요. 자유공원 아래 만수고가를 넘어 주물단지를 끼고 갈 겁니다.
-그 길을 잘 모르겠어요.
-항구 앞으로 일단 가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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