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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하거나 뻔한 이야기(4) / 여자가 스쳐지나가듯 한 말
게시물ID : readers_3436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철수와영이
추천 : 1
조회수 : 25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9/11/27 20: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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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여자는 창밖으로 무심히 시선을 던지며 까르르 웃었다. 귓불이며 하얀 목덜미가 참으로 예뻤다. 잠시 몸을 꿈틀하더니 용기를 내었다. 남자는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파리한 경련이 일었고, 일순 자동차가 옆으로 조그마하게 휘청거렸다. 대교를 막 벗어나 주물공장 옆을 끼고 돌았다. 늘 무인카메라가 있던 자리는 오늘따라 텅 비어 있었다.
-뭐라고 했냐면요. 나랑 연애 한 번 할래? 그랬어요. 글쎄.
-정말요?
-그럼요. 그것도 두 번씩이나요. 그런데 그게 생각이 안 나요?
여자는 꿈꾸듯이 말했다. 어쩌면 조금 호흡이 거칠어졌는지도 모를 일이다.
-정말 그랬어요?
-철회할거에요?
하늘이 빙글거리며 바다 쪽으로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그리고 앞서 간 차량들이 함께 곤두박질치고 마침내 고속도로가 심하게 일그러지고 있었다. 여자는 그런 남자를 관찰하고 있을 것임에 틀림없었지만 갑작스런 이야기들에 남자는 당황함을 숨길 수는 없었다. 어린 날 몰래 남의 물건에 손을 댔다가 들킨 것 같은 당황스러움이 바로 이런 것이리라. 정말 그런 말을 했는지는 기억에 없지만 그렇다고 그걸 부정하기도 멋쩍은 일이었다.
-아니요. 철회는 안 해요.
남자가 어색하게 웃었다.
-정말이지요?
-그럼요. 한번 뱉어낸 말은 책임을 져야지요. 그럼 정식으로 연애를 한 번 해볼까요? 그런데 내가 그렇게 말했을 때 뭐라고 대답을 했을까요?
-연애 해본지가 오래 되어서 모르겠다고 했어요.
-결국 지금 내가 한 말도 그 범위를 벗어나지 않겠네요.
여자와 남자는 모처럼 함께 후후 웃었다. 다시 차량은 제자리로 돌아와서 제 갈 길을 가고 하늘은 예의 그 칙칙한 빛으로 그렇게 높이 떠올랐다. 그러나 여전히 여자의 표정은 즐거움으로 가득했고 꿈꾸는 눈동자를 하고 있었다. 여자는 중년의 나이임에도 여전히 아름다웠고 나이에 걸맞게 품위를 잃지 않았다. 여자의 아파트 앞에 도착했을 때는 주변에 어둠이 알맞게 내려있었다. 남자는 여자와 헤어지고 길을 건너 택시를 잡았다.
! 내가 그런 말을 했었군. 남자가 중얼거렸다. 그 말이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을 보면 취하긴 취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아무리 취중이라도 그렇지 어찌 그런 말이 염치도 없이 나왔을까? 그게 무의식이라고 한다면 그것조차 이미 남자의 내면에 감추어져 있었을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까지 남자는 특별히 여자에게 이성적으로 관심을 가졌던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그냥 직장의 동료였고, 때로 여자는 남자의 도움을 필요로 했고 남자는 그걸 틈나는 대로 도왔을 뿐이었다. 그건 직장 동료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남자가 그렇게 말했다면 아무리 취중이었다고 하더라도 여자 입장에서는 얼마든지 불쾌한 말일 수도 있었다. 정말 그랬을까? 남자는 가끔씩 술이 과하면 기억이 단절되곤 했었다. 어떤 때는 집엘 어떻게 왔는지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때는 그저 조심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니 남자가 취중임을 빙자해서 그런 말을 했다고 여긴다면 그건 참으로 어찌해볼 수가 없는 일이었다. 취중이라는 걸 어떻게 이해시킬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런데 여자는 남자의 그런 행동에 불쾌해 하지는 않는 듯 했다. 오히려 남자의 그런 심리를 이해하고 싶어서 여자가 나도 취해봐야지라고 했을까? 도무지 생각을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오늘, 여자는 남자의 의식 속을 되짚어 보고 남자가 흘렸다는 취중의 그 말이 갖는 진실성을 가늠해 보고자 했었던 것 같았다.
-어디로 가세요?
택시 기사가 힐끗 쳐다보며 무뚝뚝하게 물었다.
-,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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