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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나라 축구를 보면, 그 나라의 역사와 성격이 보인다?
게시물ID : sports_10397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경영학도(가입:2013-08-09 방문: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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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9/12/01 02:37:32

그 나라 축구를 보면, 그 나라의 역사와 국민성이 보인다?

 

 

 

 

글 / 김성수 (스포츠둥지 기자)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스포츠인 축구. 국제축구연맹(FIFA)가입국은 UN가입국 보다 많을 정도고, 세계축구선수권대회인 월드컵은 전 세계 최고의 축제로 자리잡았다. 이렇듯 축구는 많은 나라에서 행해지는 스포츠고 각 나라마다 고유의 축구 스타일을 선보이고 있다.

 

예를 들면 이탈리아의 수비 축구, 네덜란드의 토털 사커, 잉글랜드의 킥앤 러시 등이다. 이러한 축구 스타일에서 해당 나라의 역사나 국민성. 문화 등을 엿볼 수 있다면 믿겠는가? 축구 스타일로 그 나라의 모든 것을 판단하는 것은 무리지만. 축구가 인기있는 나라에서는 축구가 그 나라 국민들 생활의 일부인 만큼, 축구는 해당 나라의 정보를 알려주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그럼 지금부터 그 나라의 축구 스타일에서 알 수 있는 국민성과, 문화 또 그러한 스타일이 만들어진 이유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1. 잉글랜드

축구 종주국 잉글랜드. 종주국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근대 축구의 종주국은 잉글랜드임이 틀림 없다. 축구 종주국 답게 잉글랜드는 자부심과 자존심으로 가득하다. 보통 축구협회는 KFA(Korea Football Association), JFA(Japan Football Association) 처럼 국가의 머리글자가 앞에 들어가지만 잉글랜드의 축구 협회는 그낭 FA(Football Association)이라 부르며 자신들이 종주국임을 알리고 있다.

 

그리고 전통을 중시해 옛것을 보존하는것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잉글랜드의 평가전을 보면 한가지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주전 선수들이 1번부터 11번까지의 등번호를 달고 나온다는 것이다. 이는 과거에 ‘주전 선수는 1번부터 11번까지의 등번호를 달아야 한다’ 는 룰을 지금까지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데이비드 베컴도 과거 대표팀에서 뛰던 시절 주전이었을땐 자신의 상징은 7번을 달고 뛸 수 있었지만, 주전에서 밀릴 경우 7번을 다른 선수에게 내줘야 했다. 그리고 과거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을 역임했던 스티브 매클라렌은 잉글랜드의 전통적인 전술인 4-4-2 대신 3-5-2 전술을 사용하다 비판을 받기도 했다.

 

전통을 중시하는 모습은 잉글랜드 사회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여전히 귀족제도가 존재하고, 다른 유럽국가와 달리 여전히 좌측통행을 고집하며, 지금은 없어졌지만 ‘재판정에 들어서는 판사는 꼭 하얀 가발을 착용해야 한다’ 는 전통은 무려 300년을 이어왔다. 하지만 이러한 자존심은 폐쇄성을 동반하여,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로도 꼽혔다. 1906년 국제축구연맹(FIFA)에 가입한 잉글랜드는 강한 자존심 탓에 늘 거만한 태도로 일관하다 1928년엔 FIFA를 탈퇴하기에 이르렀고, 1회부터 3회까지 월드컵에 불참하기에 이른다. 그들의 자존심은 여전했지만, 다른 나라의 축구는 급격히 성장하고 있었고, 결국 이러한 성장세에 잉글랜드는 큰 망신을 당하게 된다. 사상 처음으로 출전한 월드컵(1950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잉글랜드는 미국과 스페인에 연패를 당하며 예선 탈락했고, 2년 후 열린 헬싱키 올림픽에서도 헝가리에게 3-6으로 패배하며 종주국 자존심에 먹칠을 했다. 그 후 잉글랜드는 자국에서 열린 1966년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 포르투갈, 서독등 강호들을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하며 드디어 종주국으로 체면을 차리는데 성공했다.
 
잉글랜드 축구는 ‘킥 앤 러시’를 기반으로 한다. 킥 앤 러시란 멀리차고 달린다는 의미로 아기자기한 플레이 대신 선 굵은 플레이를 지향하며, 강한 신체조건을 바탕으로 빠른 공수전환을 보여준다. 이러한 축구가 잉글랜드에 자리잡을 수 있었던 배경은 잉글랜드인들이 단순한 것을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기후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잉글랜드는 날씨가 매우 안좋기로 유명하다. 1년 내내 기온이 낮고 흐리며, 안개가 자주 끼고 수시로 소나기가 내린다. 그래서 잉글랜드인들은 가끔씩 해가 날 때마다 일광욕을 즐긴다. 이러한 날씨를 견디기 위해서 선수들은 강인한 육체를 만들어야 했고, 비로 인해 질퍽거리는 땅과 안개로 인해 시야 확보가 잘 안되는 곳에선 짧은 패스보단 긴 패스가 유리하기 때문에 이러한 플레이 스타일이 자리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잉글랜드인들은 변화를 싫어하고 강인함과 우직함을 자랑스러워 하고 있다. 킥 앤 러시는 잉글랜드인들의 이러한 성향과도 잘 어울린다.


미드필드를 생략하고 롱 패스 위주로 경기를 펼치는 잉글랜드의 이러한 스타일은 미드필드를 중시하는 현대축구와는 다소 반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리고 강한 피지컬을 바탕으로 선 굵은 플레이를 위주로 하는 모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지루함을 유발 할 수 도 있다.하지만 강한 축구를 원하는 이에겐 잉글랜드 축구는 더없이 매력적이다. 좋은 체격 조건을 지닌 선수들이 쉼 없이 뛰어다니며 때론 몸싸움도 불사하는 모습에선 마초적인 느낌도 난다. 전통을 중시하는 잉글랜드 특성상 자신들의 스타일을 바꿀 가능성은 매우 낮다. 하지만 그로 인해 그들의 축구에선 종주국의 자존심과 전통을 지켜온 자부심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2. 이탈리아

유럽 중남부에 위치한 나라 이탈리아. 이탈리아는 유럽 국가 중 최다 월드컵 우승횟수(4회)를 자랑한다. 이탈리아 국토는 장화처럼 생겼지만, 이탈리아인들은 자신들의 국토를 축구화에 빗대며 축구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고 있다.

 

이탈리아 축구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바로 수비축구다. 소위 ‘카테나치오’ 라고 일컬어지는 이탈리아의 철통 같은 빗장 수비는 이탈리아 축구를 상징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탈리아가 수비축구가 득세할 수 있게 된 계기는 무었일까? 답은 이탈리아인들의 국민성과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이탈리아에선 승패에 굉장히 민감하다고 한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 패배했지만 좋은 경기 내용을 보여줬을때 ‘졌지만 잘 싸웠다.’ 며 패한 팀을 격려하기도 하지만 이탈리아에선 통하지 않는 이야기다. 이탈리아에선 승리하면 영웅에 버금가는 대접을 해주지만 패배할 경우 엄청난 비난을 쏟아내기 때문에 선수들은 어떠한 방법을 써서라도 이기기 위해 노력한다.

 

1934년 이탈리아 월드컵 당시 결승전에 오른 이탈리아는 체코와 맞붙었는데 경기 후반까지 체코에 0-1로 지고 있자 당시 이탈리아 관중들이 선수들에게 외친 구호는 “죽어라” 였다. (다행히 종료 직전 이탈리아가 동점골을 넣었고, 연장전에서 이탈리아 역전골을 넣으며 2-1로 승리했다) 그리고 지난 2002 월드컵 16강전에서 우리는 이탈리아의 온갖 비신사적인 행동을 목격했다. 비에리의 팔꿈치 가격으로 김태영의 코뼈가 부러졌고, 토티 역시 김남일을 공중에서 가격했으며, 연장전엔 헐리우드 액션으로 페널티킥을 유도하려다 퇴장을 당하기도 했다. 연장 후반 안정환의 골든골로 우리가 2-1로 승리하게 되자 이탈리아는 온갖 핑계를 대며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다. 심판 판정에 문제가 있었다며, 당시 주심을 봤던 에콰도르 출신의 바이런 모레노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렸고, 당시 안정환의 소속팀인 페루자의 구단주는 안정환이 결승골을 넣었다는 이유로 ‘벤치에 앉히겠다’ 는 독설을 날리기도 했다. 이는 그만큼 이탈리아가 승리를 중요시 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역사적인 배경에서 살펴보자면 이탈리아는 과거엔 밀라노 공국, 제네바 공화국, 나폴리 왕국등 여러 도시국가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러한 도시국가들은 국력이 약하기 때문에 약간의 침범에도 함락의 위험을 당할 수 있다. 그렇기에 그들은 자신들의 국가를 지키는 것이 중요했고, 함락을 의미하는 패배는 용납될 수 없기에 이러한 성향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여진다.


 하지만 이탈리아 축구에선 이렇게 피비린내 나는 승리지상주의만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술의 나라 답게 축구 선수들을 예술적인 의미로 표현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판타지스타(공을 잡는 것만으로도 관중의 환호성을 이끌 수 있는 선수), 트레콰르티스타(공격수와 미드필드 사이에서 공격을 전개해 나가는 선수) 레지스타(중원에서 경기를 조율하는 선수) 같은 멋진 단어들은 모두 이탈리아에서 나온 표현들이다. 콜로세움, 피사의 사탑등 세계적인 건축물을 보유중이고, 레오나르도 다빈치라는 유명한 예술가의 고향이기도 한 이탈리아에선 축구에서도 예술적인 향기를 맡을 수 있다. 승리를 쫓는 열정과 그 속에 숨어 있는 예술성. 이것이 이탈리아 축구의 매력이다.  

 


3. 네덜란드

유럽 북서부에 위치한 작은 나라 네덜란드. 네덜란드는 ‘낮은 땅’ 이란 뜻으로 이들의 국토는 원래 해수면보다 낮지만, 풍차를 이용해 바닷물을 퍼내고, 온갖 정화방법을 동원해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네덜란드엔 ‘신은 자연을 창조했지만 네덜란드는 네덜란드인이 창조했다’ 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자부심이 강하다. 네덜란드 국가대표팀은 전통적으로 오렌지색 유니폼을 착용하는데 이는 네덜란드의 영웅인 빌렘 오라니에 공의 오라니에가 영어로 오렌지를 뜻하고, 네덜란드를 상징하는 색 역시 오렌지색이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축구를 대표하는 말은 바로 ‘토털 사커’다. 토털 사커란 말 그대로 선수들이 전원 공격, 전원 수비를 하는 것을 말하며 그라운드의 11명의 선수가 마치 한 몸처럼 움직이는 전술을 말한다. 네덜란드에서 토털 사커가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은 그들의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네덜란드란 나라는 다양한 곳에서 온 사람들이 협력해 만들어 낸 공동체고 바닷물을 퍼서 비옥한 영토로 만들려면 많은 이들의 협동이 필요했기 때문에 선수들의 협동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토털 사커에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하는 네덜란드의 문화는 소통이 중요한 토털 사커가 발전할 수 있는데 원동력이 되었다. 네덜란드는 과거 ‘80년 전쟁’이라 불리는 독립전쟁을 벌이기도 했지만, 이들이 강대국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것은 전쟁보단 외교였다. 그래서인지 네덜란드인들은 대부분 2~3개 국어를 구사하는 것이 가능하다. 또 지리적으로 독일, 프랑스등과 인접해 있고 평야로 뻥 뚫려 있어 다른 문화와 소통이 용이하다. 그래서 네덜란드 인들은 외향적이며, 다른 나라에 진출하는 것에 거부감이 없다.


 이렇게 전쟁보단 외교를 중시해서인지 네덜란드 축구는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름답게 이기는 것을 선호한다. 그래서 그들의 축구는 전쟁 같은 치열함 보단 11명이 유기적인 호흡을 맞추며 보는 이로 하여금 찬사를 일으킬 만한 경기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다. 승리를 위해 물불 안가리는 이탈리아와는 딴판이다.


네덜란드의 축구영웅 요한 크루이프는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자국 대표팀을 준우승으로 이끈 반 마르바이크 감독에게 수비적인 모습을 보이는 이른 바 ‘실리 축구’를 했다는 이유로 날선 비판을 가했고, 올 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팀인 첼시에게도 수비전술로 우승했단 이유로 그들의 우승을 평가절하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성향이 네덜란드의 우승에 방해가 된다는 지적도 있다. 필요할 땐 거친 반칙도 하고, 가끔씩 교묘히 시간을 끄는 것도 필요하지만, 깨끗하고 아름답게 이겨야 하는 네덜란드에게 이는 용납이 안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 네덜란드는 메이저 대회에서 고작 1번(유로88)밖에 우승하지 못했고, 월드컵에선 준우승만 세 차례 기록하고 있다. 축구 역사상 가장 혁명적인 팀으로 불리고 있지만 아직 우승이라는 타이틀은 없는 네덜란드. 과연 그들은 자신들의 방식대로 우승을 차지할 수 있을지, 아니면 스타일을 약간 바꿔 도전 할지도 주목거리다. 네덜란드는 변화에 관대하기 때문에 어쩌면 토털 사커를 뛰어 넘은 새로운 전술을 만들어 낼 지도 모르는 일이다.      



출처: https://www.sportnest.kr/1388 [스포츠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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