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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하거나 뻔한 이야기(11) / 이성과 감성
게시물ID : readers_3443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철수와영이
추천 : 1
조회수 : 28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9/12/25 22:3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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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마라톤 대회 날짜가 점점 가까워져 왔다. 마라톤은 남자가 즐기는 운동이었다. 남자는 한 달에 두 번 정도 마라톤 대회에 참가했다. 주로 하프 코스를 달리는데 한 해에 두 번은 풀코스를 달린다. 이번에는 늘 하듯이 하프코스 참가를 신청했다. 그러나 남자는 그 동안 이러저러한 일들로 충분히 연습하지 못한 탓에 내심 걱정이 되었다. 지난해의 기록은 고사하고 제대로 완주를 할 수 있을지 내심 걱정이 되었다. 어떻든 남자는 대회 날짜에 맞추어 없는 시간을 쪼개어 나름대로 마지막 몸을 만들고 있었다. 하프 코스이므로 완주에는 별로 문제가 없을 것이지만 아무래도 기록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지난해에 비해 기록을 3분 정도 더 늘려 잡기로 했다. 매일 퇴근을 한 후에 한 시간 정도씩 달리기 연습을 하고는 있지만 아무래도 3분을 늘려 잡아도 힘에 겹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그저 최선을 다 해볼 생각으로 매일 운동장을 찾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남자가 달리기 연습을 하는 운동장에 여자가 왔다. 여자는 남자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남자는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거칠게 숨을 내뿜으며 남자도 그녀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여자는 그런 남자의 모습이 아이 같다고 했다. 운동을 마치고 옷을 갈아입기 위해 운동장 밖으로 나왔다. 남자가 상의를 벗자 여자는 운동하는 사람이 무슨 배가 이렇게 크냐고 놀렸다. 남자가 땀을 닦고 옷을 갈아입기 위해 하의를 벗었을 때 여자는 화들짝 놀라며 주변을 둘러보고는 얼른 수건으로 남자의 아래를 가리며 당황스러워했다.
 
운동을 마치고 여자와 남자는 함께 바닷바람을 쐬러 갔다. 바다를 매립한 신도시에는 거대한 건물들이 하루가 다르게 솟아오르고 있었다. 바다 끝에는 공사 중이라 접근이 금지되었다. 도로의 끝에는 철조망으로 둘러쳐져 있었고 두 사람은 그곳에서 되돌아 나와 저녁식사를 할 만한 곳을 찾기로 하였다. 간단한 요기를 할 수 있는 식당에 들어서자 금방 온몸에 온기가 퍼졌다. 자리를 잡고 앉자 여자가 그윽한 눈으로 쳐다보며 물었다.
-요즈음 내가 너무 당돌한 것 같지 않나요?
-갑자기 무슨? 남자가 여자를 보며 되물었다.
-그냥요. 내 스스로 생각해도 전과 무척 다른 나를 보는 것 같아서요. 사실 너무도 변한 내 모습에 놀라 하루에도 수십 번 씩 마음의 동요가 일어나요. 늘 마음속에서는 가슴이 시키는 대로. 안 돼. 이성적으로하고 두 마음이 오락가락 해요. 정신이 나면 이성이 이기고 선생님을 보면 모든 것이 순식간에 다 무너져 버려요. 그래도 이성이 이기도록 무던히 애쓰고는 있지만 가슴에 담는 것까지 이성에 맡기고 싶지는 않아요. 꼭꼭 가슴에 선생님을 담아 놓고 싶거든요.
여자는 남자를 지칭할 때 꼭 선생님이라고 했다. 남자가 처음에 그런 호칭을 들었을 때 짐짓 우리가 아직도 적당히 부를 만한 호칭도 없었구나 하고 놀랐었다. 남녀 사이라는 것이 늘 그렇게 까다로운 모양이었다.
 
-그래요? 정말 고맙고도 멋지네요. 사실 나도 처음 마주할 때는 당황스럽기도 했는데 그게 어느새 어떤 묘한 설렘 같은 것으로 바뀌어갔어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느낌이 참 좋아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미양 씨와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점점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더군요. 아마 다른 사람들도 그렇지 않을까 싶어요. 서로를 확인하는 순간을 미양 씨는 접점이라는 멋진 말로 표현했지요? 정말이지 그 순간은 정말 당신뿐이었지요.
남자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여자는 다소 붉어진 얼굴로 웃고 있었다.
-그리곤 구름 위를 나는 듯한 날들의 연속이었지요. 그건 지금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생소한 것이어요. 생각해 보니 산다는 건 참으로 신명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게 꿈이 아니라면 말이지요.
 
-?
여자가 되물었다.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러나 그건 분명코 꿈은 아니야. 여자는 콧소리를 내며 남자를 바라보았다. 중년의 여인에게도 소녀 같은 감성이 잠재해 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웠다. 그리고는 여자는 황홀감에 젖어 늘 그렇듯 숨을 죽이고 한동안 다소곳이 있었다. 여자는 언제나 자기 생각을 뒤로 감추어두고 몸을 잔뜩 움츠린 채로 조용하게 처신을 했었다. 그런 여자에 대해 남자들은 일종의 보호본능 같은 것을 느끼기도 했다. 여자는 자기의 가장 내밀한 모든 것을 드러낸 일로 아이 같은 투정을 하고 있었다. 가슴과 이성이 따로 간다는 투정.
여자는 안도하는 표정으로 젓가락으로 반찬을 뒤적이다가 문득 지나치는 말처럼 남자에게 말했다.
-, 계획서 마감이 코앞인데 아직 갈피를 못 잡고 있어 부담스러워요. 좀 도와주시면 안 돼요?
여자는 눈으로 웃으며 고개를 갸웃이 하며 남자를 쳐다보았다. 순간 남자는 여자의 하얀 목덜미가 새삼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여자는 남자가 뭘 도와주면 될까 하고 묻기가 바쁘게 아예 원고를 써 주면 어떻겠느냐고 매달렸다. ! 내 귀여운 악마. 남자가 웃었다.
 
-월요일이면 원고를 제출해야 하는데 오늘밤부터 토요일 늦은 시간까지 교회 사람들과 고로쇠 수액을 마시러 가기로 약속이 되어 있거든요.
-그래요? 할 일을 제쳐두고 신나는 여행을 한다니 대단힌 베짱이네요.
-도와주실 거라 믿어요.
-어떻든 첫 번째 토요휴무일을 멋지게 계획했네요.
남자가 웃으며 여자를 바라보았다. 여자는 살짝 미간을 찡그리며 남자를 보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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