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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하거나 뻔한 이야기(15) / 끝없는 자유
게시물ID : readers_3447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철수와영이
추천 : 1
조회수 : 26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0/01/10 17: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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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다음으로는 돈 많은 사람들이 광분했다. 새로 만들어진 땅은 그들에게 기회의 땅이었다. 아파트든 주상복합건물이든 건물이 들어서기만 하면 전국에서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사람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신도시의 곳곳에 바벨탑을 세웠다. 신도시도 여느 도시와 마찬가지로 밤을 가리기 위해 휘황한 불빛으로 치장했다. 마침내 허허벌판 위에 세워지는 신도시의 밤도 어둠을 잃어버렸다. 원래 하나였던 밤과 어둠이 사람들의 탐욕으로 철저히 격리되었다.
 
어린 시절 어둠은 엄청난 공포였다. 마당 끝의 화장실은 공포의 극점에 있었다. 그래도 그 어둠 속엔 동화를 가득 담은 영롱한 별들이 있었다. 유난히도 맑은 가을 하늘은 밤이 되면 온 하늘이 별이었다. 그야말로 별 천지였다. 길게 드러누운 은하수는 끝없는 상상을 불러일으켰다. 별은 할머니의 옛날이야기 창고였다. 어둠이 사라지자 그 어둠의 끝에 매달려 있던 별들도 사라져버렸다. 별이 사라지자 별과 함께 있던 꿈도 신화들도 모두 사라져버렸다.
 
남자는 자동차 안에서 그런 까맣게 텅 빈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곳에서 남자는 어린 시절 꾸어왔던 꿈의 흔적을 어렴풋이 보았다. 꿈은 텅 빈 하늘을 유영하고 있는 듯했다. 하늘 한 가운데를 가로질러 북쪽으로 가다가 퇴색한 카시오페아를 돌아 겨우 자리를 잡고 앉은 북두칠성을 향해 날아오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어 순간적으로 약간 혼란스러웠다. 멀리 가로등이 싸한 밤공기에 몸을 잔뜩 움츠리고 있었다. 희끗하게 내다보이는 바다에는 이미 바닷물이 빠지고 갯벌이 드러나 있었다. 갯벌은 한낮의 피곤을 걷어내고 벌거벗은 여인마냥 속살을 드러내고 누워있었다.
 
남자는 차 밖으로 나와 바람을 맞았다. 시원한 바람이 살 속을 파고들자 취기가 조금 가시는 것 같았다. 남자가 크게 기지개를 켜다가 인도 위의 조그마한 돌을 걷어찼다. 돌은 보도블록 모서리에 부딪쳐 산산이 부서졌다. 그러자 밤하늘의 별이 부서졌다. 부서진 별들이 하늘에서 어둠을 뚫고 신도시 위로 와르르 쏟아져 내렸다. 허허벌판 이미 아파트가 들어선 곳에서는 휘황한 불빛이 어린 시절 보았던 밤하늘의 은하수를 흉내 내고 있었다
 
남자는 몇 번씩이나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는 다시 차 안으로 들어갔다. 여자는 그런 남자를 고개를 돌려 바라보며 웃었다.
처음 이 허허벌판에서 둘이 서로를 확인한 이후 이곳의 어둠은 그들의 보금자리였다. 별 속의 꿈을 앗아가고 신화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지만 둘은 그들만의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이 허허벌판의 방파제 너머에서 간간히 들려오는 파도소리를 들으면서.
 
여자와 남자는 까만 어둠을 병풍 삼아 서로를 안았다. 남자는 여자의 몸이 새털처럼 가볍다고 느꼈다. 여자의 몸은 늘 편안했다. 둘은 이내 하나가 되었다. 그러다가 별이 되고 달이 되었다. 하늘이고 땅이 되었다. 그녀의 들뜬 목소리는 점점 목울대를 꺾고 있었다. 폭포수가 쏟아져 내리다가 단비가 내렸다. 여자와 남자는 긴 시간 서로를 탐닉하며 황홀해했다. ! 끝없는 자유.
여자가 남자의 가슴팍에 흥건해진 얼굴을 묻고 가쁜 숨을 내쉬었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지?
여자가 콧소리를 하며 남자의 가슴 속에서 물었다. 남자는 대답대신 여자의 젖가슴을 쓸어내렸다. 여자의 젖가슴은 마치 아직 덜 성숙한 중학생처럼 작고 아담했다.
-그런데 신기한 게 있어. 사실 신기하다기보다 궁금한 것이지.
-뭐가요?
-처음 당신이 술을 마시고 싶다고 할 때 말이지. 속셈이 따로 있었던 거지?
-흐흥. 마음대로 생각하세요. 나는 모르는 일이랍니다.
 
여자가 남자의 가슴 속에서 웃었다. 가슴을 타고 여자의 고른 숨소리가 전해졌다. 까만 하늘에 두어 개 별이 파리하게 떨고 있었다. 땅엔 봄이어도 아직 하늘은 추운 겨울을 벗어나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런가?
-사실은... , 사실은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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