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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 소설]손해를 감수해야 행복할 수 있다
게시물ID : lovestory_8934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어절씨구베이베
추천 : 1
조회수 : 35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0/02/07 15:49:08
[자존감 소설]손해를 감수해야 행복할 수 있다

노인의 여행을 따라나선 청년은 노인과 사람들의 대화를 기록하고 있었다. 노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여행길을 떠나자 청년도 함께 나섰다. 청년은 노인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있었다. 노인을 따라 나서야 한다는 것이 일상이 된 것처럼, 노인이 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위해 가는지도 묻지 않았다. 다만 작성한 노인과 사람들과의 대화를 읽고 읽으며 생각하고 반추했다. 그리고 무언가 궁금한 것이 생겼는지 노인에게 질문했다.

청년 : 선생님께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을 되짚어보면,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면 행복해지고 부정적으로 바라보면 불행해지는 것 같습니다. 맞습니까?

노인 : 그렇다네. 나는 종종 동네 뒷산에 올랐는데 재미있는 관경을 보곤 했네. 등산로 중간에는 그리 크지 않은 돌 불상이 하나 있어. 언제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르고, 누가 가져다 놓은 건지도 모르는 불상이네. 그런데 불상 앞에서 합장을 하고 동전 몇 개를 놓는 사람들이 있었네. 그 사람들은 불상을 어떻게 생각하기에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일까?

청년 : 불상이 소원을 들어준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노인 : 그렇다네. 분명 불상을 긍정적으로 가치판단 한 것일세. 불상이 자신을 건강하게 만들어주고, 시험에 합격하게 도와주고, 또는 가족을 행복하게 해준다고 믿었던 거겠지. 이 사람들에겐 잘잘못이 없네. 돌 불상을 어떻게 가치판단하든 그건 그들의 권리니까. 하지만 정반대로 행동하는 사람들도 있었네. 불상을 보며 혐오어린 표정을 보이며 욕설을 하거나, 무섭다고 피해서 길을 돌아가거나, 심지어 돌멩이를 던지는 사람도 있었네. 그들은 무엇 때문에 불상을 그렇게 혐오했던 것일까?

청년 : 불상을 안 좋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노인 : 맞아. 분명 불상을 부정적으로 가치판단 하는 것일세. 기도를 하면 지옥에 가는 대상으로, 자신을 괴롭히는 악령으로, 때로는 망가트려야 하는 존재로 생각할 수도 있다네. 이 사람들에게도 잘잘못은 없네. 불상을 어떻게 가치판단하든 그건 그들의 권리니까.

청년 :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저마다 세상을 보는 기준은 다르니까요.

노인 : 이런 생각을 해보는 건 어떻겠는가. 그 불상이 진짜 소원을 이뤄주었을까? 또는 진짜 사람들을 괴롭히는 존재일까? 둘 다 아니야. 그 불상은 아마 석재 업체에서 버리기 아까워 산에 가져다 놓은 것 같네. 결국 사람의 모양을 한 화강암 덩어리에 불과한 것일세. 하지만 누군가는 돌덩어리에 긍정적 영향을 받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부정적 영향을 받기도 하지 않나? 이게 인간이야.

청년 : 그럼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어떤 시각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걸까요? 세상을 긍정적으로만 보아야 하는 건가요?

노인 : 꼭 그렇지는 않네. 부정적 시각이 필요할 때도 있네. 전쟁, 기아, 절도, 살인, 강간, 유괴, 질병... 이런 것들은 긍정적으로 보면 세상은 어떻게 되겠는가?

청년 : 아, 어떤 말씀인지 알 것 같습니다. 부정적 시각이 우리를 지킬 수도 있군요. 이 마을 사람들이 유달리 부정적으로 세상을 보던 건 나름대로 지키며 사는 방법이었고요.

노인 : 이제 자네 눈이 좀 밝아지는구먼. 그래서 행복에는 정답은 없어. 우리는 세상에서 도망칠 수 없고, 죽기 전까지 세상과 관계를 이루며 살아갈 수밖에 없지. 그리고 세상을 각자의 시각으로 판단하며 살아가고 있다네.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는 구체적 대상은 물론이거니와, 사랑과 미움 같은 보이지 않는 추상적 대상에도 가치판단을 한다네. 옳고 그름을 따져야 하는 특정 상황과 행위에도 가치판단을 하지. 각자의 판단에는 옳고 그름이 없어. 세상을 무엇이라 판단하든 그건 각자의 권리니까. 나에게 유리한 가치판단을 하며 살면 되는 거고, 가치판단의 권리를 통해 만족스러운 삶을 이루면 되는 거라네.

청년은 ‘우리는 자신에게 유리한 가치판단을 하며 살아가고 있고, 유리한 가치판단을 하며 살아가면 된다.’라 기록했다. 기록한 글을 한참 들여다보며 한참을 생각했다. 그리고 노인에게 다시 질문했다.

청년 : 선생님 말씀을 들으면 행복이란 건 참 쉬운 것 같습니다. 내가 붉은 세상을 행복이라 생각한다면 세상을 붉게 바라보면 되고, 파란 세상을 행복이라 생각한다면 세상을 파랗게 보면 되니까요.

노인 : 그렇다네. 그게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의 태도야.

청년 : 하지만 선생님 말씀대로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행복해지는 법은 너무 쉬운데 왜 실천이 어려운 걸까요?

노인 ; 내가 아니라 세상이 바뀌길 기대하니까.

청년 : 그럼 왜 세상이 바뀌길 기대하는 걸까요? 세상을 내 마음대로 바꿀 수 없는 걸 아는데도 말입니다.

노인 : 내가 바뀌면 손해볼까봐 그런 거지. 저쪽에 보이는 허름한 집에 사는 사람은 행복할까, 불행할까?

청년 : 잘 모르겠습니다. 

노인 : 저 집주인이 가난을 불행이라 생각한다면 행복해지가 위해 무엇을 해야 하겠나? 돈을 벌어야 하네. 부유함과 안락함을 긍정적으로 보아야 하고, 경제활동을 좋아해야 하겠지. 하지만 그는 무엇을 손해 보게 되는가?

청년 : 편안함을 잃게 될 것 같습니다.

노인 : 저 집주인이 가난해도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무엇을 해야 하겠나? 현재 환경에 만족하고, 지금 가진 것에 감사할 수 있어야 하네. 그럼 그는 무엇을 손해 보게 되는가?

청년 : 풍요로움을 얻지 못할 것 같습니다.

노인 : 그렇다네. 그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거야. 부유함을 얻고 싶다면 편안함을 손해 보아야 하고, 현재 삶에 만족하고 싶다만 부유함을 손해 보아야 하지. 어떤 쪽에도 손해는 있어. 하지만 손해 보기 싫으니 쉽사리 결정하지 못하고, 내가 바뀌기를 포기하고, ‘차라리 세상이 뒤집혔으면’하는 욕심에 사로잡히게 되는 거라네.

청년은 ‘행복에는 손해가 따른다.’라고 기록했다. 그리고 자신의 과거를 반성했다. 결핍이 싫었고 많은 것을 얻고 싶었다. 하지만 움직이기 싫었고, 그래서 내 기준대로 변하지 않던 부모와 사람과 세상을 탓했던 시절이 있었다. 딜레마에 빠져 힘들어했던 시절을 부끄럽게 생각했다. 노인과 청년은 어느새 ‘외로움’이라 불리는 도시에 도착했다.
출처 내 블로그
https://blog.naver.com/addictherapy/221799917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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