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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하거나 뻔한 이야기(25) / 성지 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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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철수와영이
추천 : 2
조회수 : 29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0/02/29 21: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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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어머, 두 분이 여기 계셨어요? 저희들 지금부터 여기서 협의를 하기로 되어 있어요.
-, 그런가? 나는 협의에 참석하면 안 되나?
남자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여자는 컴퓨터 화면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로 거들었다.
-벌써 협의 시간이 되었나? 오늘은 종일 정신이 없네. 미안해요. 내가 미리 알려주어야 하는데.
-아니에요. 부장님은 늘 바쁘신 분인데 저희들까지 챙기시면 저희들이 미안하지요.
-그렇게 생각해주니 고맙네요.
 

회식 자리는 늘 왁자했다. 처음에는 조용하던 자리가 술잔이 돌면서 점점 소리가 켜지는 게 회식 자리다. 술은 속에 감추어둔 이야기를 끌어내주는 묘한 힘이 있다. 그 동안의 힘든 일들, 서로에 대한 오해 같은 것들이 술잔에 담겨 씻겨 내렸다.
-힘들지 않아요?
남자가 술잔을 들어 올리며 자리에 빙 둘러 앉은 직원들에게 말했다. 그건 인사치례일 수도 있지만 남자는 정말로 직원들이 고마웠다. 처음 여자가 남자에게 해 준 말이 문득 문득 생각났기 때문이다. 모두가 남자의 부임을 내심 부담스러워하지 않았던가. 그런 그들이 남자가 옴으로써 갑자기 늘어난 업무에도 흔쾌히 응해하는 것이 참으로 고마웠다.
-이렇게 멋진 술자리도 마련해 주시는데 힘들다니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그럼요. 모두 즐겁게 하고 있으니 염려 붙들어 매세요.
술자리에서는 그 동안의 고단했던 일들이 눈 녹듯 했고, 때로 짓궂은 농담이 오가고 더러는 티격태격하며 그 동안에 쌓인 오해를 풀기도 한다. 여자는 걱정스런 눈빛으로 남자를 건네다 보았다. 남자는 직장 내에서의 위치 탓에 술자리에서는 집중적인 술잔 세례를 받곤 한다. 여자가 보기에 벌써 상당한 양의 술을 마신 것 같았으나 남자는 좌석의 분위기를 깰까 싶은지 유쾌하게 떠들어댔다.
-너무 늦지 않을까요?
보다 못해 여자가 시간을 물었다.
-그런가요? 너무 늦으면 안 돼지. 이쯤에서 자리를 마치지 뭐. 괜찮지요?
-, 일어납시다. 시간이 되었네요. 너무 늦으면 집에서 모두들 기다립니다.
 
늦은 시간. 자리에서 일어설 때는 모두가 상당히 취기가 오른 듯 했다. 여자들은 대체로 술자리에서 저녁 여덟시를 마지노선으로 했다. 그건 남자가 오면서 만뜰어 놓은 나름대로의 술문화였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들도 부담 없이 잘 어울렸다.
저녁 봄바람은 참으로 감미로웠다. 남자는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취기가 조금은 가시는 듯 했다.
-우리는 오락실에서 좀 놀다 갈 겁니다.
-그래? 너무 늦지 않도록 해.
-별 걱정을 다 하십니다.
서로 인사를 마치자 여자들은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고 젊은 남자들은 모두 오락실로 발길을 돌렸다.
-많이 드셨지요? 제가 집까지 모셔드릴게요.
여자가 남자를 보며 말했다.
-아뇨. 걸어서 가도 됩니다.
짐짓 남자가 호기를 부렸다. 그러자 남자직원들이 시간이 늦어 걸어가시면 안 된다고 막아섰다. 남자는 내심 젊은 친구들이 그러기를 기대했다. 물론 그건 여자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이 둘이 술자리에 어울리는 이유이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은 둘의 그런 속내를 알 리가 없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술자리가 있으면 여자가 남자를 데려다 주는 것이 당연한 일처럼 되어버렸으므로 둘의 은밀한 행위에 대해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모두들 혀 꼬부라진 소리로 잘 모시라는 당부를 할 뿐이었다. 차 속에서 여자가 남자를 쳐다보며 물었다.
-오늘 많이 마셨어?
둘이 있을 때면 여자의 말투는 다정한 연인의 말투로 변했다.
-아니. 별로.
-당신이 오늘은 기분이 좋은가봐. 내가 보기엔 많이 취한 것 같은데.
-그럼 술을 좀 깨고 갈까?
 
여자는 남자에게서 그 말이 나오길 기대했었다. 여자는 대답 대신 황량한 벌판과 대형 건물들이 혼재된 신도시로 차를 몰았다. 어둠을 뚫고 수많은 차들이 서치라이트로 길게 줄을 그으며 스쳐 지났다. 대교를 넘어서자 어둠이 조금 더 깊어졌다. 별이 사라진 하늘은 거대한 불랙홀 같았다. 그 많은 별들이 모두 어디로 갔을까.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언제부터인가 반딧불이가 사라지더니 이어서 별들도 사라지고 있었다. 모두 인간의 탐욕 때문이리라. 신도시는 아직도 개발이 한창이라 일부를 제외하고는 이곳저곳 도로만 개설되어 있고 허허벌판이었다. 그러므로 그곳은 그들이 처음 서로의 탐하고 난 이후로 오늘처럼 술자리가 있는 날이면 자주 찾는 곳이 되어버렸다. 그곳은 누구 하나 눈여겨보는 사람이 없는 곳이었다. 은밀함을 유지하기에는 그보다 더 좋은 곳이 없었다. 남자는 그래서 신도시를 자기들만의 성지라고 했다.
-이곳은 아무리 생각해도 참 성스러운 곳이야. 그야말로 성지란 말이지.
-성지를 아무 곳에나 함부로 붙여도 되나?
-아무 곳이라니 우리에겐 특별한 곳이지. 둘이서 즐겨 성을 공유한 곳이니까.
-그런 의미의 성지?
-그렇지. 그렇게 보면 한자 교육은 꼭 필요한 거야. 그럼, 지금부터 성지순례를 한 번 해볼까?
-크하하하, 그런 것 같기도 하네. 헷갈리지 말아야지.
 
여자가 운전을 하며 독특한 웃음소리로 즐겁게 웃었다. 그런 여자를 쳐다보며 남자는 여자를 안았다.
-어허, 운전에 방해됩니다. 사고 나면 어쩌시려고 그러시나.
여자는 남자의 손을 가볍게 뿌리치며 싫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당신이 운전을 하는 동안 나는 심심해서 별로 할 일이 없거든. 그러니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별 걱정을 다 하십니다.
남자가 슬그머니 여자의 가슴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여자의 작은 가슴은 부드러웠다. 남자의 손길이 스치자 아담한 유두가 돌기처럼 일어섰다.
-운전에 방해되십니다요.
-나는 신경 쓰지 마세요. 그냥 혼자 노는 거니까요.
남자가 키득거리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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