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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없이 노트북을 사게 된 이야기.
게시물ID : humordata_185332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철전열함
추천 : 7
조회수 : 2652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20/03/01 22:51:02
나랑 24살 띠동갑 사촌동생이 중학생(진)이 되었다.



물론, 코로나 덕분에 입학이 연기가 되어서 아직도 초등학생과 중학생 그 어딘가에 있는 경계인이지만,
이 녀석은 4살 차이나는 동생한테 "초딩주제에..."라는 발언을 하여, 그 씩씩하기 그지없는 막둥이를 울려버렸다.

역시 중학생이 제일 무서워.
그리고 그 중에 중2가 제일 무서운데, 애는 싹이 보이네.

라며

중학교 학생부와 그 한창 말 안듣는 중2 담임을 5년째 맡고 있는 내 친동생은 울음보터진 막둥이를 안아들고, 
짝은 오빠가 아이스크림을 사줄테니 뚝 그치렴.
이라고 딜을 했고,

막둥이는 아이스크림받고 과자 2봉지를 더 받아내고는, 
의기양양하게 장염걸렸다가 겨우 회복한 조카에게 지딴에는 고모라고 과자나눠주고 있었다.
요즘 애들은 커서 뭐가 되려고...라며, 30넘은 오빠 언니들의 근심을 더 얹어주었다.

제수씨는 "어머어머. 아가씨. 안돼요. 애 또 설사해요."라며 당황해했다.

나는 그 과자 몰래 집어먹다 들켜서 나이값 좀 하라는 말을 들었다.


 
코로나때문에 학사일정이 연기되었지만, 사실 시골읍내의 학원들은 그냥저냥 운영 중이더라.
애야 착하게 크면 되지.라는 외삼촌부부와 달리, (어디서 남의 것 뺏는것도 안되지만, 뺏기는 것도 안되지. 라는 나와 달리)
지금 공부안하면 우리같이 똥멍청이 돼!!!! 안돼!!!! 라며, 사촌언니들이 (나는 아님) 학원비내줘서 
읍내에 학원을 다니고 있다. 영어 수학 뭐 이런 것들.
그리고 요즘은 시골애들이 원어민이랑 더 밀착해서 영어배우니까 발음 더 개좋음.

솔직히 니네보다 애가 더 영어 잘하드라.라니까, 학원비 안 보탤거면 아닥하라는 동생들의 말에
쳇. 이봐. 동생. 오빠랑 영어로 대화해보자.
공부에 방해되니 조용히 해달라고 영어로 말하드라.
뭐 플리즈 비콰이엇 비커즈에 수동태능동태관용어숙어목적어구 다 들어간것 같은 문장에 뭐...알아서 잘 말했겠지. 하고 말았다.
셧업.이라고 안한게 어디야.
아. 절대 못 알아들은거 아님.



그러던 어느 날.
"엥? A가 자전거를 타고 읍내를 나댕긴다고???"

어릴때 외갓집에 맡겨진 적이 있어, 그 동네에 또래애들이랑 좀 친한 편인데, 
여전히 고향에 남아, 하라는 떡방앗간은 안하고, 끝물에 아로니아 재배에 뛰어들었다가, 등짝두들겨맞고 다시 떡방앗간에 집중하고 있는...
60대가 마을청년회 현역인 시골동네에서 30넘어서까지 동네에서 재롱을 담당하고 있는 동생녀석에게서 전화가 왔다.

중학생(진) 사촌동생A가 이 봄같은 겨울날. 
자전거를 타고 읍내를 가고 있더란다.

"하이 빅스비. 아직까진보물1호 에게 전화... ... ... 안받네... ... 어??? 야. A. 뭐해? 학원이야?"
"아니!!!! 집에 가고 있지!!!!"
"목소리 왤케 커? 오빠 아직 가는 귀 먹을 나이는 아닌데?"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 뭐래!!!!!!!!!!!"
씩씩하고 밝은 A의 목소리 중간중간에 가쁜 숨소리가 들려온다.
"A. 오빠가 방금 방앗간삼촌한테 제보를 받았어."
"뭐? 택배?"
"...가는 귀는 니가 먹었네. 그니까 오빠가 너 맨날 이어폰끼고 있지마라고 했지?"
"나 지금 이어폰인데???"
"어쩐지 통화음질이 안좋더라니...야!!!! 너 자전거 타고 다닌다며??? 지금 길가잖아!!!!! 당장 자전거 세우고!!!! 영상통화로 오빠한테 전화걸어!!!!"
"아 싫어!!!! 머리날려서 이상하단 말야!!!!"
"너 당장 자전거 세우고 영상통화해!!!"
"야!!!!! 여기가 니네 집 안방이야???? 회사에서 대놓고 사적인 전화하고 있게!!!!!!"

날아오는 팀장님의 잔소리는 평소와 같이 반대쪽 귓구녕으로 흘려보내고 휴게실로 갔다.

"...어. 야. A..."
"큰오빠!!!! 나 머리 안 이상해???"

전에는 큰오빠랑 영상통화만 하면, 큰오빠 못생겨서 어쩔...하며 통곡을 하던 심성곱던 애가, 이제는 지도 여자애라고 지 외모를 먼저 신경쓰고 있다.

"어. 봐줄만 하다. 역시 넌 바가지대고 앞머리 짜르는게 훨 봐줄만 해."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 뭐래!!!!!!!!!!! 근데 오빠 왜? 방앗간 삼촌이 왜?"
"너 자전거타고 읍내다녀?"
"어? 아...아니..."
"내가 넌 거짓말하면 바로 티난다고 했어 안했어? 뭐야? 다이어트야? 너 하나도 살 안찐 애가 뭔 다이어트야...그리고 너, 할머니가 맨날 버스비하라고 5천원씩 준다면서? 왔다갔다해도 매일 2천원씩 남아서 오뎅3개에 붕어빵 5개 사먹으면 딱이구만. 너 그리고 거기 차 많이 다녀서 위험하잖아. 큰 차들 카메라 없으면 막 밟고 다니는 길을 왜 자전거 타고 다녀. 그리고 이 겨울에 감기안걸려도 코 질질 흘리는 코찔찔이가."
"코찔찔이 아니거든!!!! 방구대장 뿡뿡이 아저씨가!!!!"
"야!!!!! 그건 내가 아니고 니네 작은 오빠라니까!!!!!"

그렇게 24살 차이나는 사촌동생이랑 말싸움을 하고 있자니, 자괴감이 밀려들어왔다.
내가 지금 중학교 입학도 안한 초졸한테 말싸움을 한마디도 안 지려고 이러고 있구나...
그러다 문득...

"어? 야? 너 혹시 읍내에서 나쁜 언니들한테 삥뜯겨??? 매일 5천원씩 상납하라고? 그래서 걔들한테 돈주고 너는 학원가려고 자전거 왕복하는거야?"

애네들이 많이 어렸을때, 젠가를 한 적이 있다.
벌칙이래봐야 쓰러진 젠가 다시 주워 쌓고, 딱빰 한대 맞는 정도였는데, 그게 뭐라고 어렵게 뽑아서 어렵게 위에 얹어놓고 이제 6살인 막둥이가 쓰러뜨리니까 막 좋아하던 나를 한심스럽게 쳐다보던 A의 그 눈빛이 액정 너머로 날아들어왔다.

"야. 짝은오빠가 학생선도로 표창까지 받은 중학교 학생부 짬밥이 있는 사람이고, 너 당숙아저씨가 경찰서 형사반장이고, 니 위에위에 사촌오빠가 의경 수경이야. 니가 왜 삥을 뜯기고 다녀? 누구여? 말해!!!"
"...우와...챙피해...끊어;;;;;;;;"
"어. 야. 잠깐만. 우리가 겨우 이런 사이야?"
"아 왜;;;; 아씨. 방앗간삼촌은 또 언제 봤지?...그게 큰오빠. 나 사고 싶은게 있어서 돈 모으고 있는 중이여서 그래."



태어나서 큰 수술을 받아 (최근에 잠깐 요단강 건널뻔했던) 나보다 더 먼저 죽을뻔했던 애가, 어찌어찌 건강히 자라 초등학교를 졸업하자,
이에 감동한 큰고모부터 이제 대학가서 알바하고 있는 바로 위 사촌오빠까지, 모두들 선물을 하나씩 앵겨주었다.

큰고모네 둘째고모네 셋째고모네 막내고모네 이런식이 아니라
큰고모 큰고모부 둘째고모 둘째고모부 셋째고모 셋째고모부 막내고모 막내고모부 이런 식으로...
물론 결혼한 사촌언니오빠네들한테도 다 그렇게 형부 새언니들한테 각각 받았다.

이렇게 많은 후원품이 들어와서 외삼촌과 외숙모는 그냥 넘어가려했는데,
엄마아빠는 딸 중학교가는데 아무것도 안해주고 미워!!!!하고 방에 들어가 우는 척 하고 있었는데,
외숙모가 읍내에서 허니콤보치킨을 사오자, 사랑하는 우리 엄마가 되었다고 한다.
우리 외삼촌은 다음 날, 애들 좋아하는 맘스터치를 2세트씩 사다주고 사랑하는 우리 아빠가 되었다고 한다.
우리 외할머니는 애들 좋아하는 닭볶음탕을 해주시고 우리 할머니 최고!!!라며, 할머니 어깨를 주물러주었다고 한다.
그렇게 동생을 달래기 위해 닭들이 몇 마리나 죽어나갔는지 모르겠다.

나도 긴긴 간병휴가동안 기본급만 받아 생계가 위태하긴 했지만, 큰 맘 먹고 서울백화점까지 데려와서 
야. 니가 입고 싶은거 골라봐...어...이게 더 어울릴것 같은데...아니 가격표보고 하는 말이 아니라...아...요즘 애들 다 이런거 입고 다닌다고???
인구 10만명도 안되는 시골동네 애들이 이걸 입고 다닌다고??? 이게 유행이라고??? 내가 인구 천만이 사는 서울 여기저기를 다 둘러봐도 이런거 입는 애 한명을 못봤는데???
아 사주기싫으면 말라고??? 이게 오빠를 뭘로 보고!!! 이거 주세요!!!! (....3개월 무이자 되죠???)라며, 나도 한번 질러본적 없는 가격대의 옷을 선물해줬었다.



선물만 거의 30종류 가까이 받았을터인데, 또 뭐가 부족하단 말이냐.
노트북.
어? 노트북? 왜?
집에 컴터 느려.
그건 바이오스 세팅을 하고 메인보드랑 램을 오버클럭하면 돼. 쉬워. 뾰로롱뾰로롱 하면 돼.
그러니까 너도 니 언니들처럼 사이트에서 깔라는거 그냥 예예.하면서 클릭하지 말라고.
바이러스 검사도 한번 씩 좀 하고.
그래서 노트북으로 뭐할건데? 
EBS볼려고.

뚜둥.

솔직히 뭐? EBS? 펭수? 이거이거 안되겠네. 이유는 없어. 그냥 해. 엣헴엣헴엣헴. 라는 말이 울컥 나올뻔했다. 펭하~
여자애라 게임은 아니겠지.라고 하기엔 내 친구 큰 딸이 애보다 1살 어린데 벌써 배그하고 다닌다는 말을 들어서 게임이면 피씨방 정액을 끊어줄까 했는데...

EBS...아이고...일찍 돌아가셔서 얼굴은 사진으로만 뵌 외할아버지...드디어 외할아버지 후손 중에 과거급제자가 나오려나 봅니다ㅠ.ㅠ

오빠가 사줄께. 내일부턴 버스타고 다녀. 하루에 5천원씩 모아서 어느 세월에 살라그러냐. 그 전에 교통사고가 더 먼저 나겠다.
이따가 도착해서 오빠한테 집에 잘 들어왔다고 전화 한 번 더하고. 그동안 모은 돈은 어디 허튼데 쓰지말고 어디 저축해놔. 주식은 하지말고. 오빠처럼 되니까. 이따 전화하렴. 하고 끊었다.



예전에 외갓집내려가면 큰오빠 왜 이제와~하고 울고, 먹고살려고 다시 서울갈때되면 큰오빠 어디가~하고 울고불고 하던 애가,
안하는것 같은데 공부도 꽤 하는것 같다 그러고(나는 동생들 성적에 관심없음. 살면서 내 성적에도 관심이 없었음ㅋ)
노트북사서 더 열심히 공부하겠다는데...

전같으면 사이트 돌아다니면서 최저가 검색하고 다녔을건데, 그냥 이 정도면 눈탱이는 안보겠지. 싶은 가격대에 들어가서 OS 다 깔리고 램업그레이드 옵션 포함해서 바로 외갓집주소로 보냈다. 일시불로. 

내일부터 풀뜯어먹음 되지.



그 후로 3일. 
그래서 내가 A한테 노트북을 질러줬는데, 솔직히 N빵하자. 하고 동생들한테 뭐라고 말해야할지 모르겠다.
출처 내 결제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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