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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하거나 뻔한 이야기(26) / 바닷바람
게시물ID : readers_3461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철수와영이
추천 : 2
조회수 : 30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0/03/06 19:5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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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신도시는 개발이 한창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대형 건물들이 들어서고 그와 함께 아파트도 하늘 높을 줄 모르고 치솟았다. 천지개벽이란 이럴 때 하는 말인 모양이다. 얼마 전만 해도 이곳은 온통 바다였고 갯벌이었다. 썰물 때가 되면 갯벌이 멀리까지 드러났고 그곳에 터전을 두고 사는 해안가 사람들은 그 갯벌로 조개며 낙지 같은 것들을 잡으러 나갔다. 갯벌에는 그들의 삶이 온전히 묻어있었다. 그러다가 다시 밀물이 들면 이번에는 갯벌은 사라지고 그 넓은 곳은 온통 바다가 되었다. 그런 곳이 언제부터인가 국제도시라는 낯선 이름으로 개발이 시작되었다. 계획이 구체화되자 육중한 트럭들이 수도 없이 드나들자 멀리 갯벌 한가운데로 방파제가 쌓이고 그 안쪽으로 어딘가에서 퍼온 흙더미가 채워졌다. 바다는 조금씩 사라졌고 그 대신 광활한 육지로 변해갔다. 인간의 탐욕은 정말이지 끝이 없어 보였다.
 

그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온 사람들은 갯벌이 사라지는 대신 적잖은 보상금이 받았다. 그들이 평생 한번 구경조차 하지 못한 큰 금액이었다. 소박한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거금을 손에 쥐자 돈 냄새를 맡은 사람들이 파리 떼처럼 사방에서 몰려들었다. 온갖 감언이설이 바닷가를 어슬렁거렸고, 그 바람에 졸지에 벼락부자가 된 소박한 삶들이 갑자기 도회의 불빛을 따라나섰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집집마다 부모 자식 간에 또는 형제간에 언쟁이 잦았고 더러 거친 성격을 이기지 못해 칼부림이 일기도 했다. 어떤 이들은 감언이설에 속아 순식간에 엄청난 보상비를 탕진하자 괴로움을 삭이지 못해 삶을 마감하기도 했다.
 

동네는 어수선해졌고 민심은 더 없이 흉흉해졌다. 그 바람에 많은 이들이 자신들이 오랫동안 터전을 일구며 살아왔던 동네를 떠나갔다. 사실 오랫동안 그곳을 떠난 적이 없던 이들이었으므로 어디든 마땅히 갈 곳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므로 아무도 그렇게 떠난 이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모른다. 그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해안가 산비탈에는 지금은 흉물스런 빈집이 여기저기 널려있고 더러 몇 곳 남은 집들은 왕래도 없는 듯 했다. 이제 동네는 더 이상 동네랄 것도 없이 되어버렸다. 개발이라는 이름은 언제 어디서나 점령군처럼 그렇게 소박한 삶을 파괴했다.
 

자동차 속도에 맞추어 거대한 빌딩들을 어둠 속에서 순식간에 나타났다가는 지나쳐갔다. 빌딩의 불빛은 요란해서 마치 밤하늘의 별들이 모두 내려와 그 빌딩들에 박혀 있는 듯 했다. 더러 강렬한 불빛은 자동차 속도에 맞추어 마치 별똥별처럼 길게 꼬리를 그리기도 했다. 까만 밤에도 들을 수 있었던 파도 소리는 바다가 멀찍이 물러난 탓에 이제 더는 들을 수 없었다.
 

남자는 목을 길게 빼고 차 앞 유리로 하늘을 올려보았다. 구름이 잔뜩 드리워진 탓인지 밤하늘은 온통 까만색이었다. 신도시답게 이곳은 구획정리와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었다. 게다가 아직은 별로 차가 많지 않아 너른 도로가 황량해보였다.
가끔씩 반대편 차선에서 길게 전조등 불빛이 줄을 그으며 옆으로 바람처럼 지나칠 뿐 차량이 그리 많지 않았다. 바닷바람이 차창으로 스치는 소리가 났다.
-바람이 꽤 센 모양이야. 물이 들어오는 모양이지?
남자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래, 바닷가로 나오면 시원한 바닷바람이 제격이지. 옷깃을 잔뜩 여미게 하는 그런 바람.
 
-그럼 우리가 바람 맞으러 나온 것인가?
여자가 남자를 쳐다보며 하얗게 웃었다.
그런 대로를 얼마간 달리다보니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갑자기 무슨 비람?
-그러게 빗줄기가 장난이 아닌데.
이내 굵어진 빗줄기는 차 앞 유리를 쉴 사이 없이 두드려댔다. 와이퍼를 최고 속도로 올려도 앞을 분간하기 힘들 정도였다.
-어쩌지?
-, 어쩌겠수. 운전이 위험할 수 있으니까 그냥 비가 조금 덜할 때까지 갓길에 세우고 술도 깰겸 기다리지 뭐.
-그럴까?
 

여자는 얼마쯤 대로를 따라 달리다 잡초가 듬성한 갓길에 차를 세웠다. 구획정리만 하고 아직은 건물이 들어서지 않아 도로변은 온통 잡초가 무성했다. 헤드라이트를 끄자 까만 하늘이 시야 가득 몰려들었다. 멀리 거대한 건물들에서 나오는 불빛들이 빗줄기 사이로 불투명하게 구불거렸다.
여자가 조용히 시동을 끄자 차 위로 빗줄기가 쏟아져 부딪쳤고 그 소리는 생각지도 못하게 크게 들렸다. 여자가 시트에 몸을 깊이 묻으며 중얼거렸다.
-멋진 밤이지?
남자가 여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여자의 얼굴이 어둠 속에서 실루엣으로 드러났다. 남자가 여자 쪽으로 몸을 돌려 가볍게 안았다.
-흐흥, 술 냄새.
-미안.
-아니야, 당신에게서 나는 술 냄새는 신기하게도 좋아.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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