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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하거나 뻔한 이야기(27) / 비와 여자
게시물ID : readers_3462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철수와영이
추천 : 2
조회수 : 32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0/03/10 12:4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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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여자는 콧소리를 내며 남자의 품으로 기어들었다. 두 개의 혀가 각자 제 영역을 벗어나 서로를 찾았다. 그러다가 남자가 조심스럽게 승용차의 뒷자리로 옮겨갔다. 여자의 조그마한 몸도 미끄러지듯이 따라갔다. 그리고 다시 깊은 애무. 여자는 흥건히 젖어들었고, 간간히 몸을 뒤틀었다. 세찬 빗줄기는 쉬지 않고 자동차 위를 우렁차게 두드려댔다. 그러나 서로에게 몰입하자 그 소리는 조금씩 가라앉는 것 같더니 마침내 아득하게 멀어지고 있었다. 여자는 이 기묘한 장소에 대해 전율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남자가 여자의 입구에서 짐짓 기웃거리다 미끄러지듯이 깊이 들어서자 여자의 목울대가 크게 떨었다. 목울대를 떠난 여자의 소리는 다시금 빗소리와 교접하며 까만 밤하늘로 흩어졌다. 여자는 언제나 그렇듯 지칠 줄을 몰랐다. 그 작은 체구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모를 정도였다.
 
여자가 남자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숨을 고르며 말했다.
-빗소리가 참 근사하지?
-그러게. 빗소리가 세상의 모든 소리를 잠재우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 나는 세상의 모든 소리를 깨우는 것 같은데.
그때 그들 옆으로 차량 한 대가 쏜살같이 스쳐 지났다. 순간 그 차의 전조등 불빛이 둘을 빠르게 훑고 지났다.
-차가 좀 천천히 갔으면 좋았을 텐데. 너무 빠르군.
남자가 말했다.
-?
여자가 남자의 가슴에서 콧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아주 잠깐 드러났거든.
-흐흥, 그래요?
-그러자 갑자기 천천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
그러면서 여자가 자세를 고추 세웠다. 자그마한 여자의 모습이 어둠 속에 어렴풋이 드러났다. 남자는 여자의 어깨를 가볍게 쓸어내렸다.
-보이기나 해요?
-어렴풋이.
남자는 중얼거리며 전신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그런데, 당신 이거 알아? 지금 이곳 이 좁은 차 안이 천국보다 훨씬 근사한 것 같아. 천장에 부딪치는 빗소리가 정말 멋지지 않아? 그 소리가 세상의 모든 소리를 차단하고 있어. 그러니까 이곳은 우리 둘만의 공간이고 시간인 셈이지.
멀리서 오는 전조등 불빛으로 여자의 우윳빛 몸이 희끗하게 드러났다 다시 어둠 속으로 잠겨들었다. 여자는 남자를 바라보며 살며시 웃고 있었다. 그러다 남자의 얼굴을 두 손으로 쓰다듬으려 다시 남자의 가슴으로 기어들었다.
-근데, 나 있지. 모텔에 한 번 가보고 싶어.
-그래? 뭐 어려운 것도 없지. 다음에는 그리로 가지 뭐.
남자가 여자의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낮은 중저음으로 말했다. 남자는 그때까지는 모텔이라는 곳에 대해 그리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중년의 나이가 되도록 마치 모텔은 정상적인 사람들이라면 갈 곳이 못 된다는 다소 편협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여자가 그에게 모텔을 말하자 남자는 지금까지의 그런 감정은 신기하게도 순식간에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또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처럼.
 

-모텔에는 어떤 사람들이 가는지 궁금했거든.
-별게 다 궁금하네. , 갈길 잃은 우리 같은 사람들이 아닐까?
그러면서 남자는 여자가 지금처럼 자동차 안이나 협의실 같은 곳이 아니라 멋진 침대를 원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내심 그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 아무래도 편안한 곳이 낫겠지. 멋진 침대를 원한다는 건 남자에 대한 여자의 믿음이 그만큼 강하다는 것이고, 여자는 언제까지나 남자와 함께 하고 싶다는 말로 받아들였다. 사실 그런 기분은 남자도 마찬가지였다.
남자는 나직이 중얼거리며 여자를 다시 깊이 안았다. 여자의 조그마한 몸이 편안하게 안겨왔다.
 

-고로쇠가 아직도 남았을까?
-흐흥, 다 가져가고 없어, 이젠.
-그래도 모르지. 아직 남아있을지도.
남자가 여자의 가슴에 얼굴을 묻자 남자의 혀끝에서 여자가 몸을 뒤틀었다. 여자는 남자의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흥얼거렸다.
-까만 밤에 내리는 비라서 그런지 참 운치 있네. 그치?
-바깥이 보여?
-아니, 아무 것도 안 보여.
-그런데 운치가 있다니?
-안 보이니까. 세상의 모든 것이 어둠으로 차단되어 있으니까. 여긴 오직 우리들만의 작은 세계니까. 그래서 운치가 있다는 거야. 빗줄기가 이렇게 멋지고 고마울 수도 있다는 사실이 신기해.
-하긴 고상해 보이기는 하네.
 
빗줄기는 여전히 세차게 자동차 지붕을 두드렸다. 남자는 어느새 취기가 가신 모양이었다. 남자가 여자의 가슴에서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맥주 한 잔이 생각나는군.
-열심히 일했으니 갈증이 날 만도 하겠다. 비가 오늘은 우리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물해 줬어. 그렇지?
여자가 어둠에 갇힌 창밖을 내다보며 웅얼거렸다.
-그러게. 빗소리가 가득하니 왠지 환상적인 것도 같아.
남자가 차앞 유리로 고개를 내밀며 까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둠 속에서 거센 빗줄기가 아래로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어릴 때는 비가 오면 괜히 마음이 들뜨기도 했었어. 비를 참 좋아했던 것 같아. 무슨 특별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비가 오면 괜히 어디론가 가야할 것 같기도 했어. 막상 가려면 갈 곳도 별로 없는데 말이지. 오늘 당신과 함께 빗속에 앉아있으니 예전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아 참 행복해.
자동차 위로 빗줄기가 더욱 요란스럽게 떨어지고 있었다. 여자가 옷매무새를 고치고 승용차의 앞자리로 옮겨가 시동을 걸었다. 남자도 뒤따라 자리를 앞으로 옮겼다. 헤드라이트를 켜자 앞 유리로 굵은 빗줄기로 가득했다. 멀리 공룡 같은 빌딩의 불빛이 빗줄기 사이로 흔들거렸다. 텅 빈 사거리 쪽으로 자동차 한 대가 길게 불빛을 그으며 질주해갔다. 빗속으로 밤이 빠르게 빠져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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