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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등-초대받은 사람들 6
게시물ID : panic_10122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ㅣ대유감
추천 : 6
조회수 : 870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20/03/17 11:2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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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aker. 하진
 
어머님을 찾아 자미산 절에 다녀왔지만, 그곳 이후로의 행방을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벌써 2년이 넘었으나 어느 곳에서도 어머님의 흔적은 없었다.
경찰에서도 별 성과가 없는지 열심히 찾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강이를 잃은 아픔에 어머님을 보살피지 못해 강이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까지 더해져 하루가 지날수록 심장이 딱딱한 돌로 변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오늘도 변함없이 정신 나간 사람처럼 어머님의 사진이 박힌 전단지를 돌리고 집으로 돌아와 맨바닥에 누우니 등허리에 찬기가 스며들었다.
아직은 밤엔 찬기가 느껴지는 계절이다. 어머님은 도대체 어디에 계신 걸까?
강아.....거짓말처럼 네가 돌아와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어머님도 거짓말처럼 깔끔한 집 의자에 앉아 맞아 주실 텐데…….
강아.......
 
여보세요? 윤하진! 너 살아는 있냐?”
깜빡 잠이 들었나 보다. 잠결에 전화소리를 듣고 받긴 했는데 누군 질 모르겠다.
누구?”
새끼~ 내 목소리도 못 알아듣고 정말 괜찮은 거야?”
... 오랜만이다. 근데 무슨 일인데? 나 지금 피곤해서…….”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기 싫었다. 성대를 움직이고 입술을 오무려 말을 만들어 내는 것도 너무 힘들었다.
너 우리 삼촌 알지? 안수에 계시는.”
물론 잘 알고 있었다.
상태자식이 아무나 데리고 가서 소개하는 분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삼촌이 이번 주말에 낚시 오란다. 근데 널 꼭 데리고 오래.”
낚시는 무슨……. 시간도 없고 그럴 힘도 없다.”
삼촌이 그러는데, 거기 오면 찾을 사람도 찾고 보고 싶은 사람도 볼 수 있다고, 그렇게 전하래.”
?”
뭐긴 임마. 너 우리삼촌 알잖아. 판단은 네가 해. 근데 네가 간다면 내가 같이 가줄게. 정신 좀 차리고 밥도 좀 챙겨먹고. 살아서 주말에 보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욕실로 들어가 뜨거운 물을 틀었다. 보고 싶은 사람....이라…….
 
볼품없는 내 꼬라지를 보고나서 상태자식은 아버지차를 끌고 왔다.
! 임마!”
빙신, 이게 뭐냐? 너도 죽냐? 강이가 그걸 바란대? 그럼 콱 죽어 빙신아!”
상태는 지금 눈물을 참느라 저렇게 악을 쓰고 있다는 걸 안다.
2년 사이 살도 빠지고 새카맣게 그을린 얼굴이 보기 좋진 않을 것이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강이를 한번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
 
 
speaker.
 
우리 여기 왜 왔을까?”
제법 취기가 오른 시연이의 혀가 살짝 꼬부라져있었다.
그러게...... 누군가 우릴 부른 게 아닐까?”
주아의 눈빛은 뾰족함이 사라지고 오히려 촉촉해 보였다.
넌 그게 누구라고 생각하는데? 혹시 그래서 예약을 그렇게 한 거야?”
글쎄...... 나도 모르겠다. 왜 그랬는지……. 나도 그 때 당시가 잘 기억이 안나.”
넘어가는 해는 바다에, 하늘에 다홍빛 몸을 풀어 헤쳤다.
눈부심과 뜨거움은 사그라들고 어둠에 잠식되어 갔다.
해를 먹은 바다는 순식간에 별빛도 없는 새카만 하늘을 반사하며 사납게 흰파도를 우리에게 보내고 있었다.
아까 그 인간을 마주했을 때 어쩌면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 왜 하필 지금 이곳일까? 나쁜 생각이 계속 드는데 왜 우린 떠나지도 않고 여기에 있는 걸까?”
시연이는 계속 질문을 해댄다.
딱히 누구에게랄 건 없는지 답을 바라는 것 같지도 않았다.
잘들 지냈니?”
맛있는 냄새가 술냄새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고개를 든 시연이가 눈을 커다랗게 뜨고 숨을 멈추었다.
소리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니 내가 좋아하는 갈비찜과 잡채가 산처럼 쌓인 접시를 들고 엄마가 서 계셨다.
엄마, 너무 맛있겠다. 안 그래도 좀 허전했는데.”
함박 웃으며 접시를 받아드니 엄마가 옆자리에 앉았다.
.....안녕.........세요.”
그래 시연아, 잘 지냈어? 못 본 사이에 더 예뻐졌구나.”
엄마는 예의 선한 미소를 얼굴가득 드리우고 말하시는데, 시연이의 얼굴은 점점 더 창백해져갔다.
엄마, 근데 엄마가 오니까 주아가 숨어버렸어. 무서운가봐.”
.....주아.......너 왜 그래?”
시연이는 입술까지 파랗게 질려 턱을 떨고 있었다.
괜찮아. 엄마가 다 찾을 수 있어. 걱정하지마.”
엄마의 따뜻한 손이 등을 쓸어내린다.
!! 사람 살려요!! 살려주세요!”
무언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여자의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한밤의 공기를 갈랐다.
피투성이 여자가 이쪽으로 달려와 엄마 뒤로 몸을 숨기고 사시나무 떨듯 떨어댄다.
뒤를 따라온 남자의 손엔 둘둘 말아 쥔 가죽 허리띠가 아직도 요동치고 있었고 씩씩대는 날숨에 술 냄새가 진동했다.
이년 어딨어! ! 오라~ 네년들이 한패야? 나쁜 년들. 다시 볼 때부터 기분이 더러웠어. ! 괌에서 재미 좀 보려했더니 그깟 따귀한방에 내빼기나 하고. 네년들이 재수가 없었던 거지. ! 재수 없는 년들! 이 새끼들은 어딨는거야? ! 나와봐 새끼들아!”
고래고래 악을 쓰는 사이에 일행인 남자둘이 나와 양팔을 하나씩 잡아챘다.
이도진 이 새끼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제수씨 괜찮아요?”
온몸을 떨어대던 여자는 자리를 떨치고 일어나 테이블위의 유리병을 들어 남자의 머리를 내리쳤다.
난동 부리던 남자가 어? 하는 사이에 관자놀이와 목덜미로 피가 흘러내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에 말리던 친구들도 한동안 말없이 지켜보기만 했다.
미친 새끼. ? …….네놈들끼리 여행 다니는 거 이상하다 생각했어. 아주 끼리끼리 더럽게 잘들 논다. 애들 때문에 그냥 눈감고 살아주려 했더니 이제 미쳐서 나를 때려? 나까지 죽이려고? 넌 내가 아니어도 우리아빠한테 죽었어 새끼야!”
아직도 손에 쥔 깨진 병을 휘두르며 피투성이 여자가 악을 썼다.
방에서 아이들 귀를 막고 빠끔히 내다보던 다른 여자가 총알같이 튀어나왔다.
이게 무슨 소리야? ? ! 너 저 년들이랑 잤어? ? 이게 죽을려고!”
저녁시간 시비 걸던 여자가 배불뚝이 남자의 배를 주먹으로 때리며 패악을 부렸다.
피 흘리며 바닥을 기는 남자와 그를 마구 짓밟는 여자.
쇳소리를 내며 닥치는 대로 주먹을 날리는 여자와 피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맞고만 있는 남자.
아이들을 차에 싣고 떠나는 여자와 잡지도 못하고 겁에 질린 남자.
.............여기........경찰이나 구급차를 불러야…….”
시연이의 작은 목소리가 지옥 같은 이곳에서 묻혀버리려던 찰나였다.
경찰? 구급차? 괌에서는 부를 맘이 없지 않았나?”
주아야.........너 왜그래? 무서워....그만해.”
왜 그랬어? 믿었는데. 그렇게 믿고 좋아했는데. 왜 그랬어?”
주아야...............”
그래, 대체 왜 그런 거니? 이제라도 대답을 해야 하지 않겠니? 너희를 그렇게 믿고 아끼던 우리 강이한테 왜 그런 몹쓸 짓을…….”
겁에 질려 답할 말도 못 찾고 눈물만 흘리는 시연이였다.
그사이 분풀이를 해대던 여자들이 아이들과 차를 몰고 가버리자 남자들의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진짜 재수 옴 붙었네! ....진짜 아까 저년들 얼굴 볼 때부터 싸 하드라니. !”
배불뚝이 남자가 소리를 지르는 동시에 어디선가 주먹이 날아와 남자의 코뼈를 강타했다.
짐승만도 못한 것들. 그냥 죽지 그랬어! 아니! 그냥 죽는 것도 아까워! 어떻게 그 입에서 우리 강이 얘기를....정말 죽여 버릴 거야!”
하진오빠는 낚시를 마치고 친구와 방에서 저녁에 반주한잔을 하던 중이었다.
소란해진 밖이 궁금해 귀를 기울이다가 한참만에야 알게 된 것이다. 그들이 나를 상하게 한 자들이라는 것을.
이미 이성을 잃고 날뛰는 오빠를 잡아 세운 건 엄마였다.
네가 나서지 않아도 돼. 하늘에서 벌하실 거야. 그게 저들의 업인 것을…….”
어머니, 죄송합니다. 일찍 찾아 편히 모셨어야 했는데…….정말 죄송합니다.”
아니야. 내가 숨은 거야. 하진이 네가 이리 힘들어 할 줄 알았다면 미리 언질이라도 주는 건데... 오히려 내가 미안해. 오늘만을 기다리며 살아왔는데, 드디어 오늘이 오는구나. 저애들에게 강이 이름으로 마지막 문자를 보낼 때만해도 그냥 막연히 너희들도 괴로워봐라, 그런 맘이었는데.... 이렇게 해내다니... 정말 꿈만 같아.”
인자한 미소를 머금은 엄마의 얼굴에 섬뜩하게 날이 선다.
병을 맞고 피투성이가 되어 정신을 잃은 남자를 바닥에 그냥 두고 두 남자는 각자 짐을 챙겨 서둘러 떠났다.
누구하나 움직이지도 말하지도 않은 채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아이구~ 소란 스럽더니 무슨 일이 있으셨나봐요.”
펜션사장님이 이를 다 드러내는 웃음을 터트리며 들어섰다.
사장님, 도와주세요. 저 좀 버스 타는....아니, 택시든 뭐든 탈수 있는 곳까지…….”
겁에 질려있던 시연이가 절박하게 사장님의 옷소매를 당기며 품에 뛰어든다.
아니, 왜요? 지금부터가 진짜 재미있을 텐데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허허허허
사장님은 시연이에게서 팔을 빼며 손에 들고 온 것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강아, 어떻게 할까? 또 그냥 용서해줄까?”
아니, 엄마. 용서는 충분했어. 이젠 갚아줘야지. 그치 오빠?”
오빠를 바라보니 모르겠다는 눈으로 낯선 듯 바라다봤다.
밤이 되면 풍등을 띄워야죠. 여긴 가로등도 없어서 풍등을 띄우면 딱 이 불빛만 보입니다. 아주아주 멀리가도 보이고, 안보일 땐 이미 찾을 수 없을 만큼 멀어진 거예요. 하하하.”
이안에 강이가 있다네. 우리 강이가 살아있어. 억울해서 죽지도 못하고 나를 이곳으로 부르고, 자네를 부르고, 저 짐승들을 부르고, 이것들을 데리고 여기까지 온 거네.”
오빠, 나 많이 기다렸어. 이안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때까지....친구들에게 그냥 작별인사만 하려고 찾아 갔던 건데…….”
 
 
speaker. 시연
 
정신 차려 김주아. 입 잘못 놀리면 너나 나나 인생 끝이야. 알지? 우리도 공범이 되는 거라고. 우린 아는 게 없는 거야. 알았어? ? 정신 놓지 말고. 내 인생까지 ×되게 하지 말란 말이야.”
비행기좌석을 일부러 거리를 두었다. 뒷자리에서 본 강이는 별일 없어 보였다.
어떤 움직임도 없어 마치 껍데기만 그 자리에 있는 듯 느껴질 정도였다.
비행기에서 한마디도 나누지 않고 4시간을 넘게 무사히 도착해 출국장을 나설 때까지 의도적으로 강이와 거리를 두고 마주치지 않으려 애썼다.
나중에 왜 그랬냐고 화를 낸다면 그냥 적당히 배탈이 나서 화장실에 있었다거나 아는 사람을 만나 얘기가 길어졌다며 둘러댈 생각이었다.
그런데 출국장으로 향하는 강이의 뒤를 따라가려 걸음을 재촉하는 주아를 본 것이다.
주아는 비행시간 내내 넋이 빠져 있다가 왜 사고를 치려는 것일까....정말 공부를 잘 한다고 머리가 좋은 건 아닌 듯하다.
어딜 가는 거야!”
주아의 팔을 잡아채자 흐릿했던 눈에 초점이 돌아왔다.
정신 차려 김주아. 입 잘못 놀리면 너나 나나 인생 끝이야. 알지? 우리도 공범이 되는 거라고. 우린 아는 게 없는 거야. 알았어? ? 정신 놓지 말고. 내 인생까지 ×되게 하지 말란 말이야.”
주아에게 한바탕 쏴 붙이고 화장실로 들어가며 돌아보니 그대로 주저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어쩔 수 없다. 사는 건 정글이고 사냥하지 않으면 먹히고 마는 게 진리니까.
 
 
어쩐 일인지 강이에겐 연락이 없다.
처음엔 지도 잊고 싶겠지...하는 생각에 아무렇지 않았는데, 시간이 갈수록 불안해 지기 시작했다.
주아에게 속아 다단계로 끌려 들어갔을 때처럼 강이나 그 애 엄마는 용서를 하기로 한 걸까?
왜 전화 한통화가 없을까? 물론 전화가 온다고 받을 생각이 있는 건 아니다.
그때 문자 알림음이 울렸다.
내가 죽었어. 왜 죽는지 이유도 모르고 죽었어.”
이게 뭐지? 누가? 강이?
강이에게 온 첫 번째 연락이었다. 그런데 이게 뭘까?
생각하는 사이 요란한 벨소리가 울렸다. 주아였다.
...너도 받았어?”
그래. ? 강이 문자? 지금 받았어. ?”
강이가.....진짜로 죽었대. 방금 해린이가 단톡방에 공지 올렸는데.......”
....................................................................
주아의 말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강이가 죽었다. 나 때문이다. 아니, 내가 아니다. 그냥 자기가 나약해서 그런 거다.
그래. 그런 일로 죽다니.....내 탓이 아니다. 내 탓이.....아니......…….
벨소리에 놀라 정신을 차리니 날이 밝아 있었다.
문앞엔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날 바라보는 주아가 서 있었다.
네가 그랬잖아. 네가. 나를 돈으로 꼬여내고, 강이를 네 돈벌이에 이용하고. 네가 강이를 남자에게 판 거잖아.”
이게 미쳤나 보다. 황급히 안으로 끌고 들어와 자리에 앉혔다.
무슨 소리야. 내가 억지로 끌고 갔냐? 내가 널 납치라도 해서 데리고 갔어? 미치려면 곱게 미쳐.”
강이는 우리끼리 여행인줄 알고 간 거였어. 만일 남자들과 같이 가는 여행인 줄 알았으면 절대 안 갔을 거라고!”
눈이 돌아간걸 보니 미친 게 틀림없었다. 옛날부터 미친개에겐 매가 약이라더니............
!”
주아의 뺨을 힘껏 갈기고 어깨에 팔을 둘렀다.
순진한 척 하지 마. 아무 말 없이 가만히 부추긴 건 너였어. 잊었어? 강이는 나보다 널 더 믿는다는 걸? 말리지 않은 네 잘못은? 그건 없는 거야? 앞으로 찾아오지 마. 난 이미 바닥이지만, 넌 아직 이만큼은 아니잖아? 한번만 더 찾아와서 협박하면 네 인생은 내가 끝까지 잡고 나 있는 곳까지 끌고 내려와 줄 테니까. 각오하라고!”
퉁퉁 부어오른 볼을 감싸고 주아가 뛰쳐나갔다.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물 넘기는 일도 힘들 기는 처음이었다.
한 번도 열어 본적 없는 동창회sns에 가끔 들어가는 일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강이의 장례가 치러졌고 강이에 대한 안 좋은 소문들이 돌아다녔으며 그 소문의 꼬리를 물고물고 들어가면 여지없이 내 이름이 거론되곤 했다.
뭐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날 부러워하는 것들의 시기정도야 첫 생리하던 때부터 겪은 일이니 아플 것도 없다.
그냥 강이의 죽음이 꿈같이 느껴질 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주아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돈돈돈 하더니 미쳤다나....
주아가 환청을 듣고 귀신을 보다가 발작을 일으키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수시로 정신병동에 입원했다 퇴원하길 반복하고 있다고도 한다.
그들의 말을 다 믿지는 않지만.... 주아가 잘 지내고 있지 못한 것만은 틀림없었다.
그럼에도 난 주아에게 전화를 할 수 없었다.
내 연락이 주아에게 어떤 도움도 되질 않을 테니…….
 
 
몇 년 만인가? 주아에게 연락이 왔다.
잊자고 노력해도 안 되던 일들이 세월이 약이라고 조금씩 잊혀져갔다.
강이....주아..................
내 상황이 나아진 건 없지만 극단에 나가기도 하고 알바도 조금씩 하고 있다.
물론 편의점에서 계산이나 하는 알바는 아니지만...뭐 누구에게나 성향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내 나름 바쁜 생활을 하다 보니 과거 따위 별거 아닌 듯 아득해지려 하고 있었다.
그런 내게 느닷없이 연락을 한 주아였다.
목소리는 밝고 높다랗게 들리는 것이 아픈 것도 많이 좋아지고 나처럼 세월이란 약발을 받았나 보다.
학창시절 얘기들을 줄줄이 늘어놓다보니 어느새 예전 생각도 나고 보고 싶기도 했다.
아무도 곁에 없던 몇 년 동안 외롭다는 생각을 안 해봤는데, 친구와 수다를 떨다 보니 무척 외로웠다는 게 느껴졌다. 당장이라도 만나고 싶었지만, 어쩐지 주아는 쉽게 만나주지 않았다.
갖은 핑계를 대며 그저 전화로만 수다를 떤지 두 달이 넘어갈 즈음 갑자기 여행을 가자고 했다.
보내준 링크를 열어보니 너무나 예쁘고 고급스런 풀 빌라였다.
보고 싶은 친구도 보고 간만에 바다에서 큰 숨도 맘껏 쉴 수 있다는 기대에 흔쾌히 ‘ok’하고 둘이서만 떠날 여행준비를 했다.
과거는 이미 잊은 지 오래였다.
 
 
speaker.
 
오빠, .....많이 기다렸어. 이안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때까지....친구들에게 그냥 작별인사만 하려고 찾아 갔던 건데…….”
억울해서 그냥 갈수가 없었다. 내 소중한 친구들이…….
내 잘못이라 생각했다. 내가 틈을 보여 생긴 일이니 내가 책임지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남은 이들의 슬픔보다 내 아픔이 먼저였기에 두 번 망설이지 않고 건물 아래로 몸을 던졌다.
사람들의 웅성거림 속에 엄마얼굴이....오빠얼굴이.....보였지만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일이었다.
그제야 큰 실수를 했다는 걸 알았다.
되돌릴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고 겁이 났고, 혼자 가야하는 길이 두려웠고, 슬펐다.
황망히 앉아있다 그저 소중한 친구들 얼굴이라도 한번 보고 가자는 생각에 찾아 갔던 길이었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달라졌을까?
그냥 저승길로 들어섰더라면 모르고 말았을까?
오빠, 나 강이야. 오빠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오빠, 나 보고 싶었어?”
강이야? 정말 너 강이 맞아? 보고 싶었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떠올리고 그리워하고……. 진짜 너야?”
뛰쳐나가는 친구를 낚아챘다고 합니다. .... 그런 능력을 타고 나신건지.... 복수의 기운이 워낙 강해서 그럴 수 있었는지...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 친구 몸에서 현명하게 친구를 잠식해 나가신 것 같아요. 오늘 달도 없는 하늘에 달하나 띄우면 그 친구는 영영 돌아올 수 없을 겁니다.”
펜션 사장님은 준비해 오신 풍등에 붓으로 빨간 글을 적기 시작했다.
엄마는 옆에서 주문을 외고 계셨고 갑자기 아랫배에서 뭔가 울컥하는 기운이 느껴졌다.
숨어있던 주아가 나오려나 보다.
노란 풍등이 점점 빨간 글씨로 채워지고 엄마의 주문도 소리를 높이며 빨라지고 있었다.
풍등이 빨갛게 변하고 불을 붙이자 일순간 뜨끈한 한숨이 빠지더니 풍등의 붉은색으로 스며들었다.
둥실 떠오른 풍등은 바람도 없는 공기 속으로, 새카만 공기 속으로 작아져갔다.
............?”
숨직이던 시연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나를 봤다.
주아는 이제 없어. 난 강이야.”
그 자리에 시연이가 털썩 주저앉았다.
엄마! 오빠! 우리 이제 집으로 가자!”
그래, 엄마가 깨끗하게 치워놨어. 얼른 가서 맛있는 밥 해먹자.”
우린 오빠친구차에 올랐다.
 
 
speaker. 중하
 
, 빨리 좀 와 주십시오.”
그들이 떠나고 경찰을 불렀다. 어차피 이곳은 이런 사고가 천지다. 아무도 신경 쓰질 않는다.
싸늘한 주검 옆에서 뭔 소린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중얼거리는 여자를 체포하며 경찰들이 인상을 썼다.
불륜치정사건이야 뉴스에도 안 나오는 단골 소재다. 남자가 여자를 위협해서 여자가 병을 들고 내리치고...뭐 그런저런…….
시골경찰은 시시콜콜 혈흔을 뒤지지도 않고 그냥 뻔히 보이는 상황에 만족한다.
빽도 없는 저 여자는 살인죄로 수감생활을 하거나 정신병원에서 평생을 보낼 것이다.
난 적당히 놀란척하며 피해 입은 사실을 과장되게 나열하다보면 경찰은 귀찮다는 듯 손사래를 치고 또 적당히 위로하며 마무리 할 것이다.
나야 아무 상관없다.
나야 신어머니의 영생을 지킬 영혼만 올리면 그만이니까.
간절함이 극에 달하면 신어머니는 귀신같이 찾아내신다. ... 귀신같다는 건 사실이라고 해야 하나?
벌써 몇 겁의 생을 살아오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당신의 영혼 배달자로 날 선택하고 불러들이신 것도 십자가가 닳도록 간절했던 내 어머니의 기도 때문이었다고 하면 좀 아이러니 하지만 말이다.
딸을 보고 싶은 간절함, 연인을 곁에 두고픈 간절함, 복수를 원하는 간절함…….
저들은 신어머니에게 선택되어 진 줄도 모르고 선택받았으며 배달원인 내가 있는 이곳으로 초대받은 것이다.
깨끗하고 젊은 영혼만을 흡수하는 신어머니가 젊은 여자 둘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길가 낡아빠진 흄가로 유인해 헛밥을 먹이는 장난을 치는 일이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그 덕에 흡족한 영혼을 드신 모양이다.
풍등의 붉은 글씨가 불타는 듯 달아올라 불이라도 옮겨 붙은 건 아닌지 착각마저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다음번엔 또 어떤 간절한 영혼들을 이리로 초대하실지 사뭇 기대가 된다.
 
 
epilogue. 주아
옥상계단을 내려와 부엌뒷문을 열면 재래식부엌과 입식부엌의 중간쯤 되는 부엌이 나온다.
바닥과 벽면은 5백 원짜리 동전만한 네모난 타일이 촘촘히 열을 맞춰있고, 입식부엌모양의 싱크대와 가스레인지 역할을 하는 연탄보일러도 예외 없이 타일을 두르고 있다.
어슴푸레한 백열등이 부엌의 쓰임새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며 앞문을 열면 사람 두 명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지나갈 만큼의 복도에 부엌보다 더 짙은 어둠이 차있다.
서늘하지만 음산하진 않은 복도를 따라 십여 걸음을 옮기면 양쪽으로 방들이 나온다.
몇 번째인지 모를 방 앞에 연등이 걸려있다.
익숙한 뒷모습의 아빠.....
네가 여길 왜 와. 여길..............흐흐흑흐...... ”
아빠의 영혼은 누구에게 잠식되어 이곳에 계신 걸까? 우린 언제까지 이곳에 잡혀 있어야 하는 것일까?
 
 
 
첫글을 마무리하며 아쉬운 점도 많았지만 지금은 그저 끝냈다는 것만으로 만족하렵니다.
언젠가 더 좋은 글을 쓸수도 있겠죠? ㅎㅎ
코로나19로 고생하시는 의료진, 공무원 등 많은 선한 국민들
대단히 존경스러운 요즘입니다. 
모두 건강조심하시고 다음글이 언제 써 질지 모르겠지만 다시 뵙길 바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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