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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아내의 불륜
게시물ID : panic_10127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21세기인간
추천 : 8
조회수 : 3061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20/04/09 17: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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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 베오베금지
  의사는 그에게 어렵게 말문을 꺼냈다,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했다는 듯이.


  “어… 다른 문제는 없으신데, 그… 부탁하신 정관 수술은 못 하실 것 같습니다.”


  “예? 무슨 이유라도….”


  “아, 정확히 말하면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사실 선천적… 어…. 무정자증이십니다. 다시 말해서 아이를…. 가질 수가 없습니다.”


  침묵이 흘렀다. 사실 어떤 사람이든 무정자증이란 말에 이렇게 반응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은규가 아들 하나, 딸 하나를 가진 40대 과장이라는 점이었다.


  그의 아내인 서예린은 그의 시선을 자꾸 회피했다. 그리고 그런 행동이 더욱더 그에게 의심을 부추겼다. 그녀의 표정은 숨겨왔던 것을 들킨 듯한 표정이었다. 의사는 눈치를 보며 쩔쩔맸다.


  “아… 그… 일단 그럼 상담은 끝났습니다. 나가주시면 됩니다.”


  서둘러 의사는 부부를 밖으로 내보냈다. 진료실 밖 대기실에선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무정자증인 자신과 의심스러운 부인, 그리고 사랑스러운 아이들. 그의 심정은 복잡해졌다. 일단 병원을 나온 뒤 공원으로 가서 대화를 시도했다.


  “예린아. 내가…”


  “아, 아니야. 검사가… 잘못된 거겠지… 아니야…”


  그의 말에 그녀는 허둥지둥 어설프게 대답했다. 어쩜 이렇게 바람을 핀 것처럼 행동하는지, 의심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런 반응이 답답했다.


  “예린아.”


  “잘 모르겠어….”


  “아니 그게 아니라….”


  “모르겠다고.”


  “예린아. 요새 힘들었니?”


  “아, 모르겠어…. 그만 말해….”


  “예린아….”


  “모르겠다니까. 그냥 인제 그만 말하자. 응?”


  차분하게 말을 이어가려고 했지만, 계속되는 그녀의 안일한 태도에 잠시 흥분했다.


  “아니 너 바람 피냐고, 어?”


  그러자 그녀는 흠칫 놀라더니 갑자기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받지도 못한 채, 우는 아내를 달래느라 시간을 보내야 했다.


  집 문이 열리자 그녀는 얘기할 틈을 주지 않고, 바로 거실 바닥에 누웠다. 아무리 깨워도 피곤하다는 핑계로 일어나지 않았다. 결국, 그는 2인용 침대에서 혼자 자야 했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사정은 모르고 신나게 집안을 뛰어다녔다.


  밤새 누군가가 울면서 통화하는 소리가 집안을 울렸다. 그는 그 울음소리 때문에 잠에서 깼다. 그게 누구 목소리인지는 너무 뻔했다. 그는 살금살금 걸어가서 안방 문을 살짝 열고는 얼굴을 내밀었다.


  “어떡해, 오빠… 어. 맞아. 그렇다니까… 진짜….”


  그녀의 말을 대강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전화 상대에게 매달렸고, 그 사람은 그녀가 흐느끼는 게 귀찮았는지 전화를 끊었다. 그녀는 다시 전화를 걸어보더니 얼굴을 두 손으로 움켜잡으면서 흐느끼고는 다시 누웠다.


  아무렇지도 않게 그녀를 보고 있던 그의 눈물샘도 갑자기 폭발했다. 그는 침대로 뛰어들고는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한 몇 분 정도면 그칠 줄 알았는데, 밤새 눈물은 계속되었다. 베개는 축축해졌고 잠은 오지 않았다.


  아이들이 보고 있는데도 그는 거침없이 말을 꺼냈다. 어젯밤의 그 일이 너무 거슬렸다. 아이들은 이상한 분위기에 어색해했다.


  “내가 무정자증이라는데, 그러면 얘네들은 친자식이….”


  “오빠, 애들 있는데….”


  “오빠? 어젯밤에도 다른 오빠랑 통화하더니만. 그 사람 누구야?”


  그녀는 급하게 화제를 돌렸다.


  “얘들아, 빨리 먹어. 학교 가야지.”


  하지만 그의 질문은 계속되었다.


  “어젯밤에 그 남잔 누군데?”


  “아 그냥 아는 사람….


  “그럼 내가 전화해보자.”


  “아, 아니… 어… 바빠서 안 돼.”


  “참….”


  그는 그녀 몰래 법률 상담소를 찾아갔다. 무정자증인데 아이가 있는 경우는 불륜이 결과론적으로 입증되기 때문에, 다른 물증이 없어도 일방적으로 이혼할 수 있고 그에게 경제력이 있으니까, 양육권도 그에게 갈 거라고 말해주었다. 하지만 그가 원하는 대답은 그런 게 아니었다. 그저….


  일주일 뒤, 그는 말을 꺼냈다.


  “이혼할래?”


  그가 이 말을 꺼내는 데는 ‘결혼할래’라는 말을 말했을 때의 용기가 필요했다. 물론 진심은 아니었다. 그는 그녀가 화를 내주기를 바랐다. 자신은 정말 결백하고, 검사가 잘못된 거라고 확실하게 말해주길 바랐다.


  “아니… 난 정말 바람 핀 적 없어. 난 정말 아니라니까.”


  하지만 그녀는 변명만 늘어놓았다. 화는 내지 않았다. 그런 그녀의 태도는 그가 더욱더 자신을 의심하도록 만들었다. 그는 의심스러웠던 과거의 정황들을 묻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까 친구 만난다면서 저번 주 토요일에 온종일 집 밖에 나갔잖아. 그 친구 누구야?”


  “그냥 친구야.”


  “그럼 한 번 전화해볼게.”


  직접 전화해서 사실을 확인했다. 그녀 말이 맞았다. 하지만 그는 사과하지 않았다. 오히려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너, 너 첫째 생겼을 때 정말 당황했었잖아. 그거 왜 그런 거야?”


  “그건 당연한 거지. 임신하는 게 얼마나 큰일인데.”


  또 그녀의 말이 맞았다. 하지만 그는 계속해서 몰아붙였다. 결국, 그녀는 한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그럼 어제 그 남자는 누군데? 자세히 말해봐.”


  “그….”


  그는 피식 웃었다. 갑자기 벌어진 상황이 너무 어이가 없었다. 마치 삼류 판타지 소설에서나 일어날 법한 상황이었다. 그녀는 또 울기 시작했다. 자기는 정말 아니라고, 바람 핀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래. 그러면 어제 그 남자는 누구야?”


  그녀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그녀가 바람을 피웠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녀는 자기는 결백하다고 흐느껴댔다. 하지만 그런 모습이 진심이 아니라고 생각하자 안타까운 마음은 사라졌다. 그저 역겨웠다.


  “꺼져. 제발….”


  결국, 법정에서 두 남녀는 만나게 되었다. 법정 안의 사람들은 논리적으로 판단했다. 선천적 무정자증인 남편과 아내 사이에 자식들이 있다면, 아내가 불륜을 저지른 것이라는 게 그들의 판단이었다. 그는 양육권도 얻었다. 위자료는 없었다. 서예린은 끝까지 자신은 불륜을 저지른 적 없다고 했지만,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이은규도 믿지 않았다.


  그런데 이혼한 지 1년이 지난 뒤, 그에게 서예린의 번호로 문자가 왔다.


  “서예린의 부모 되는 사람입니다. 어제 예린이가 자살한 채로 발견되었어요. 이런 말 드려서 죄송하지만, 혹시 장례식장에 오실 수 있을지….”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사람으로서의 도리로서 대답해줘야 하는 게 아닌가 여러 번 고민했지만, 그래도 대답할 수 없었다. 그는 그녀를 잊고 싶었다. 아이들이 엄마를 보고 싶다고 말할 때마다 그의 마음은 찢어질 듯 아팠다. 장례식장을 가게 되는 순간, 잊을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다시 1년이 지났다. 그는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이메일들을 확인하다가 우연히 1년 전에 의사가 보낸 이메일을 보게 되었다.


  제목: 안녕하세요. 성진 병원의 한명숙 의사입니다.


  내용: 저번 검사는 이은규 님과 다른 분의 검사 결과가 바뀌어 나왔습니다. 그래서 다시 결과를 정정하겠습니다. 이은규 님은 무정자증이 아닙니다. 오히려 아주 건강하십니다. 파일로 사진도 첨부하겠습니다. 정말 사과드립니다.


  그 성의 없는 메일을 보자 갑자기 서예린에 대한 기억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그녀에게 청혼했을 때의 추억과 결혼식장에서의 기쁨, 첫째를 낳았을 때의 감격, 이마에 점이 있어서 틀림없이 내 아들일 거라고 말하고 다녔던 일들, 그녀가 힘들 때마다 해주었던 위로들, 항상 향기나던 그녀의 머리카락이 떠올랐다.


  2년 전, 그녀를 불륜으로 몰아세워서 그녀가 눈물을 흘리게 했던 일을 떠올렸다. 그녀가 법정에서도 끝까지 불륜이 아니라고 말했던 일이 떠올랐다. 그는 무정자증이 아니었다. 아, 그건 잘못된 검사였다! 그녀는 결백했다.


  장례식장에 와달라던 문자가 언제 온 건지 보았다. 4월 22일에 보내진 것이었다. 그리고 그 하루 전, 4월 21일에 그녀가 자살했을 것인데, 이 메일은 4월 20일에 발송된 것이었다. 이 메일을 보고 그녀에게 연락했다면 죽지 않았을 텐데….


  그는 오열했다. 퇴근 후에 그녀가 해주었던 저녁밥들이 떠올랐다. 그녀를 바라만 봐도 행복했던 대학 시절이 떠올랐다. 그런 사람을 불륜으로 매도해서 죽여버렸다니… 검사 결과가 잘못됐을 경우도 따져봤어야 했는데… 다시 검사해서 무정자증이 아니라는 걸 알았어야 했는데… 자신에 대한 분노가 그를 고통스럽게 했다.


   그는 의사의 이메일에 답장하기 위해서 발송자의 이메일 주소를 키보드에 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메일 주소를 보자 후회와 슬픔과 분노에 휩싸였던 그는 할 말을 잃었다.


  [서예린[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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