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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아, 역시 삶은 고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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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shinejade
추천 : 2
조회수 : 34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0/06/05 10: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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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사람-아, 역시 삶은 고통이다.
  
  프리드리히 헤겔은 법철학에서 ‘인권은 물권이다’이라고 주장했다. 굉장히 어려운 말 같지만, 사실은 별 것 아닌 말이다. 나는 나라는 정체성을 지녀야만 나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즉 정체성을 물권이라는, 사유재산으로 보는 것이 ‘인권은 물권이다’라는 말이다. 너무나도 당연한 말인 것 같지만, 이 조건은 그 속에 내재되어 있는 절대적인 법칙을, 무시할 수 없다.
  결국 우리는, 아니, 나(당신)는. 
  태생적인 외로움을 선택했기에, 나(당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될 수 없고, 나는 당신이 될 수 없다. 그렇기에 나(당신)는 외로움을 절대로 극복할 수 없고, 외로움은 우리를 죽을 때까지 쫓아다닐 것이다. 나(당신)와 당신(나)은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하나 될 수 없으며, 만일 가능하더라도 그 상황에는 한계가 있다. 죽음이라는 한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 
  아, 역시 삶은 고통이다.
  반대로 말해, 이 외로움이 극복된다면 나는 나가 아닌 것이다. 나임을 포기하는 것과도 마찬가지니 말이다. 그렇기에 이 극복될 수 없는 외로움을,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극복하려, 인생의 전부를 쏟아붓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삶의 이유는 이 외로움을 극복하는 데 있다. 권력, 명예, 부, 심지어 사랑까지도. 이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행해지는 것이다. 그렇지 않는다면 우리는 외로움에 집어 삼켜져 공허해져 간다. 우리가 인생에서 결핍을 느끼고, 이를 채워나가려 하는 욕망이 삶을 지배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좋은 사람을 찾아다닌다.
  나와 맞는 사람,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내가 돌보고 싶은 사람 등. 좋은 사람은 종류가 다양하다. 나 또한 재밌는 문장을 모토로 삼아 세상을 산 적이 있었다. ‘내가 받고 싶은 대우를 상대에게 해줘라’였다. 이는 굉장히 지키기 힘든 모토였고, 결국 집어 치워버린 그런 모토였다. 가장 이 모토를 지키기 힘들었던 것은, 각자 나름의 사는 방식이 있기 때문이었다. 나의 사는 방식, 내가 받고 싶은 방식이. 어쩌면 남에게 있어서는 굉장히 잘못된 방식임을, 나는 몰랐던 것이다.
  작년에 신입 직원이 입사했다.
  나는 그 친구에게 이것저것을 물어봤다. 그래도 명색이 컨텐츠 제작팀이고, 여행작가를 표방하는 집단이기에. 이 책은 읽어봤느냐, 저 영화는 봤느냐, 저 곳은 갔다 왔느냐 등. 말이 통할만 한 질문들을 쏟아냈고, 그 친구는 그걸 부담스러워 했다. 나는 무언가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그 친구에게 커피를 한잔 사주며 말했다.
  “그냥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 물었어요. 당신을 평가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냥 아는 게 그것뿐이라서요.” 
  그제야 그 친구는 긴장된 표정을 풀었다. 나중에 들어보길, 새삼 모르는 책을 들을 때마다 두려웠다는 고백을 했다. 나와 그 친구의 사는 방식이 달랐던 것이다. 그 친구는 수필과 기행문을 좋아했고, 나는 조지 오웰과 김훈을 좋아했다. 우리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았고, 전혀 다른 존재였다.
  우리는 이러한 오해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앞서 말했듯, 우리는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연결되어 있지 않다. 우리는 고립된 섬같은 존재다. 외로움은 우리를 섬으로 만들었다. 그렇기에 언어와 행동이라는 매우 조악한 통신수단으로, 심지어 의미가 제대로 온전히 전해지지도 않는 조악한 수단으로. 우리는 소통하고 있다. 즉, 우리는 불안전한 소통을 통해, 상대의 의미를 오해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아, 역시 삶은 고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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