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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뢰인
게시물ID : panic_10154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바젤넘버원
추천 : 5
조회수 : 1153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20/06/15 14: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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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의뢰인


해가 지고 하늘에 어둠이 깔리자

어김없이 남자가 화가를 찾아왔습니다.

 

 

며칠 전

밤늦게 화가의 화실을 찾은 남자

 

 

잿빛 우울로 가득한 얼굴의 남자는

화가의 열렬한 지지자라 자신을 소개했고

화가에게 그림 한 점을 의뢰했습니다

 

 

남자가 의뢰한 그림

 

 

그것은

해가 떠오르는 아침의 평화로운 모습이었습니다.

 

 

화가는 남자의 의뢰를 수락했고

남자는 매일 밤 화가를 찾아와

화가가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화가는

몇 시간이고 말없이 등 뒤에서 그림을 지켜보는 남자가

무척이나 부담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누군가 자신의 작업에 관심을 가져준다는 생각에

내심 기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일주일이 흘렀고

캔버스를 가득 채우던 형형색색의 덩어리들은

자리를 잡고 형태를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한적한 마을의 아침 풍경을 담은 화가의 그림에는

마을 종탑에 오른 종지기가

능선 위로 떠오르는 태양을 맞이하며

힘차게 종을 울리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어찌나 희망차고 밝은지

음울한 남자의 얼굴에도 환한 미소가 번졌습니다.

 

 

화가가 붓을 놀릴 때마다

화가의 등 뒤에서 남자의 감탄이 흘러나왔고

때로는 환희에 차서 또는 흐느끼며

화가가 작업을 마칠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그날의 작업이 끝나면

남자가 준비해온 빵과 우유로 간단한 식사를 하며

둘은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대화를 나누었고

그 대화는 오래도록 계속되었습니다.

 

 

그것은

화가에게 있어 소중한 추억이 되었고

화가는 매일 밤 남자가 찾아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습니다.

 

 

화가가 그림을 완성하기로 약속한 날

밤이 되자 어김없이 남자가 화가를 찾아왔습니다.

 

 

화가는 몇 시간이고 자리에 앉아 그림을 완성하는 데 집중했고

남자는 화가의 등 뒤에서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종을 치는 종지기의 두 팔 사이로 보이는

눈부시게 빛나는 햇살을 마지막으로

화가는 그림을 완성했습니다.

 

 

남자에게 완성된 그림을 알리기 위해 뒤돌아본 화가

 

 

하지만

그곳에 남자는 없었습니다.

 

 

남자가 앉아있던 의자에는

시커먼 재가 한 무더기 쌓여 있었고

바닥과 의자에 난 검게 그을린 자국만이

남자가 있었던 흔적을 대신하고 있었습니다.

 

 

순간

화가의 머릿속에

최근 마을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사건이 떠올랐습니다.

 

 

그 사건 이후

마을 사람들은 밤이 되면 문을 걸어 잠그고

대문에는 마늘과 십자가를 걸어 두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화가에게 그림을 의뢰한 남자

 

 

남자는

흡혈귀였던 것이었습니다.

 

 

떠오르는 태양이 간절히 보고 싶었던 남자는

화가의 그림을 통해 그 모습을 확인하려 했지만

그림 속 종지기의 두 팔 사이로 스며 나오는 햇살에

재가 되어 사라진 것이었습니다.

 

 

얼마 후

창가를 통해 아침 해가 뜨는 모습을 본 화가는

의자에 쌓인 재를 두 손에 담아

마을 종탑이 보이는 양지바른 곳에 묻었습니다.

 

 

때마침

아침을 알리는 종소리가 마을에 울려 퍼졌고

일터로 향하는 마을의 주민들이

따스한 햇볕을 맞으며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출처 https://blog.naver.com/jwlee2717/222001356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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