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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잊혀진 김선일 사건
게시물ID : freeboard_190885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DireK
추천 : 0
조회수 : 57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0/06/19 21:42:42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sisa&no=1158171

이렇게 덧글이 달려서 회상해본다.

사실 당시의 기록을 봐서는 조중동식 논조로 적혀서 말이다. 이게 상황이 전달이 잘 안 되지. 그리고 개독혐오도 조금 있었던 것은 사실이고.

모르는 청자들을 위해서 설명해주자면 이라크재건프로젝트에 한국은 그다지 끼지 못했고, 저조한 지원율이 문제시 되어서 아마도 용역의 제공자체가 원활하지 않았다고.

그러한 상황에서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건과 함께 등극한 이명박이라는 건설사 사장 출신 대통령이 그의 임기는 이라크전과는 조금 간극이 있었지만 이미 이전에 벌어진 이라크전쟁복구 프로젝트와 무관하지 않은 상황에서 

2010.02.19

요지랄을 캤지. 그러면서  “젊은이들은 중동, 아프리카로 나가라”

요지랄도 캤다고.


그런데, 당시에 이라크라는게 근자로 치면 뭐 후쿠시마 연봉1억 주면 갈래? 그런 수준이었고, 김선일이라는 인간이 가서 죽었는데,

김선일(金鮮一, 1970년 9월 13일 - 2004년 6월 22일)


그의 프로필에서 보이듯이 김선일이 이라크 갈 때에는 향년 35세, 당시의 35세는 지금의 구직시장에서는 40세같은 느낌의 진짜 오갈곳 없는 어중이떠중이가 가서는 죽은 격이었다고, 뭐 진짜로 후쿠시마 폐기물 처리조의 외국인노동자 모집에 1억 준다고 캐서 가는 한국놈이 있어서 보니까 마흔 다 되도록 자리 못 잡은 루저더라 뭐 그런 느낌.


그리고서는 종교랑 무관하게도 애초에 까일 각이었는데, 가나무역인가 하는 놈들이 개독임이 밝혀지면서 개독이 더 가열차게 가루가 되도록 까였지만 그건 기독교 아니어도 까일 각이었다고. 뭐 행여나 돈이나 벌어올 줄 알았나 캤더만 역시나 뒤져서 참수당했다는 거지.


그리고서는 비슷한 시기에 월남전 때에 재건프로젝트라던가 그런 쪽으로 건설사로 간 게이의 일화를 다룬 영화 국제시장이 개봉되기도 하였지만 베트남전쟁 때는 우리가 워낙 못 살 때이고, 돈 아무리 조금 벌어도 뒤지면 끝인데, 그게 2004년 상황에서 맞았겠냐고.

지덜 용역비 남겨 먹으니까 가라고 등떠미는 꼰대세대 명박이 이런 놈이 사이코패스지 안 간 당시의 나포함 젊은이들이 잘못이냐?


그런데, 김선일이 일치감치 죽어서 경각심도 일으키고, 어떻게 보면 시범케이스가 되었지. 김선일이 딱 2004년 그 때에 안 죽었고, 훨씬 뒤에 죽었더라면 멋도 모르고 가는 놈들이 더 많았을텐데 딱 죽었다고 밖에는 이제와서는 말 못하겠다.


https://ko.wikipedia.org/wiki/%EA%B9%80%EC%84%A0%EC%9D%BC_(%ED%86%B5%EC%97%AD%EC%82%AC)

그는 성심외국어전문대학을 졸업해 전문학사 학위를 딴 뒤 대학 학력인정 각종학교였던 부산신학교를 졸업하고, 이후 한국외국어대학교에 편입하여 아랍어를 전공하여 2003년 2월 학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가나무역에 취직하여 2003년 6월 15일에 이라크로 갔다.

2004년 5월 30일,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서 서쪽으로 50킬로미터 떨어진 팔루자 부근에서 아부 무사브 알자르카위가 이끄는 이슬람교 계열 무장 단체인 유일신과 성전(현재의 이슬람 국가)의 인질로 납치되었다. 이 단체는 자이툰 부대 파병국인 대한민국 정부에게 이라크로의 추가 파병 중단 및 현재 주둔하는 한국군을 즉각 철수시키라고 협박하였고, 노무현 정부가 파병을 강행하자 6월 22일에 그를 참수하였다. 뒤에 버려진 시신은 미국군에게 발견되어 미군 수송기로 쿠웨이트로 이송되었고, 이후 한국으로 김 씨의 시신이 송환되었다.


뭐 가자마자 딱 죽었지. 위에서 보듯이 2003년 6월 15일에 가자마자 1년도 못 넘기고 2004년 5월 30일에 남치되어서는 만 1년을 겨우 넘긴 6월 22일에 참수되었으니 ㅋㅋㅋㅋ 

명박이 돈 많이 못 벌어서 아쉬웠겠네. ㅋㅋㅋㅋㅋ 하다못해 2005년이나 그 이후에 잡혀죽였으면 그래도 자원자 좀 있었을텐데 바로 가자마자 뒤진 셈이라서 말이다.


그 이후에 이라크행은 그 모든 한국인들에게 재고되었다고 밖에는 말 못하지. ㅋㄷㅋㄷ


이게 뭐 예의 김선일 사건이고, 나는 이 사건을 개독사건이라기 보다는 좃망 시범케이스 사건으로 간주할 것이다. 김선일이 기독교 신자 아니었어도 어차피 시범케이스가 되었을 것이다. ㅋㅋㅋㅋㅋㅋ


뭐 덕택에 이라크에서 죽거나 부상당했을 한국인 사상자의 숫자는 줄인 격이지. ㅋㅋㅋㅋㅋㅋ


그리고, 당시에 이라크에 가지 않는 것은 보수, 진보를 떠나서 포항의 해병대출신의 월남전 다녀온 극보수라고해도 자기자식 이라크에 보낸다는 사람은 없는 분위기였고, 요즘에 대구경북이 조금 프레임이 갈리는 그런 것을 떠나서 그냥 전국적인 국민들의 정서였다고.

그런데, 그나마 갈려는 마이너리티한 집단들이 기독교 쪽에 있었는데, 그나마도 김선일이 죽으면서 초치는 바람에 거의 간 사람이 없는 결과가 나와버렸고, 명박이라는 놈은 그에 대해서 이건 젊은이들 탓이라는 식으로 조금 핏대를 세웠다고 보면 되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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