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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저주받은 취업
게시물ID : panic_10163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냥이박사
추천 : 6
조회수 : 143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0/07/06 21:3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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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상 위로 책들이 널브러져 있다. 통계학, 토익, 엑셀 등등... 취업과 관련된 책들이다. 난 세로로 길게 뻗은 거울 앞에 서서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검은 정장에 빨간 넥타이 차림의 남자가 거울에 비쳤다. 난 왁스로 범벅이 된 머리를 손끝으로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이번에......”
 
  20대 후반인 나의 큰 관심사는 역시 취업이었다. 우선적으로 대기업에 지원했지만 줄줄이 낙방. 눈높이는 점점 내려가 어느 중소 물류기업으로 지원하게 됐다. 필기와 실기는 모두 붙었고 오늘이 면접날이다.
  책상 위에 올려둔 핸드폰을 들어 액정을 들여다봤다. 오늘 14시에 면접이 있다는 메시지를 재차 확인한 후 방문을 열고 나섰다.
 
  “한수야, 면접 보러 가니?” 엄마가 물었다.
 
   엄마는 사과를 깎다말고 이거 먹고 가라며 날 붙잡았다. 난 손끝으로 반대쪽 손목을 툭툭 건드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시간 없다니까. 그리고 나 이 닦았어.”
  “아니, 사과는 먹어도 입 냄새 안 나. 면접 보는데 이거 좀 먹고 가.”
  “엄마나 실컷 드셔. 나 다녀올게.”
 
  난 현관문을 열고 나갔지만 엄마의 서운한 표정이 떠올랐다. 하는 수 없이 현관문을 다시 열고 들어왔다. 식탁 접시위에 놓인 사과 한 점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곤 다시 집밖으로 나섰다.
 
 
  면접장 안이다. 난 기다란 복도 의자에 앉아있다. 나와 같은 목적을 가진 면접 예정자들과 함께 말이다. 우린 다닥다닥 붙은 채 서로 핸드폰만 쳐다보고 있다. 따분하기도 하고 긴장이 되기도 했다. 그때 내 옆에 앉아있던 한 남자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말을 걸어왔다.
 
  “혹시 이 회사 소문 들은 것 있어요?” 남자가 내게 물었다.
 
  난 핸드폰을 내려다보던 시선을 거두고 남자에게 고개를 돌렸다. 주변을 두리번거리고는 모르겠다는 손짓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어떻게 보면 경쟁자인데 말을 섞을 필요는 없어서 크게 반응해주지 않았다. 남자는 눈치가 없는 건지 신이 난 표정으로 집요하게 말을 걸어왔다.
 
  “2년 전부터 이 회사에 신규 채용된 직원 중에 말이죠. 복불복으로 한명이 귀신에게 시달린다 하더라고요. ‘그건 내 자리야. 내가 일할 자리라고!’ 하면서 말이죠. 거기다 귀신의 모습이 너무 끔찍한 나머지 한 달을 못 버티고 나간다지 뭐에요?”
 
  난 듣는 둥 마는 둥 귀를 후벼 파다가 남자에게 되물었다.
 
  “그럼 본인은 그런 소문을 아는데 왜 지원하는 거예요?”
 , 저 말인가요? 하하. 그야 당연히 전 준비가 돼있으니까요.”
 
  남자는 정장 재킷을 활짝 열어젖혔다. 난 재킷 안을 쳐다보다 기가 찼다. 세상엔 별종들이 너무 많다. 내 눈에 각종 부적에다 십자가, 은빛 총알, 은장도가 보였다.
 , 예에.” 하고 답하자 면접실에서 내 이름을 호출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난 이 괴상한 사람으로부터 벗어나서 다행이라 안도하며 면접실로 들어갔다.
 
  면접에서 예상했던 질문들이 나왔다. 수차례 겪은 면접 경험으로 인해 여유도 생겨서인지 편하게 임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 방심할 순 없었다. 면접 지원자들이 꽤 많았으니까. 대기실 옆에 앉아있던 남자도 괴상하긴 했지만 어쩐지 무시할 순 없었다. 그래도 합격의 느낌이 강하게 든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번엔 자신 있었다.
 
  며칠이 지났다. 대개 채용 여부를 알려주는 것이 기본이지만 그 기본이 지켜지지 않는 곳이 많았다. 연락이 안 오면 채용이 안됐다고 알라는 개소리. 그런 걱정할 필요가 없이 연락이 왔다. 일주일 뒤에 출근하라는 좋은 소식과 함께 말이다. 난 오늘도 엄마가 깎아둔 사과를 한 점 먹으며 밖을 나섰다. 좋은 기분을 혼자 누려도 좋지만 친구들과 나눠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늦은 오후라 그런지 노을 진 하늘이 운치 있었다. 회색빛이던 내 기분은 주황색 노을빛으로 부드럽게 물들었다. 횡단보도를 건넌 뒤 한적한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술집이 밀집한 약속장소로 가는 지름길이었다. 휘파람을 휘휘 불며 걸어가던 난 무언가를 보고 걸음을 멈췄다. ‘내가 잘 못 본 것일까? 몸에 이상이라도 생긴 건가?’ 난 우두커니 그것을 쳐다보며 굳어있었다.
  그것. 사람인지 귀신인지 잘 모르겠다. 한쪽 머리가 일그러져 피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고 피부는 창백했다. 무엇보다 검은 눈동자가 비이상적으로 컸다. 그것은 한동안 날 노려봤다. 어디선가 시체 썩는 냄새가 맡아질 때쯤 그것은 내게 돌진해왔다.
 
  “그 자리는 내꺼야! 썩 비키지 못해?”
 
  난 정신을 차리고는 냅다 줄행랑을 쳤다. 아무 생각 없이 앞만 보고 전력 질주했다. 한참을 달렸을까? 가쁜 숨을 내쉬며 무릎에 손을 내리고 호흡을 골랐다. 그리고 용기를 내고 뒤돌아봤다. 아무것도 없었다. 난 약속 시간보다 늦겠다고 친구에게 연락을 취하곤 그것을 처음 본 장소로 걸음을 돌렸다.
  그곳에 가자 그것은 없었다. 난 불현 듯 면접 때 내 옆에 앉아있던 남자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복불복으로 한명이 귀신에게 시달린다 하더라고요.’
 
2
  긴장된 마음을 품고 처음 출근했다. 아르바이트는 여러 번 해봤지만 정식 직장을 가지고 일을 해보기는 처음이었다. 비슷한 또래들이 아닌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상사도 있었고 업무가 진행되는 현장이 프로다웠다. 중소기업이라고 하지만 그들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인력이었다.
  김지훈, 5년차 회사원이자 나의 사수로 배정받은 선배였다. 그는 첫날부터 날 회사 군데군데 이끌고 돌아다니며 교육을 진행했다. 난 품에서 메모장을 꺼내 일일이 메모하며 열의를 불태웠다. 지훈은 그런 내 모습을 보고 피식 거리고는 날 흡연 구역으로 데려갔다.
 
  “담배 피우나?” 지훈이 담배 개비를 내밀었다.
  “아뇨. 담배 안 피웁니다.”
  “그래? 일하다 보면 이거 생각날 거다.”
 
  지훈은 씩 웃으며 담배 개비에 불을 붙이고는 한 모금 깊게 빨아들였다. 그는 무언가 할 말이 있어보였다. 그 말은 담배 연기와 함께 입안에서 맴돌고 있는 것 같았다. 물끄러미 날 쳐다보던 그는 타다버린 담뱃재를 툭툭 치고는 담배개비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잘 버텨봐. 안 맞는다 싶으면 일찍 관두는 것도 현명한 거니까 그것도 잘 생각해보고.” 지훈은 내 어깨를 툭툭 치고는 따라오라 손짓했다.
 
  그로부터 3주가 지났다. 정직원까진 1주일정도 남았다. 그동안 말도 못하게 실수를 많이 저질렀다. 처음엔 이곳이 나와 맞는 곳일까? 하는 자괴감이 들 때도 많았다. 익숙해졌다 싶으면 실수를 범하고, 또 새롭게 적응해야 되는 일이 나타나 혼란에 빠지는 악순환이었다. 그래도 3주가 됐을 땐 일이 몸에 익어 조금씩 편해졌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 했던가?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면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붙었다.
  그날은 처음으로 보고서를 작성해 대리에게 건네는 날이었다. 사수인 지훈의 도움으로 수차례 예행연습을 해봤지만 실전은 처음이었다. 보고서에 적힌 내용은 맞는지, 맞춤법은 정확한지 찬찬히 확인했다. 실수가 있어선 안됐다. 보고서를 들고 저 먼발치에 있는 대리를 향해 걸어가다 갑자기 걸음을 돌렸다. 긴장을 해서인지 소변이 마려웠다.
 
  화장실에 들어가 소변을 대차게 본 뒤 세면대에 물을 틀었다. 가만히 손을 씻다 거울을 들여다봤다. 멍한 표정을 한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그러다 내 시선은 점차 멍한 남자 뒤에 있는 무언가를 향해 이동했다. 벽 한구석에 큰개가 드나들만한 구멍이 보였다. ‘웬 구멍이지?’ 하고 생각할 때 양변기 칸막이 문이 거울에 보였다. 살짝 열려있던 문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끼이이익- 신경을 긁는 소리와 함께 말이다. 어쩐 일인지 난 움직일 수 없었다. 어디선가 맡아본 시체 썩는 냄새가 풍겨져왔기 때문이다. 하염없이 거울을 통해 문이 열리는 것을 봤다. 꿈에서조차 보기 싫었던 그것. 길에서 본 무언가...... 그것은 머리가 일그러진 채 날 노려봤다.
 
  “말했지? 네 자리는 내 자리라고!”
 
  그것은 칸막이 문을 밀치고 뛰쳐나왔다. 난 수전 잠그는 것도 잊은 채 화장실을 빠져나와 문을 닫아버렸다. 화장실 안에서 문을 미친 듯이 쿵쿵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난 필사적으로 손잡이를 잡고 버텼다.
  몇 분이 지났을까? 쿵쿵 소리가 사라지고 물 흐르는 소리만 들려왔다. 난 슬그머니 손잡이를 돌려 안을 들여다봤다. 칸막이 문은 모두 열린 채 텅 비어있었다. 재차 확인하기 위해 몸을 화장실로 집어넣자 내 어깨를 무언가 건드리는 느낌이 들었다. 화들짝 놀라 팔꿈치를 반사적으로 휘둘렀다. 그것은 내 팔꿈치를 막았다. 난 정신을 차리고 내 팔꿈치 너머에 있는 그것을 봤다. 소스라치게 놀란 난 팔꿈치를 내리고는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사수인 지훈이었다.
 
  “괜찮아?” 지훈이 날 진정시켰다.
  “, 선배님.” 난 주저앉아버렸다.
 
  지훈은 흡연실에서 담배 개비를 입에 물고는 내게 커피 잔을 내밀었다. 난 조용히 받아들고 홀짝거렸다. 지훈은 내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난 대충 얼버무렸다. 요즘 시대에 귀신을 봤다고 하면 얼마나 비웃음을 사게 될까? 거기다 난 신입사원인데 이런 소문을 내서 좋을 것이 없다. 내가 이렇게 망설이고 있자 지훈이 말을 꺼냈다.
 
  “2년 전이었을 거야. 그때도 이 회사는 신규채용을 했었지. 이 작은 도시에서도 인간답게 살고 싶은 청년들이 많았거든. 대기업에 비해선 연봉이 적지만 그래도 먹고 살 정도는 되는 회사지.
  그때 박현성이라는 지원자가 있었어. 가난해서 교육적인 혜택도, 머리 좋은 유전자를 물려준 부모도 없었지. 그래도 피나는 노력 끝에 이곳에서 면접까지 성공적으로 치렀어. 여기까진 해피엔딩이었겠지만......” 지훈은 담배 연기를 길게 뿜었다.
  “갑자기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낙하산이 무슨 말인지 알지? 이 회사 고위직들은 하나같이 장성한 자식들이 있어. 그때 윗대가리중에 한 자녀가 이곳에 들어오고 싶다고 말을 꺼냈지. 그때였어. 박현성의 인생이 꼬이기 시작한 것이. 윗대가리는 낙하산이라는 말을 싫어했고 합법적으로 취업시키길 원했지. 그들은 머리를 굴린 끝에 출근을 아직 안한 신입 중에 한명을 희생시키기로 결정했지. 그때 채용담당자는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먹이며 박현성에게 입사 취소를 통보했고, 이에 격분한 박현성이 회사까지 찾아와 항의를 했던 거지.”
  “자꾸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그날 박현성은 채용담당자와 실랑이를 벌였어. 격렬한 몸싸움이 오고갔지. 그러다 현성은 도로를 지나가던 화물차를 보지 못했던 거야. 그 덕에 머리가 박살났고. 네가 화장실에서 본 게 박현성이 맞을 거야
  “......제가 본 게 뭔지 아시는군요?”
 
3
  면접 때 괴상한 남자가 했던 말이 사실이었다. 한을 품고 죽은 박현성이 채용된 신입사원 중에 한사람에게 나타난다. 하필 그게 나였던 것이다. 지훈은 퇴사를 권유했지만 난 그럴 수 없다고 했다. 어떻게 해서든 버티겠다고 했다. 그동안 노력했던 것을 떠올리자니 그깟 귀신 따위 무섭지 않았다. 아니 귀신보다 돈을 벌지 못하는 현실이 더 두려웠다. 지훈은 곰곰이 생각하다 누군가를 찾아가보라고 했다. , 아니 그녀는 작년에 입사한 뒤 귀신을 보고도 일하고 있으니까.
 
  그녀의 이름은 이소정이었다. 옆 부서에 있던 소정은 큰 키에 청바지를 입은 수수하고 매력적인 여성이었다. 모니터를 보며 무언가 열심히 작성하던 그녀를 쳐다봤다. 프로답다고 생각됐지만 몰래 메신저를 켜고 메시지를 작성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것이 귀엽다고 느낄 때 소정이 갑자기 돌아봤다.
 
  “아까부터 계속 쳐다보는 이유가 뭐죠?” 소정이 쏘아붙였다.
 
  난 당황하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곧장 고개를 연신 숙이며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그녀는 본체만체하며 시선을 모니터로 다시 돌렸다. 난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그녀의 뒤통수를 향해 말했다.
 
  “혹시 박현성이라고 아시나요?”
 
  그 말과 함께 소정은 번개같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변 눈치를 살피던 그녀는 날 이끌고 부서 밖으로 나갔다. 소정은 잔뜩 경계하는 눈빛으로 주변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올해는 당신 차례인가 보죠?” 소정이 물었다.
  “, 설명은 더 할 필요가 없을 것 같군요. . 그 사람이 자꾸 나타납니다. 제 사수인 지훈 선배에게 들었는데...... 소정 씨가 그 자를 보고도 1년 넘게 근무하고 있다고 해서 찾아뵙게 됐습니다.”
  “관두세요.”
  “?”
 
  소정은 품에서 하얀 봉지 뭉치를 꺼내보였다. 가만히 들여다보자 진통제, 수면제, 안정제 같은 약봉지였다.
 
  “1년 동안 이걸로 간신히 버텼어요. 그리고 내게 붙었던 그것이 당신에게로 간 지금까지도..... 그 후유증으로 약을 달고 살아요. 나처럼 좀비같이 살기 싫으면 관두는 게 좋을 거예요.”
  “아니, 그럴 수 없어요. 어떻게 가지게 된 직장인데......”
  소정은 잠시 창문밖에 풍경을 응시했다. 입술을 꾹 깨물던 그녀는 고개를 휙 돌려 날 쳐다봤다. 잠시 뜸을 들이던 그녀는 힘겹게 입을 뗐다.
 
  “전 실패했지만...... 어쩌면 한수 씨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네요. 전 계속 다닐 의지가 있었지만 겁이 많아서 말이죠.”
  “제발 알려주세요. 겨우 들어온 직장인데 그깟 귀신 때문에 퇴사할 순 없어요.”
  “면접 봤을 때 이상한 남자와 함께 면접을 보지 않았나요?”
 
  이상한 남자라. 하긴, 처음으로 괴상한 소문을 알려줬던 그 남자가 기억 속에 있었다. 그것도 뚜렷하게 말이다. 이 일의 해결책이 그와 관련이 있는 것일까? 소정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그 남자는 약간 신기가 있었어요. 그래서 절 도와주려했죠. 그때 박현성을 달래보려했지만...... 담력이 약해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어요. 그 결과 이렇게 약으로 버텨왔지만. 아무튼 그 남자의 이름은 권진태라고 해요. 저도 반신반의하며 도움을 청했었는데. 아무튼 그 남자가 한수 씨를 도와줄 거예요.”
 
  대리에게 보고서 대면 보고를 마친 뒤 이 사실을 지훈에게 말했다. 그러자 그는 전화를 걸더니 잠시 기다리란 말을 남기고 어디론가 향했다.
  10분쯤 지났을까? 지훈이 문자를 보냈다. 문자 내용에는 내가 찾아야 되는 남자. 권진태의 연락처와 주소가 적혀있었다.
 
  난 퇴근하자마자 택시에 몸을 실었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지만 하루라도 빨리 해결하고 싶었다. 진태에게 바로 전화를 걸어 만남까지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도착한 곳은 고급빌라들이 즐비한 동네였다. 약간 의아한 기분을 느꼈다. 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진태에게 전화를 다시 걸었다. 그러자 여기요. 여기!” 큰소리로 외치며 손을 흔드는 진태를 발견했다. 그는 등산복 차림에 가방을 멨는데 알 수 없는 장비들이 주렁주렁 몸에 달려있었다.
 
4
  진태는 이미 원혼으로 남겨진 박현성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는 회사에 입사도 할 겸 퇴마도 하려했는데 번번이 떨어졌다고 털어놓았다. 난 멋쩍게 웃고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현성을 나에게서 떨어뜨리는 방법을 말이다.
 
  “지금 우린 박현성의 시신이 안치된 공동묘지로 갈 겁니다. 그곳에서 그의 묘지에 제사와 엑소시즘을 병행해야 될 텐데...... 감당하실 수 있겠어요? 그냥 포기하고 퇴사하시는 것도 좋은 방법일겁니다.” 진태는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다.
  “퇴사는 꿈에도 싫으니 꼭 도와주십시오. 그럼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사례하죠.”
 
  난 진태의 검정 제네시스 차량에 합승해 공동묘지로 향했다. 차를 타고 가는 와중에 의아했던 것이 꽤 잘사는 집의 자제 같은데 굳이 중소기업으로 들어오려는 걸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진태가 말을 걸어왔다.
 
  “그거 아세요? 요즘에는 무엇이든 명분이 필요하고 남의 눈도 많이 의식해야 되는 세상이에요. 그 얼마 전에 대기업 총수도 주식을 불법으로 물려받았다고 법정까지 가고 말들이 많잖아요. 결국 무죄가 되겠지만 당사자는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할 거예요. 그렇죠?”
  “, .” 난 이 와중에 무슨 쓸데없는 소리인가 하며 건성으로 답했다. 이후 지루하게 늘어놓는 진태의 궤변을 무시한 채 창가를 봤다. 해가 떨어지고 어둠이 찾아왔다.
 
  가난한 이들은 죽어서도 가난했다. 공동묘지이긴 하지만 관리가 안 된 채 잡초가 듬성듬성 자라나있고 땅도 파헤쳐 있었다.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나도 일을 안 하고 살게 되면 이런 결말을 맞게 될까? 생각에 빠져있는 사이 진태가 박현성의 묘지를 찾아냈다. 그는 곧장 박현성의 묘비에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술을 뿌리고 팥을 뿌려댔다. 부적도 붙이고 십자가 모형도 땅에다 박아 넣었는데 그 일련의 모습이 뭐랄까? 굉장히 어설픈 모습이었다. 나의 불신의 눈빛에도 진태는 아랑곳하지 않고 일을 마쳤다. 그는 지친 듯 바닥에 주저앉아 흐르는 땀을 연신 닦아댔다.
 
  “, 지금부터가 중요해요. 우선 저의 역할은 여기서 끝입니다. 이 귀신이라는 것은 퇴치할 수 있는 것이 있고 그럴 수 없는 것이 있단 말이죠. 우리가 맞닥뜨려야하는 존재는 바로 후자입니다. 퇴치할 수 없다면? 뭘 어떡하겠어요? 달래야죠.
  지금부터 한수 씨는 홀로 여기 남아 빌어야합니다. 자신이 회사에서 일할 수 있게 해달라고 말이죠. 성공한다면 귀신은 사라지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포기하고 퇴사하는 것도 현명한 선택이 될 겁니다.
  아무튼 저의 역할은 여기까지네요. 전 근처에 몸을 숨길 테니 의지를 가지고 빌어보십시오. , 그리고...... 말이 안 통한다 싶으면 그냥 도망치십시오. 잘못하면 쇼크를 먹어 정신이 나갈 수도 있으니까.”
 
  진태가 숨으러 간 건지 도망친 건지 모르겠다. 난 묘지 앞에 홀로 남았다. 주변에 아무것도 없었고 스산한 바람만이 불어왔다. 보이는 묘지마다 우뚝 솟은 묘비들은 짐승의 송곳니처럼 날카로워보였다. 난 박현성의 우뚝 솟은 묘비 앞에 무릎을 꿇고 합장을 하곤 빌기 시작했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어떻게 해서든 이 사회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공장 생산직이나 배달대행업체라도 해야 될 판이다. 그런 생각에 진저리가 나자 기도에 힘이 붙기 시작했다. 난 소정처럼 약물에 의지하지 않고 정상적으로 살아남을 것이다.
그때였다. 스산한 바람소리와 함께 정체모를 남자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마침내 그것이 왔음을 직감했다. 눈을 뜨자 박현성의 묘비에 팔을 걸친 채 서있는 남자가 보였다. 일그러진 한쪽 머리에 시체 썩는 냄새. 시각과 후각이 동시에 마비되는 기분이었다. 난 그에게 용기내서 말을 먼저 건넸다.
 
  “사정은 딱하지만 저에게도 기회를 주세요. 저도 현성 씨만큼 가난하진 않지만 그래도 흔히 말하는 흙수저란 말입니다. 힘겹게 중소기업이라도 들어갔는데...... 거기마저 이런 이유로 나가야 되는 건 말이 안 되지 않나요?”
  “큭큭, 말길을 못 알아듣는구나. 그 자리는 내 자리야.”
 
  말을 마침과 동시에 그것은 괴력을 발휘하며 묘비를 뽑아내버렸다. 그리고 품에서 커다란 식칼을 꺼내들어 달려들기 시작했다. 순간 머릿속으로 짧게 든 생각이 있었다. 귀신은 대개 물리적으로 영향을 끼치지 못하지만 저것은 물리적으로 영향을 끼친다. 그것은 지금 칼을 들고 있다. 난 찰나의 순간에 이런 생각을 떠올렸다. 본능적으로 벌떡 일어나 달아나기 시작했다.
  공동묘지 입구까진 망원렌즈로 바라보듯 무척 멀게만 느껴졌다. 분명 들어올 땐 이곳까지 멀지 않았는데 말이다. 힐끔 뒤돌아보자 현성이 두발로, 아니 네발로 기어오고 있었다. 그것도 굉장히 빠른 속도로. 난 그 모습에 기겁하여 발을 헛디뎌 자빠지고 말았다. 그러자 현성은 속도를 줄이고는 내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소름끼치는 커다란 동공으로 날 내려다봤다. 그는 식칼을 높게 치켜들었다. 난 칼을 막아보려 양손을 올리고는 눈을 질끈 감았다. 최후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쩐 일인지 그는 뜸을 들이고 있었다. ‘왜 찌르지 않지?’ 라고 생각을 했지만 쉽사리 눈을 뜨진 못했다.
  시간이 꽤 흘렀다. 어디선가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괜찮아요? 한수 씨?”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눈을 뜨자 이소정이 보였다. 슬그머니 숨어있던 진태도 나타났다. 그들은 날 일으켜 세워주곤 주변을 경계했다. 난 떨리는 호흡을 진정시키려 애를 썼지만 쉽지 않았다. 떨리는 입을 간신히 멈추고는 말을 꺼냈다.
 
  “어떻게 됐죠? 끝난 건가요?”
 
  진태와 소정이 서로 눈빛을 주고받더니 날 힘없이 쳐다봤다. 마치 좋지 않은 말을 누가 꺼내느냐? 고민을 하던 눈빛이라 여겨졌다. 진태가 낮은 한숨과 함께 입을 뗐다.
 
  “아무래도...... 달래는 건 고사하고 한수 씨한테 붙어버렸어요. 한수 씨가 다시 출근할 땐 들고 있던 칼로 한수 씨를 살해할지도 모르겠군요. 소정 씨는 처음이라 칼까진 휘두르지 않았던 것 같은데, 한수 씨는 다르네요. 원한이 더 강해진 거죠. 이건 저도 예상 못했어요.”
 
  난 어이없는 상황에 눈물이 주르륵 흘러나왔다. 진태가 집까지 태워주겠다고 했지만 난 거절했다. 공허한 마음을 안고 홀로 공동묘지를 빠져나왔다. ‘세상에는 별의 별 일이 다 있구나.’ 쓴웃음을 지었다. 그날 밤에 뜬 달은 크고 밝았다. 달빛 아래 설렘보단 차가움이 느껴지는 밤이었다.
 
  공동묘지에 진태와 소정이 덩그러니 남겨져 있다. 두 남녀는 한수가 사라진 것을 확인하곤 다됐으니 나오라고 속삭인다. 그들은 누구에게 말을 하는 것일까?
  그러자 수풀에 몸을 숨기고 있던 그것, 아니 현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현성은 양손으로 얼굴을 뜯어내기 시작했다. 경악스러운 광경이지만 진태와 소정은 태연하게 이 광경을 지켜볼 뿐이다. 얼굴, 아니 정교하게 만들어진 가면이 벗겨지자 한수의 사수였던 지훈의 얼굴이 드러난다. 진태가 씩 웃으며 지훈의 어깨를 툭툭 친다.
 
  “고생했어. 지훈 씨.”
  “별말씀을요. 소정 씨도 연기하느라 애썼어.” 지훈이 말했다.
  “제가 한 게 뭐 있나요. 시나리오는 지훈 선배가 다 짰는걸.”
 
  지훈은 진태에게 고생하셨다고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곁에서 지켜보던 소정도 쭈뼛거리며 고개를 숙이자 진태는 손사래를 친다.
 
  “어유, 그러지들 마세요. 그건 그렇고...... 한수 저사람 내일이면 제 발로 나가겠지?” 진태가 지훈에게 물었다.
  “그럼요. 작년에 권 상무님 아드님도 이렇게 자리 하나가 나서 합법적으로 들어왔는걸요. 낙하산이란 말은 절대 없을 겁니다. 걱정 마십시오.”
  “아버지께서 사장 급은 아닌지라 이렇게 하는 것도 번거롭네. 내가 공부를 더했어야 했나? 하하. 아무튼 고생들 했어요. 정식으로 출근하게 되면 아버지께 지훈 씨랑 소정 씨 얘기 꼭 해볼게요.”
 
  세 남녀가 공동묘지가 떠나가도록 웃어 제꼈다. 그러다 불현 듯 무언가 생각이 난 진태가 지훈에게 다시 물었다.
 
  “그런데...... 박현성? 그 사람 이야기 진짜인가?”
  “그런 일이 있었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저도 확실하겐 잘 모르겠습니다. 하하, 아무튼 축하드립니다.”
 
  어디선가...... 이들을 지켜보는 시선이 있다. 어질러진 묘지 위로 누군가 서있다. 산발이 된 머리가 바람에 휘날리고, 머리는 깨진 채 뇌수액이 흐르고 있다. 한쪽 눈이 일그러진 진짜 박현성의 원혼이 이들을 노려보고 있다.
 그는 그들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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