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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음악
게시물ID : panic_10165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바젤넘버나인
추천 : 8
조회수 : 1179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20/07/11 07:3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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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어떤 음악



뛰어난 오르간 연주솜씨로 명성이 자자한 남자는

며칠 후 있을 어떤 비밀스러운 모임에 초대되었습니다.

모임에 호기심이 생긴 남자는

초대를 수락했고

모임에서 오르간을 연주하는 대가로

후한 보상을 약속받았습니다.

모임이 있는 날

어두운 숲을 통과해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힌 옛 성터에 도착한 남자는

남자를 마중 나온 사내의 안내를 받으며

지하의 어둡고 습한 계단을 내려갔습니다.

좁고 음습한 지하 감옥에 도착한 남자는

붉게 타오르는 촛불 아래

남자의 손길을 기다리는

낡고 오래된 오르간을 보았습니다.

귀족들의 향락파티에 초대된 거라 예상했던 남자는

뜻밖의 상황에 적잖이 당황했지만

오르간 위에 놓인 악보를 살펴보고는

그 낯설고 이국적인 형식에 매료되어

주위의 음산하고 불길한 풍경 따위는 금세 잊었습니다.

이어

오르간 앞에 의자를 끌어당겨 앉은 남자는

그의 숙련된 두 손으로

악보가 이끄는 미지의 세상을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낮은 음들이

마치 거인의 걸음걸이처럼 무겁고 느리게 반복되었고

거인을 보고 놀란 사람들의 비명일까…

충동적으로 터져 나오는 가늘고 기다란 선율에

남자의 머리털이 곤두섰습니다.

그 기괴한 상상력을 자아내는 음악에

남자는 깊이 빠져들었고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연주가 끝나고 난 뒤였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남자의 손에는 금화로 가득한 주머니가 들려 있었지만

남자의 머릿속은

지하감옥에서 연주한 곡으로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연주 당시의 황홀한 기분과

손끝에 남아있는 건반 두드리던 감촉뿐…

남자가 연주한 곡은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남자는 오르간 앞에 앉아 기억을 더듬었지만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한 채

자신의 모자란 기억력을 한탄하며

낮이 되어서야 잠이 들 수 있었습니다.

며칠 뒤

암담한 기분으로 거리를 쏘다니던 남자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노래 소리에

두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생소하지만

남자의 머릿속 깊이 각인되어있던 그 선율은

남자가 지하 감옥에서 연주했던

그 음악이 틀림없었고

노래가 들리는 곳으로 달려간 남자는

광장의 하늘을 뒤덮은 검은 연기와 마주쳤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 붉게 타오르는 장작더미 위에서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로 노래하는 한 무리의 사람들도…

마을 처녀를 납치해

그들의 사악한 의식에 제물로 바친

사교[邪敎]의 사제들로

그 죄가 밝혀져 화형에 처한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남자가 연주했던 그 낯선 음악은

고대로부터 전해져 온 사교의 음악이었습니다.

남자가 음악에 심취해 연주를 계속하는 동안

지하 감옥의 건너편 방에서는

그들의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의식이

치러지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남자가 연주한 그 음악이

그 어떤 사악한 의미를 띄고 있다 하더라도

남자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단걸음에 집으로 돌아온 남자는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무서운 기세로 악보를 채워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날

모두가 잠든 야심한 밤

남자의 집에서 오르간 연주가

밤새도록 흘러나왔습니다.

잠결에 남자의 연주를 들은 이웃들은

어두운 숲을 떠도는 꿈을 꾸었고

태고의 살아 숨 쉬는 듯한 거대한 나무들 위로

그 웅장한 모습을 뽐내며 서 있는 거인과

거인의 발 아래

광란의 춤판을 벌이는 벌거벗은 남녀들을 보았습니다.

거인의 야수와도 같은 두 눈과 마주친 이웃들은

그들의 머릿속에서 울리는 거인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로다무스 테 도미넘…

경배하라 그대의 주인을…


출처 https://blog.naver.com/jwlee2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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