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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 씨 이야기
게시물ID : readers_3497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챠챠브
추천 : 3
조회수 : 423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20/08/20 17:5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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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그 산에는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는 바위가 있어.

마을 어른들은 그걸 '염장군 바위'라고 부르지.


아주 먼 옛날 옛적에, 마을에 '염 씨'라는 남자가 살았어. 그는 어려서부터 무예에 뛰어났고, 힘도 세고 머리도 똑똑해서 무슨 일이든 곧잘 했지. 그러나 아버지를 일찍이 잃어 어머니만 모시면서 살고 있었어.


그는 나라를 지키는 장군이 되고 싶어 했단다. 하지만 농사를 지으며 틈틈이 홀로 무예를 닦는 데 만족해야만 했어. 그 어머니는 염 씨가 마을 밖으로 떠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겼거든.


그러나 염 씨는 해가 지날수록 통 무예 실력이 늘지 않아서 괴로워했어. 혼자서는 더 깨우칠 수 없는 한계에 다다른 거야.

염 씨는 결국 길을 나섰어. 어머니와 크게 다툰 것은 말할 것도 없었지. 염 씨는 어머니가 홀로 남으실 것이 걱정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작은 마을에 갇혀 남은 평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 견딜 수가 없었어. 분명 세상 밖으로 나가면 실력도 연마하고 돈도 벌면서 어머님을 호강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어.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염 씨가 떠나고 나서 그 어머니는 삼일 밤낮을 울었다고 해.


염 씨는 근방에서 제일 큰 도시로 갔어. 큰 도시로 가면 사람이 많으니까 뛰어난 이들이 지천으로 있을 거라고 기대하면서 말이야. 그러나 그는 곧 실망하고 말았어. 도시에도 염 씨보다 뛰어난 이가 없었거든.

하는 수 없이 노잣돈을 모으기 위해 여러 가지 힘쓰는 일들을 찾아 삯을 받고 사람들을 돕기 시작했지. 그런데 되려 도시 사람들이 염 씨의 괴력에 놀라기 일쑤였어. 젊은 소보다도 쟁기를 빠르고 곧게 끄는 사람을 처음 봤거든.

사람들 사이에 서서히 염 씨의 이름이 오르내리기 시작했어. 염 씨라는 장사가 밤낮없이 사람들을 돕고 다닌다, 산적 스무 명쯤은 한 손으로 제압한다, 절구통을 옆 마을로 가져가 달랬더니 번쩍 들어서 옆 마을까지 던지더라, 그런 소문들이 나돌게 된 거야. 그리고 그 소문은 저잣거리에서부터 전국을 누비는 보부상들을 타고 이리저리 퍼지다가 결국엔 임금님 귀에까지 들어갔어.


임금님은 이 염 씨라는 사내의 소문을 듣고는 몹시 궁금해서 참을 수 없었어. 도대체 어디서 어떤 일을 하고 다니기에 그런 허무맹랑한 소문이 온 나라에 나돈단 말이야? 임금님은 단박에 명을 내려 염 씨를 궁궐로 데려왔어. 그리고는 말했지. 온 나라가 네 소문으로 난리인데, 소문이 사실인지 증명해보라고. 헛소문 일시에는 목을 치겠노라고.


임금님은 우선 염 씨에게 칼 한 자루를 주고는 잘 훈련된 병졸 백 명과 싸우게 했어. 하지만 염 씨는 눈 하나 깜빡 안 하고 병졸들을 모두 제압해버렸지. 놀랍게도 다치는 사람 하나 없이 말이야. 임금님은 믿을 수가 없었어서 병졸들을 더 많이 불렀어. 이백 명, 삼백 명, 병졸들의 대장들 까지... 하지만 언제나 서있는 이는 염 씨 뿐이었어. 임금님은 놀란 눈으로 서둘러 다음 시험을 준비시켰지.


궁궐 밖의 큰 산에는 통행을 막는 큰 바위가 있었어. 어찌나 큰 바위인지, 한눈에 다 보이지도 않고 그 옆으로 빙 돌아서 지나가는데만 반나절이 걸렸다고 해. 임금님은 이 바위를 없애고 길을 닦으면 왕래가 편해져 나라가 아주 좋아질거라면서 바위를 치워서 사람이 가지 않는 정상에 올려놓으라 명했어. 


염 씨는 그 말을 듣자 눈을 빛내며 바위로 달려갔어. 기합을 넣으며 바위를 들어올리려 했지만 바위는 꿈쩍도 하지 않았어. 마치 땅에 뿌리라도 박힌 것 처럼. 아무리 염 씨여도 들지 못하는 게 있었던거야. 

염 씨는 곰곰히 생각했어. 그리고는 아름드리 나무 한 그루를 뿌리채 뽑아왔어. 임금님과 궁궐 신하들이 영문을 몰라 하는 사이에 염 씨는 나무를 세차게 휘둘러서 바위를 단박에 부숴버렸단다. 땅 위로 튀어나온 부분을 말이야. 

염 씨는 부서진 바위들을 모아 산 정상으로 날랐어. 그리고는 바위로 돌아와 아직도 땅에 묻혀있는 부분 위에 올라가 펄쩍펄쩍 뛰어댔지. 염 씨가 한 번 뛸 때마다 '쿵' '쿵' 거리는 소리와 함께 돌 뿌리에 금이 가서 조각나기 식했어. 염 씨는 땅속에서 조각난 바위들을 꺼내다가 또다시 산 정상에 모았어. 그리고는 거대한 구멍을 다시 흙으로 메꿨지. 마치 원래부터 그랬다는듯 넓찍하고 평탄한 길이 완성되었어. 수도 밑에 있는 산 정상에 바위가 유난히 많은 것이 이 시험 때문이라고 해.


임금님은 입을 다물 수가 없었어. 제아무리 힘이 세도 땅 속 깊이 박힌 바위를 혼자서 들 순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낸 시험이었건만, 염 씨는 비록 바위를 뽑아들진 못 했어도 바위를 치우는 것과 정상에 올려놓는 두 가지 과제를 모두 훌륭히 해결한 거야.


임금님은 소문이 사실이라고 인정할 수 없었어. 염 씨의 능력은 소문보다도 훨씬 대단했으니까. 곧바로 염 씨에게 높은 벼슬을 주고 일하도록 했어. 또한 쌀과 비단과 말을 주고 고향에도 다녀오도록 허락했어. 그 때가 염 씨가 마을을 떠난지 어언 3년이었다고 해.


염 씨는 비단으로 멋진 옷을 해 입고 마을을 향해 떠났어. 어머니에게 멋지게 금의환향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여주고싶었던거지.

그러나 오랜만에 돌아온 고향 마을에는 여기저기 비명소리가 들려오고 있었어. 산적들이 먹을 것을 빼앗으려고 마을을 공격하고 있었던 거야. 염 씨는 미친 사람처럼 집으로 뛰어갔어. 어머니가 항상 계시던 그 집으로. 그러나 집은 이미 무너진지 오래였고, 마당에는 어머니의 옷을 입은, 목이 없는 시체가 넘어져있었다고 해.

염 씨는 슬픔과 분노에 차서 산적들을 닥치는 대로 베기 시작했어. 염 씨가 한 번 휘두르면 대여섯명 씩 머리가 달아났지. 그는 악에 차올라서 목숨을 구걸하며 도망가는 도적들도 가차없이 처단했어.


염 씨는 흙으로 머리를 빚어 어머니를 묻어드렸어. 염 씨가 나타난 덕분에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은 목숨을 구했지만, 애꿎게도 정작 염 씨의 어머니만은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꼴이었지.

염씨는 어머니의 무덤에 절을 올리고는 마을이 잘 내려다보이는 산에 올라갔어. 그리고 어머니와 함께 살던, 지금은 다 무너져버린 집을 멍하니 쳐다봤지. 그리고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어머니를 부르짖었어. 계속, 계속해서. 몇날 며칠을 밤낮 없이 계속해서.


얼마 후 마을 사람 중 한 명이 산을 오르다 염 씨가 서있던 자리에 사람만 한 바위 하나가 서있는 것을 발견했어. 어딘가 모르게 염 씨를 닮은 바위였더래. 사람들은 염 씨가 울다가 한이 맺혀서 그대로 바위가 된 거라고 생각했어. 다시는 자신같은 일을 겪는 이가 없도록 영원히 마을을 지켜보기 위해 바위가 된 거라고.


이건 내 생각인데, 우리 마을에 비가 유난히 많이 내리거든? 그것도 염 씨가 어머니를 잃은 슬픔으로 많이 울어서 그런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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