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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 작문: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한 후 출근하는 상황
게시물ID : readers_3498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챠챠브
추천 : 2
조회수 : 331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20/08/26 01: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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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안은 한산했다. 매장 전체에 피아노를 곁들인 재즈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통유리로 이루어진 벽면 너머로는 거리의 야경이 시원하게 내다보였다. 몇몇 있는 손님들은 조용히 책이나 휴대폰, 혹은 노트북 따위를 보는 중이었다. 남자가 다가가자 카운터에서 피곤한 표정으로 뭔가를 만지작거리던 직원이 주문을 청했다.

 

남자는 평소 자신의 습관대로 차근차근 주문했다. 아메리카노 아이스, 큰 사이즈로, 마시고 갈게요. 적립은 없어요. 그리고 건네는 카드 한 장. 카페 직원은 몇 달에 한 번이나 받아볼까 싶은 간결하고 정확한 주문에 속으로 감동했지만, 그걸 굳이 손님에게 표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서비스업 종사자 치고 포커페이스에 영 재능이 없는 편이었다.

남자는 영수증과 카드, 진동벨, 그리고 자신을 향한 환한 미소를 건네받았다. 서비스 정신이 투철하네, 생긴지 얼마 안된 카페라 그렇구나. 남자는 그렇게 생각하며 계산대에서 물러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음료가 나왔다. 직원의 친절하고 상냥한 미소에 남자도 별수없이 슬쩍 웃으며 화답했다. 

 

남자는 적당한 창가에 앉아 노트를 펼쳤다. 크고 작은 글씨들로 범벅이 된 노트에는 남자가 직접 썼다 지운 가사들이 정신없이 그려져 있었다. 대부분 떠오르는대로 썼다가 나중에 가로줄로 난도질한 흔적이었다. 그 난장판을 보니 당장에라도 책을 덮어 아무데나 던지고싶어졌다. 어째서 가사란 것은 처음 쓸 때는 멋진데 나중에 보면 중2병이 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가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머리만 쥐어싸봐야 해결되는 건 없다는 것을 남자는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한숨을 쉬며 페이지를 더 넘겨 빈 종이를 펼쳤다.

 

남자가 일하는 방식이 그랬다. '아이디어를 짤 땐 아무것도 아끼지 마라' 라는, 어디서 감명깊게 주워들은 작업 철학을 철썩같이 지켰다. 남자는 작사나 작곡 뭘 하건 그렇게 되는대로 몰아친 후에 그 파편들을 추리고 정제해서 작품을 만들어왔다. 결과도 썩 나쁘진 않으니 남자로선 거기에 만족할 따름이었다.

 

아메리카노가 스트로우를 타고 올라와 남자의 입속으로 들어갔다. 시원한 음료가 몸 속으로 들어오니 시야 마저 맑아지는듯 했다. 남자는 그 기운으로 하얀 종이에 당장 떠오르는 단어들을 빠르게 써나갔다. 카페, 불빛, 의자, 모자, 얼음, 유리…

카페인 덕분이었을까, 남자는 단어들의 나열 속에서 유독 연결된 것처럼 보이는 조합을 찾아 다음 페이지에 적었다. 남자는 다시 건져낸 단어의 조합으로 이리저리 이야기의 살을 붙여 부를 만한 소절들을 짜냈다. 그리고는 실제로 작게 불러보기까지 했다. 머릿속에서 아까부터 자신이 직접 작곡한 멜로디가 매장의 음악을 덮고 끊임없이 재생되고 있었다. 커피가 다 떨어질 즈음에는 가사에 후렴구까지 꽤 멋지게 완성되었다. 남자는 다시 한번 처음부터 끝까지 가사를 읊조려봤다. 남자가 보기에 객관적으로 개성있고 귀에 박히면서 입에도 착 붙는 희대의 가사였다.

 

내일 다시 보면 또 어떨지 모르겠다만, 우선은 노트를 챙겨들고 자신의 녹음실로 향했다. 남자로서는 그게 곧 출근이었고, 따져보자면 퇴근하자마자 카페에서 야근하다가 바로 다시 출근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남자는 방금 세상에 드러난 자신의 자작곡을 흥얼거리며 가볍게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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