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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재조명되지 않은 동이족 최대의 승리-카라 키타이 건국
게시물ID : history_3003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DireK
추천 : 1
조회수 : 223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0/09/02 21:32:08

고려 왕조는 애초에 5대10국의 혼돈기를 피해서 건너온 짱개덜이 세우지 않았냐 저는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실제로 고구려와 고려 왕조는 연관성이 희박해도 너무 희박해서 적어도 고구려의 5대 가문중에서 고려왕조의 건국세력이 되었다고 할 최소한의 좃보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러한 역사들이 한민족내에서 전혀 재조명되어있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고려는 고구려와는 하등 무관한 출계집단이 성립시켰음을 시사합니다. 왜냐면 이러한 승리들은 정작 고구려국의 신민들의 후예들이 거둔 빛나는 승리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적어도 그들과 동질성을 느끼는 집단이라면 최소한의 그에 대한 표현이나 emphasize가 존재하여야 하지만 정작 그러한 것이 반도세력내에서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할 말은 아주 많습니다.

 

중국새끼덜의 사서의 내용의 논조와는 전혀 다르게 정작 고구려의 후예들은 고구려를 멸망시킨 돌궐계 중화집단에게 철저하게 복수를 하였습니다.

 

그 것은 중국새끼덜에게서는 요나라놈들이 금나라놈들과 싸우다가 깨진 것들이 서돌궐계들이 세웠던 셀주크투르크의 뒤를 치고 나타나서는 중국식 황학사관에 따라서 야율대석이 카라키타이를 세웠다 이 지랄이나 캐놨는데, 그 것은 대단히 미심적은 것이고 정작 정세적인 개괄만 훝어보더라도 야율대석은 카라키타이라는 중국식 황제국가를 세울려고 한 것이 아니라 되려 한니발따위는 씹어먹는 희대의 원정을 단행하지 않았나 그렇게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양식을 황학이라고 하는 황제의 학문에 맞춰서 기술해야 하는 짱개의 미개한 기술체계 때문에 원정을 간 것이 세몰이 할 때의 세로 간주되어서 국가처럼 기술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한니발이 이탈리아반도에 쳐 들어가서 나름대로 휘젖고 다녔고, 확보했던 거점들도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이 것을 전쟁으로 기술했지 한니발이 나라를 세웠다고 하면 어불성설아닙니까?

그러나 중국식의 황학사관은 그런 식으로 기술을 하면 안 되었습니다. 모든 세력에는 이름을 붙여서라도 국가화를 하였고, 그렇게 국가화된 것에는 황제가 응당 존재하여야 한다 그게 황학입니다. 그러니 서요가 나라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정황적인 부분은 전혀 다른 근거를 제시합니다. 요나라인들은 이미 이전에 야율요골이라는 놈은 동돌궐 새끼덜의 주도인 카이펑을 털어서 완전히 박살내어버렸습니다. 

 

거란(契丹)은 고막해(庫莫奚)와 함께 동호계(東胡系)의 선비족(鮮卑族) 일파인 우문부(宇文部)의 후예로서 연원을 따지면 위진남북조 시기부터 존속했던 민족이다. 

 

중국새끼덜은 거란을 동호계의 선비족 우문부의 후예라고 개소리를 했지만 이러한 부분이 가장 악질적인 역사왜곡입니다. 그 이유는 조금씩 설명해하겠습니다.

정작 거란은 동이계라고 보여지며 거란소자와 대자는 한글창제에 참고되었다는 말도 있습니다.

발해의 후속국이 되려 거란으로 보는 것이 맞으며, 정작 거란이 진짜 고구려의 후예일 가능성이 있지만 짱개는 짱개답게 역사를 곡해하였던 것입니다.

 

 

돌궐은 크게 나뉘면 동돌궐과 서돌궐이 있는데, 동돌궐은 실상 중국으로 난입해서는 본인이 비정하는 chinese turk가 되었습니다. 그러한 형태의 완성된 국가가 바로 수나라와 당나라입니다.

서돌궐세력은 이합집산을 반복하다가 12세기 당시에는 셀주크 투르크로 화해서는 바로 지금의 터키지역에서 동로마제국을 존나게 공격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676년에 돌궐계 군사집단들이 고구려를 멸망시켰을 뿐 아니라 평양성전투라는 공성전을 통해서 평양성을 까고 들어간 다음에 완전히 잿더미로 만들어버렸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평양성은 불에 탔다는 뜻의 한자를 분명히 써놨습니다. 여기서 불에 탔다는 것은 단순한 화재가 아니라 영어로는 raze(지우다, 없애다, 파괴하다) 이러한 뜻입니다. 당연히 여기에는 현대적 개념으로는 대량학살과 노예화라는 개념도 들어가 있습니다.

 

서양사에는 가장 대표적인 raze는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가 카르타고를 완전히 박살내고는 모든 시민들을 성인남자는 모조리 살상한 뒤에남은 것들은 노예로 끌고가고는 터까지 박살냈다는 그러한 것이 바로 raze입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 동이족들이 그러한 파괴를 단지 항구적인 패배로 좌시했을까요? 전혀 그러지 않았습니다. 동이라는 것은 애초에 짱개덜이 제시한 개념이지만 정작 실제로는 그 것은 동시베리아인들 전부를 뜻하는 것이며, 특히 동시베리아에서 사할린, 훗카이도, 도호쿠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민들이 매우 고대에는 훗카이도에서 멜팅 스팟을 가지고 있었고, 그 것을 조몬 문명이라고 하며 실제로 훗카이도의 오늘날의 민족구성도 매우 복잡한 양상을 보입니다.

 

그러던 것이 아마도 빙하가 더 녹으면서 더 이상 훗카이도에서 시베리아제민족들이 모이기가 어려워짐에 따라서 바로 연해주와 압록강이 연결되는 지역인 고구려일대에서 새로운 교역과 교잡이 일어나는 지역이 형성된 것이 고구려가 아닌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왜냐면 이 시기에 이르러서는 이미 남쪽에서 정주국가들이 등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백두대간을 통해서 신라의 쌀과 소금의 교역이 용이한 곳에 입지가 자리잡는 것도 당연해졌기 때문입니다.

 

예로부터 퉁구스와 한민족은 원산만일대를 통해서 교역을 하였고, 그 것에 관한 기록은 고려조에도 기록되었습니다.

 

따라서 동예와 옥저지역을 예속시켜서 원산만일대로부터 압록강일대를 통제함으로써 고구려는 동시베리아제민과 신라사이에 중계무역을 하면서 그들의 교역거점을 중심으로 고구려의 지도자들은 거대한 성 따위를 축성할 수 있는 세력으로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아이누(읍루), 옥저(오로치), 숙신(축치인, 축치캄차카인) 이런 제민족까지 와서 조공(조공이라기보다는 교역)을 했다니까 고구려성에는 특히 소금을 구하기 위해서 별의 별 시베리아놈들이 다 왔지 않았나 그렇게 추측됩니다.

오늘날에는 화학적 소금생산법으로 러시아의 공장에서 만든 소금이 시베리아철도로 공급이 되지만 고구려때만 하더라도 시베리아에서는 소금이 나지 않으므로 시베리아제민들에게는 소금을 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고, 이러한 부분은 인류사적으로도 증명되는 것입니다.

 

SBS 다큐멘타리 몽골리안 루트에 나오는 축치족도 순록민족인데, 이러한 종류의 다큐에서도 나왔지만 순록민족은 주기적으로 바닷가에 사는 이누이트들과 접촉합니다. 왜냐면 그들로부터 물고기를 존나게 소금에 절여서 맹근 어염을 얻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것도 지금은 러시아산 공장제 소금을 구하면 되는 시대가 되었지만 그 덕택에 이누이트들도 이제는 돈 되는 사냥만 하려하지 순록민족을 고려한 경제활동을 따로 하지는 않으려고 한다고 하지만 고대에는 물론 더할 것 없이 순록민족과 이누이트들은 서로 돕지 않으면 살 수가 없었습니다.

 

이러한 형태로부터 고구려가 성립했다고 보는 것입니다.

 

 

https://namu.wiki/w/%EC%88%9C%EB%A1%9D

북부유럽과 시베리아에서 유목민들이 가축으로 기르는 순록은 필수요소인 염분을 섭취할 길이 없으므로 사람에게 의존한다. 기르는 사람이 소금을 먹여주거나, 꽁꽁 냉동된 연어회를 잘라 먹이거나, 심지어 사람이 오줌 누는 데 와서 오줌을 받아먹기도 한다. 오줌에 포함되어 있는 염분조차도 순록에겐 아까운 것이다. 물론 사람 손에 길러진 탓도 있지만 사람을 꽤 잘 따른다고. 

 

축치족계의 순록민족이 고구려까지 와서 소금을 구할 이유는 충분했다는 것이에요.

 

다만 SBS의 다큐멘타리는 아직도 몽골놈들한테 지배를 당해서 발생한 사대적인 의식을 못 버리니까 축치족도 몽골로이드다 이 지랄이지만 몽골로이드와 한국인을 포한한 동아시아 고대민족은 전혀 다른 민족입니다.

 

되려 몽골은 한국인과 고구려인들을 침략했던 돌궐계이고, 동아시아 고대민족과는 고대에는 항쟁하던 사이입니다. 이 지점을 명백하게 해야지 짱개의 역사왜곡에 넘어가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란 또한 바로 그 동아시아 고대민족의 범주에 속하던 사람들이라고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란의 정복은 명백하게 그 모든 투르크새끼덜을 박살을 내겠다는 무브먼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후일의 중화계(소중화 지랄병 하던 놈들 포함) 역사가들에 의해서 그들의 전략적 의도는 엉터리로 곡해되었습니다.

따라서 거란은 동돌궐계 새끼덜의 stronghold였던 카이펑과 정저우일대를 야율요골이 가서는 완전히 박살내었고, 서돌궐새끼덜은 야율대석이 원정대를 조직해서는 끌고 가서는 셀주크 투르크를 멸망시켰습니다.

특히 야율대석의 원정은 수만킬로는 넘어선 지역을 가서는 전쟁을 거는 원정을 단행한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전략적 의도는 명백한 것으로 받아들여져야 합니다.

 

한니발이라는 놈도 갈리아의 야만족 지역을 통과해서는 로마제국의 심장으로 진격하였듯이 야율대석 또한 그랬는데, 야율대석은 한니발과는 넘사벽의 거리를 건너가서는 서돌궐계 집단을 공격했던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동돌궐계은 야율요골이 서돌궐계는 야율대석이 공격해서 거진 멸망시켰습니다. 이러한 군사행동이 전략적 목표가 없는 한갖 오랑캐의 짓이겠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특히 야율요골이 카이펑을 박살낸 짓은 아무리 봐도 중국놈들이 평양성과 국내성을 유린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즉, 시간차이는 있지만 평양성과 국내성이 당나라새끼덜에게 박살난 것과 카이펑과 셀주크 투르크가 털렸던 것은 명백하게 주고 받는 관계입니다.

 

 

카이펑에서 또한 켈트족이 로마에 난입했을 때와 마찬가지 수준의 대략학살과 거주구의 파괴가 일어났던 것으로 보이며, 다만 중국사서에는 그렇게 박살낸 자리에 고대로 거란족들이 눌러살기를 야율요골은 희망했지만 부하들이 고향으로 재차 돌아가자고 조르는 바람에 돌아가서는 오늘날의 북경지역에 도시를 세웠다고 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켈트족들이 기원전 390년경에 로마를 털었을 때의 일과 비교를 하자면 켈트족들도 당시에는 로마에서 조금 머물려다가 곧 역병이 돌아서는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하는데, 물론 그 뒤로는 엄청난 파괴와 살육을 하고나서이고, 비슷한 일이 946년의 카이펑에서도 벌어져서는 아마도 이 시기에 정통동투르크들은 거진 살상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왜냐면 이러한 일이 있은 뒤에 카이펑의 잔존세력들은 다시 폐허로부터 세력을 규합해서는 재기하게 되었는데, 그 것이 바로 송나라입니다.

그런데, 송대에 이르면 그 이전까지의 투르크새끼덜이 보여주던 군벌들에 의한 난립경향이 완전히 사라지고, 황제중심의 전제국가를 건설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것은 아마도 946년에 카이펑이 털릴 때에 투르크계 워로드들로써 절도사와 같은 독자적 군벌로 행동하는 행태를 가졌던 지배세력들을 싸그리 요나라인들이 대량 학살을 했던 결과이지 않냐고 보여진다는 것입니다.

 

 

요컨데, 송나라의 전제주의는 두 가지 속성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는 카이펑의 재건세력들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지배세력들이 탄생하면서 재건기에 형성된 동질감을 바탕으로 새로운 지배계급이 등장하였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당대까지 절도사들이 보여주는 할거경향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는 위에서 언급했듯이, 고환이나 이주영같은 놈으로부터 근거하던 돌궐계 군사집단의 워로드들이나 잠재적 워로드들 군사계급전체가 요나라에 의해서 죄다 학살당해서 썰려버렸습니다.

그들은 이미 그 전에도 주전충과 이존욱의 세력으로 갈려서 이미 지덜끼리 팀킬을 하고 있었는데, 요나라의 강력한 뒤치기를 맞고는 인구집단 자체가 소멸하지 않았냐고 보여진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중국인들은 송대에는 당대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제국을 세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야율요골의 카이펑대학살 이후에 중국인들은 당시까지 패러다임이던 선비족계의 군사집단 리더들을 따라서 할거하던 경향으로부터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전제화된 중화제국의 알파라고 할 수 있는 송제국을 세우는 정신적인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따라서 송제국에 의해서 야율씨덜의 승리는 정작 영토획득은 연운16주일대까지로 한정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궐계를 자처하던 정치집단에는 야율씨덜이 빚내는 승리를 거둔 것입니다. 송대이후에 중국인들은 더 이상 탁발선비 이 지랄을 하지 않은 것만 보더라도 그러한 행태에 마무리점을 찍은 것이 야율씨덜이었습니다.

 

 

 

그리고, 야율대석은 트란스옥시아나에서 셀주크 투르크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가했는데, 사실 그러한 지정학적인 이해는 이미 고구려 때에 타전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먼저 이 지점에 대해서 고구려-돌궐 대 당나라의 국제전쟁이 있었다 이 지랄이나 하는 한국의 사학자들이 있는데, RISS 검색해보니까 이 것들 아직도 복붙이나 하고 있네요. ㅋㅋㅋㅋㅋㅋ

 

그들은 겨우 한다는 짓이 끽해야 짱개가 적은 사료들을 바탕으로 그 말조차도 가감없이 믿어서는 그따구나 하는 수준입니다.

 

뭐 짱개가 요즘에만 역사왜곡을 했습니까? 그 때에도 했습니다. 그걸 그냥 곧이 곧대로 믿으면서 난독이 심하니까 총론을 볼 줄 모르고, 서지학의 번역에만 급급한 자들의 수준입니다.

 

애초에 가장 중요한 총론을 생각해봅시다. 고구려와 신라는 스키타이와 조금의 교역이 있어서 그들의 문물이 있긴 하였는데, 꼴랑 그 것을 보고는 돌궐새끼덜은 이 새끼덜은 스키타이색이 강하다는 뜻으로 스키타이의 나라를 의미하는 파르티아(=발흐)라는 뜻의 이름은 발해로 고구려를 불렀습니다.

 

그만큼 돌궐과 고구려는 양립 못 할 관계였다는 것입니다. 그런 고구려가 서돌궐과 손을 잡고는 당을 견제한다굽쇼?

 

그리고, 중앙아시아 통사의 일말도 정보를 접해보지도 않은 것 같은데, 당시에 트란스옥시아나에서는 키르기스인들과 서돌궐이 항쟁중이었습니다.

바로 오늘날의 키르키스스탄인들이 맞습니다. 그렇자면 상식적으로 고구려가 누구랑 손을 잡았겠습니까? 다만 짱궤들은 미국놈들이 외국의 일에 매우 둔감하고 무식해서는 아메리칸 익셉셔널리즘에 빠져있듯이, 중국놈들도 거진 그런 수준인 종자들입니다.

 

 

중화주의나 american exceptionalism 이나 거진 도낀개낀인 멍충한 놈들이라고. 갸들은 굳이 아전인수식 해석이 아니더라도 일반적으로 엉터리일 경우가 존나게 많다고.

 

아마도 고구려가 제휴하려고 했던 것은 돌궐제국의 일반적인 적성세력으로 간주되던 키르기스스탄인들이었겠지만 짱궤는 그 것도 구분할 줄 몰라서 혹은 짱개만능사상에 의해서 키르기스인들도 서돌궐에 복속된 세력으로 간주해서는 서돌궐과 고구려가 제휴하려고 했다 요따구로나 적었을 가능성이 100만 프로인데, 그 것을 그냥 그대로 사료비판하나 하지 않고 그대로 복붙하는 것이 기성세대 한국의 사학자들 수준입니다.

 

뭐 말마따나라면 고구려도 당나라에서 복속되었던 것은 맞으니까 키르기스인들도 뭐 특정시기에는 서돌궐 밑에 들어가는 것으로 되어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럼 씨발 아프가니스탄도 미국한테 정복당한 시기가 있었단 거네? 

아니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제대로 지배한 적이 단 1개월이라도 있냐? 그냥 개소리를 하는거지.

 

키르기스스탄은 오늘날에는 시베리아와 트란스옥시아나 지역을 연결하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교역거점이던 카자흐스탄의 알마티의 남쪽지역에 자리잡고 있다.

 

키르기스스탄.png

 

 

알마티라는 곳은 오늘날 시베리아철도로 연해주를 통해서 우랄스크로 가는 길의 중간에 좌회전을 하면 알마티로 갈 수 있다. 그러한 경로를 통해서 위의 지도의 이커쑤 지구의 북동쪽에 있는 타클라마칸 사막을 우회할 수 있는 것이다.

타클라마칸 사막을 우회하지 않고, 이리지구로 들어가서는 타클라마칸사막 남로나 북로를 타게 되면 그 뒤로는 바로 중국이 장악하고 있는 영토들이 나오기 때문에 고구려의 사신이 그쪽으로 갔을 가능성은 전혀 없는 것이다.

따라서 고구려의 사신이 서돌궐과 통하려고하면 반드시 시베리안 루트를 통해서 알마티로 갔을 것이라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알마티는 카자흐스탄인들의 것이지만 당나라 시대에는 그 곳은 키르기스인들의 영역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상식적으로 서돌궐계 적대관계이던 키스기스인들과 고구려가 연합해서는 돌궐제국에 대항했던 것이 맞지. 돌궐계와 고구려가 연합한다. 그런 개소리는 짱개역사책을 그냥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면 발생하는 사고(accident)라는 것이다.

 

이 지점이 왜 중요하냐면 키르기스인들과 고구려는 분명이 연합을 모색하고 있었다. 그러나 고구려가 멸망하면서 흐지부지 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정작 1124년에 요나라의 군대가 이쪽에 등장했다는 거에요.

 

그 뿐 아니라 그 군대는 곧바로 투르크놈들인 셀주크 투르크놈들을 닥치고 맹렬하게 공격해서는 당시만 해도 동로마군을 만지케르트라는 곳에서 박살을 내고는 욱일승천하던 것들의 통수를 오지게 깠다고. 그런데, 그들은 아마도 국내성과 평양성이 유린되었던 것에 빡쳐있던 동시베리아고민족계가 아니었냐고 비정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한민족의 사촌격 되는 놈들이 오늘날 오스만 투르크의 후신인 터키의 사촌쯤 되는 셀주크 투르크를 오지게 공격해서 박살을 냈다는 것이다.

 

야율대석으로부터 기인하는 시베리아계들의 군사집단은 1124년부터 1211년까지 존재하였다. 그리고 셀주크 투르크는 그 중간의 1194년에 멸망당하였다.

서요.png

 

이 것만 보더라도 서요라는 것은 국가라기 보다는 셀주크 투르크를 멸망시키기 위한 출진한 군사집단에 가까워보인다는 것이다.

 

그 이후에 트란스옥시아나 지역에서는 돌궐계가 아닌 현지세력들이 그들 스스로의 나라를 세울 수가 있었는데, 그 것이 바로 호라즘 왕조이다. 그리고, 서요의 공주가 호라즘 왕조로 시집갔다는 것으로 봐서 서요계 집단들은 호라즘 왕조의 지배성분으로 편입되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그리고, 징기스칸이라는 놈은 동돌궐계의 귀족새끼로써 본디는 지 애비가 뒤질 때에 기반을 완전히 잃어버린 놈이었지만 같은 동돌궐계의 귀족집단이던 자들로부터 도움을 받아서 기반을 다시 회복하고는 당시에 몽골일대에 흩어져 있던 동돌궐계 세력을 규합했던 놈이다.

 

그간 몽골놈들을 후빨하던 관점은 몽골은 12세기까지만 해도 별 볼일 없던 놈이지만 별안간 전투민족으로 나타나서는 전세계를 쳐 먹었던 기적의 민족이다 그 지랄이나 한국병신덜은 믿어왔지만 실상은 을지문덕이나 양만춘 때에 고구려를 침공하였던 당나라계의 chinese Turk 와 같은 투르크놈들이 재결집을 한 것이다.

 

당나라라고 하는 것은 몽골이 원나라, 금장한국, 차가타이한국, 일한국, 크리미아 따위로 나눠있듯이 돌궐놈들의 중국세력의 한 형태일 뿐이다.

 

따라서 돌궐놈들을 재규합한 징기스칸에게 가장 먼저 조져야 될 놈은 돌궐을 박살내었던 시베리아계민족놈들과 그리고, 키르기스스탄새끼덜이었다.

따라서 징기스칸이라는 놈은 시베리아놈들의 나라인 금나라와 키르기스 새끼덜의 나라인 호라즘 제국을 가장 먼저 박살을 냈던 것이다.

 

 

여기서 깨달아야 할 지점은 징기스칸에게 한민족을 포함한 시베리아놈들은 철천지원수였고, 그 것은 한민족에게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러므로 한민족이 몽골로이드라는 개소리는 중세에는 성립할 수도 없었던 것이지만 후대에 친원파 훨훡새끼덜(cf. 바나나새끼덜)을 통해서 믿어진 관점이란 것이다.

 

그리고, 근세에 주치계의 몽골놈들은 이슬람화하면서 서돌궐계로써 이슬람화하였던 오스만 투르크와 매우 비슷해져버렸다.

 

즉, 중앙아시아에서 투르크와 몽골은 실상 거의 같은 뜻에 다름아니다. 더 심지어는 오스만 투르크제국의 주력은 중국식 경기병인 투르코폴 기병대의 터키화된 군사양식인 시파히 기병대라고 하였어요.

 

짱궤들이 말하는 위진남북조 시대의 조조가 이끄는 경기병이라는 것이 이를테면 투르코폴 기병대의 원조쯤 된다. 그게 짱궤들이 위진남북조 요지랄을 한다는 것이에요. 하여간 그 자체가 터키식 군사문화의 일부라는 것이고,

 

 

반면에 고구려식 중기병은 스키타이계의 군사문화를 받아들인 것으로 짱궤하고는 다른 범주의 군사문화가 이미 고구려에 존재하였고, 애초에 그랬으니까 고구려가 수당을 상대로 대등하게 싸울 수 있었다고까지 봐야 한다고.

애초에 고구려가 미개인이고, 수당이 문명화된 집단이었으면 고구려가 당을 상대로 개길 수나 있었겠냐는 것이지. 보나마나 아메리칸 인디오들이 미국양키들한테 털리듯이 프론티어의 땅이나 쳐 내놓다가 총 맞고 뒤지는 오랑캐취급이나 받았겠지.

 

그러나 정작 고구려는 시베리안 트레일을 통해서 트란스옥시아나를 통해서 중동지역으로부터 스키타이계 문물들을 이미 접하고 있었던 별개의 문명국이었으니까 수당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었다. 이렇게까지 보여진다는 것이지.

 

 

그럼 야율대석이는 왜 트란스 옥시아나로 가서는 셀주크 투르크를 공격했을까? 트란스옥시아나가 돌궐새끼덜의 침략으로부터 평정이 되어야 고구려와 한국인을 포함한 동시베리아제민들이 유럽이나 중동으로부터 문물을 받아들일 수가 있는데, 그게 안 되니까 정작 짱궤계열의 돌궐새끼덜한테 쳐 막혀서는 유라시아대륙 동안의 미개한 지역으로 남아야 하냐는 상황을 타개하려는 전략적 시도로 봐야 한다는 것이지.

 

그리고 이러한 총론을 쓰면서 또한 생각하는 지점은 신라대에 승려들이 당나라의 배려하에서 서역으로부터 불교문헌을 받아들였다는 류의 개소리도 모두 짱궤의 곡해일 가능성이 높다.

 

대승비불설대로라면 대승은 부다의 말씀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돌궐계 짱궤들의 개구라, 엉터리이고, 그 것을 겨우 문물로 받아들인다지만 불교경전에 뭐 기술(tech)이 뭐가 있냐는 거다.

요컨데, 중세시대의 짱궤덜은 그들의 문명도 보잘 것 없으니까 겨우 팔아먹은 것이 종교였던 것이다. 그 것이 바로 대승과 유교였던 것이지만 정작 중세까지만 하더라도 동이들은 중앙아시아을 통해서 유럽과 중동으로부터 진짜 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가 무엇인지까지 알고 있는 수준이었고, 그러한 지점에서 의상이나 혜초 따위를 후빨하는 관점들 일체가 당시의 시대상으로부터 기인하는 진짜 역사가 아니라 중세 이후에 성립한 사대주의 세력 새끼덜이 만들어낸 모화사상의 다른 버전이라고 봐야 한다. 

 

그 것이 본인이 이 모든 역사가 어떤 식으로 굴절되면서 엉터리가 되어서 오늘날에 이르렀는가에 대한 난해한 실타라를 푸는 본인의 관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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