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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단편) 대식가의 복숭아
게시물ID : mystery_931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xlros0000
추천 : 6
조회수 : 313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0/09/08 15:2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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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복숭아 과수원의 흙은 특별하다. 이 흙은 사람들이 잊어버린 기억들이 퇴적되서 만들어졌다. 흙 알갱이 하나마다 사람들의 망각이 깃들어 있다. 이 흙에서 자란 복숭아 열매는 타인의 기억이다. 이 과수원의 복숭아를 따 먹은 사람은 타인이 잊어버린 기억을 대신 기억하게 된다. 

예전에 고3수험생이 이 과수원의 복숭아를 먹고 성적이 6등급에서 1등급으로 껑충 뛴적이 있었다. 이 학생이 먹은 복숭아가 정년 퇴임한 서울대 교수의 잃어버린 기억이었던 것이다. 모두 이렇게 좋은 경우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는 잃어버린 살인자의 기억을 먹어서 끔찍한 악몽에 시달리기도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관음증 환자다. 복불복이지만 타인의 잃어버린 기억을 훔쳐보길 원한다. 사람들은 이 복숭아를 하나씩 집어 먹을 때마다 어떤 기억일지 호기심에 차있었다. 어떤 사람은 치매 노인이 숨겨둔 돈의 기억을 먹어서 벼락 부자가 됐다는 소문도 돌았다. 사람들은 이 기억의 복숭아를 먹어서 어떻게 내 인생을 역전시킬 수 있을지 기대한다.     

이 마을의 대식가는 늘 허기져 있었다. 허기진 배만큼 그가 기억하는 건 많이 없다. 그가 기억력이 나쁜 게 아니다. 애초에 기억할 게 없는 환경에서 길러졌기 때문이다. 그는 갓난아기 때 버림받아 쇠창살에 갇혀진채 길러졌다. 그의 머리 속에 있는 기억은 자기 몸뚱아리와 쇠창살 그리고 밥 밖에 없다. 그는 너무 많이 먹어서 쇠창살에서 탈출하면 온 마을의 식량을 다 먹어치우고는 했다. 한 번은 쇠창살의 경첩이 헐거워진 틈을 타서 탈출한 적이 있었는 데 온 마을이 쑥대밭이 된 적이 있었다. 

이제 20살이 된 그는 덩치가 산처럼 커졌다. 더 이상 이 쇠창살에 가둘 수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더 큰 쇠창살을 만들어 그를 옮기기로 했다. 덩치 만큼 힘도 장사여서 그에게 마취총을 쏘아서 옮길 계획이었다. 들것에 눕혀 장정 6명이 들고 트럭에 옮기려고 할 때였다. 대식가가 갑자기 깨어나 포효하기 시작하며 마구 휘저었다. 아무도 그를 말릴 수 없었다. 그는 그곳을 빠져나와 달리기 시작했다. 그는 덩치는 컸지만 날짐승처럼 재빨랐다. 아무도 그를 잡을 수 없었다.

이미 날은 어두워져 있었다.대식가는 기억의 과수원에 숨었다.배가 고파진 대식가는 과수원에 있는 복숭아를 따먹기 시작했다. 하나, 둘 먹던 대식가는 결국 이 과수원에 있는 수 천개의 복숭아를 다 먹어치웠다. 불과 4시간 만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그 다음 날에 사람들은 대식가를 발견했다. 하지만 그들이 알고 있던 대식가가 아니었다. 몸짓과 표정 그리고 분위기에서 달라져 있었다. 그는 기억의 복숭아를 다 먹어 치우면서 그의 빈곤한 기억이 타인의 기억으로 충만하게 가득찬 것이다. 그는 20살에 200살 노인과 같은 경험과 기억의 양으로 몸을 채웠다. 기억의 과수원 주인은 아연실색하며 올해는 망했다고 통곡했다. 하지만 대식가가 말했다.

"1년 안에 제가 먹은 복숭아 금액을 10배로 돌려드리겠습니다." 

그는 마을 사람들에게 얼마의 돈을 빌려 그 길로 떠났다. 6개월이 채 되지 않아 여러 매스컴에서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이 세상에 없는 보안 솔루션을 개발하여 특허를 냈고 수십억의 돈을 벌었다는 소식이었다. 그리고 몇년 전에 있었던 여고생 실종 사건 때 찾지 못했던 시신의 위치를 제보하여 찾기도 했다. 그리고 7명 부녀자 연쇄 살인범의 인적사항을 제보하여 검거하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그리고 주식과 투자의 귀재로 불리며 손을 대는 족족 돈을 벌기 시작했다. 그 뿐만 아니라 신라시대의 새로운 유적지를 제보하여 유물을 파헤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했다. 그는 수천년 전부터 지금까지 스펙트럼이 넓은 기억을 먹은 것이다.그의 엄청난 양의 다양한 기억과 경험이 시너지를 내면서 그를 천재로 만들었다. 그는 1년도 되지 않아 자기가 먹은 복숭아를 10배 금액으로 되돌려 갚았다.

하지만, 그는 행복하지 않았다. 타인의 기억으로만 채워진 텅빈 자아였기 때문이다. 뒤죽박죽 혼재된 타인의 기억으로만 산다는 건 괴로움이었다. 그는 자신의 기억을 더듬기 위해 고향 마을로 내려갔다. 자신이 살던 쇠창살이 있던 곳이었다. 가로세로 3미터의 쇠창살이 우두커니 자신을 반겼다. 그가 할 수 있는 기억이라고 이 쇠창살 뿐이었다. 파리한 쇠창살만큼 자신의 기억이 빈곤하다는 걸 깨달았다.

타인의 기억은 늘 대식가에게 말을 걸었다.

"이 기억을 살려서 살아봐,"
"잊혀진 이 기억을 너가 다시 살려줘."

대식가는 타인의 기억이 자신에게 말을 걸어올 때마다 애써 외면했다. 대식가 안에는 수만개의 타인의 자아가 또아리를 틀고 말을 걸었다. 하지만 대식가는 자기 안에 또다른 쇠창살을 만들었다. 그 쇠창살 안에서 타인의 기억이 걸어오는 말들을 무시하며 오지 못하게 했다. 들어도 못 들은 척, 봐도 못 본척 했다. 그는 자기 안에 만든 쇠창살 속에서 자신만의 기억을 경작하기로 마음 먹었다.

대식가는 사랑스러운 여자를 만나 결혼을 했다. 아이도 낳았다. 아이는 무럭무럭 건강하게 자랐다. 대식가는 온전히 자신만의 기억을 채우기 위한 토양을 마련했다. 그의 가정은 마을에서 가장 다복하고 행복했다. 시간이 흘러 이제 그는 수많은 타인의 기억을 자기 안에서 온전히 밀어냈다. 그의 안에 더이상 타인의 기억은 잊혀지고 없었다.

이듬해, 기억의 과수원은 풍년이었다. 지난 해 보다 2배 이상 많은 복숭아가 싱싱하게 열렸다. 마을 사람들은 20년 전에 대식가가 먹어치운 기억들이 모두 잊혀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대식가가 잊은 타인의 기억은 다시 흙으로 돌아가 싱싱한 복숭아가 열리게 했다. 

대식가는 풍년인 기억의 복숭아를 보며 말했다.

"풍년이네요. 이제 제 삶도 풍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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