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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십년을 돌이킬 수가 없구나
게시물ID : lovestory_9069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3
조회수 : 41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0/10/09 10:56:55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1.jpg

 

이근배, 유랑 악사




그 날 마장천의 검은 물을 네가 흐르게 하고

떠다니는 노래를 불러다가 비가 되게 하고

줄 끊긴 기타는 남아서 지금도 울고 있다

네가 풍기던 생활의 비린내를 뒤집어쓰고

나는 걷없이 나이가 들어

십년을 돌이킬 수가 없구나

 

 

 

 

 


2.jpg

 

유안진, 공간 속에서




너무 많이 배워서

아는 것이 없어져버린 무식의 이 시대를

속도를 섬기며 단맛을 붙좇으며

시간으로 살아와서 탈진한 도시인도


산속에서는 일기를 쓰게 되고

바다에서는 편지를 쓰게 되는

제 자신이 될 수밖에 없지

저절로 가볍게 살고 싶어지지


‘찬 구멍은 뱀구멍 더운 구멍은 쥐구멍’

이것밖엔 몰라도 잘만 늙어온

시골 노인이 되고 말지 공간 속에서는

 

 

 

 

 

 

3.jpg

 

김승희, 냄비는 둥둥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아르헨티나 아, 아르헨티나가 냄비 두드리던 소리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여름 밤거리를 뒤흔들던 소리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냄비, 프라이팬, 국자, 냄비뚜껑까지

들고 나와 두드려대던 소리

사람들이 한목소리로 내지른 비명소리

아르헨티나 아아

빚과 실업자, 극빈자, 점쟁이와 정신과 의사

사망자와 부상자들, 그 한숨소리

나도 프라이팬을 들고 뛰어가 섞인 듯

입을 꽈 다문 채 몇 시간씩 은행과 직업소개소 앞에 늘어선 모습들

이런 광경 고요함


비 내리는 텔레비전 화면을 쳐다보며

묵묵히 밥을 먹는다

다리 하나 부러진 개다리밥상

아무도 그에 대해 말을 하지 않는다

냄비 밑바닥만 우두커니 들여다본다

냄비 안에 시래깃국, 푸르른 논과 논두렁들

쌀이 무엇인지 아니? 신의 이빨이란다

인간이 배가 고파 헤맬 때 신이 이빨을 뽑아

빈 논에 던져 자란 것이란다

경련하는 밥상, 엄마의 말이 그 경련을 지그시 누르고 있는

조용한 밥상의 시간

비 내리는 저녁 장마

냄비는 둥둥

 

 

 

 

 

 

4.jpg

 

박용철, 너의 그림자




하이얀 모래

가이 없고


적은 구름 위에

노래는 숨었다


아지랑이 같이 아른대는

너의 그림자


그리움에

홀로 여위어간다

 

 

 

 

 

 

5.jpg

 

오탁번, 하관(下棺)




이승은 한 줌 재로 변하여

이름 모를 풀꽃들의 뿌리로 돌아가고

향불 사르는 연기도 멀리 멀리

못 떠나고

관을 덮은 명정의 흰 글자 사이로

숨는다

무심한 산새들도 수직으로 날아올라

무너미재는 물소리가 요란한데

어머니 어머니

하관의 밧줄이 흙에 닿는 순간에도

어머니의 모음을 부르는 나는

놋요강이다 밤중에 어머니가 대어주던

지린내나는 요강이다 툇마루 끝에 묻힌

오줌통이다 오줌통에 비치던

잿빛 처마 끝이다

이엉에서 떨어지던 눈도 못 뜬

벌레다

밭두럭에서 물똥을 누면

어머니가 뒤 닦아주던 콩잎이다 눈물이다

저승은 한줌 재로 변하여

이름 모를 뿌리들의 풀꽃으로 돌아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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