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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문 : 서서히 멀어지는 삶 (언니의 폐경, 김훈,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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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shinejade
추천 : 1
조회수 : 484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20/11/20 15:5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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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히 멀어지는 삶

 

고대 그리스 히포크라테스학파는 심신불안정 즉, 짜증과 불안을 히스테리라고 불렀다.

히스테리 부린다 라는 말의 히스테리는 고대 그리스 때부터 있던 말인 셈이다. 하지만 이 히스테리의 어원을 더 자세히 살펴보면 흥미롭다. 히스테리는 자궁을 뜻하는 히스테라라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파생된 말이며. 왜 자궁과 심신불안정이 연관이 지어졌나면, 월경을 하는 여성에게서 심신불안정의 증후를 확립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언니의 폐경에서는 심신불안정의 증후보다는, 생명에 대한 집요한 시각이 느껴졌다.

 

본작은 생명과 죽음에 대한 교차가 수도 없이 묘사된다.

월경과 폐경은 물론, 합류하는 강과 바다의 물결들, 태양과 달, 번져 나오듯 나타나는 비행기와 스미듯이 사라지는 비행기 등. 수많은 것들로 생명과 죽음에 대해서 묘사되고 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언니와 가 있다.

언니는 남편의 죽음으로 폐경(죽음)이 시작되었고, ‘는 곧이어 그 모습이 자신의 미래임을 짐작한다. 그럼으로써 이야기는 두 가지의 방향으로 흘러간다. 폐경이라는 생명의 근원을 떠나보내는 언니와, 그것을 대비하는 의 이야기다.

 

생명을 창조하고 잉태하는 자궁과 질은, 생명에 대한 오래된 은유다.

즉 언니의 폐경은 삶(생명)에서 더 멀어지는 과정이다. 그 발단은 남편의 죽음이다. 좌석의 차이로 누구는 죽고 누구는 살아남는 개연성 없는 현실 속에서, 삶의 멀어짐은 그저 자연의 흐름일 뿐이다. 삶에서 멀어진 언니는 그 반대편, 죽음에 더 가까워진다.

그럼으로써 달빛(죽음)을 두려워 하고 해가 사위는 때(황혼)에 물 만난 듯 수다스러워지는 것이다. 언니는 황혼녘에 서 있는 사람이다.

 

그 뒤를 따르는 이가 있다. ‘.

는 이혼을 겪으며 새로운 관계를 맺고 있다. 그 관계에 대한 도덕법칙의 잣대는 모호하다. 왜냐하면 그녀는 밑물과 썰물이 흐르고 하류와 상류가 부딪히며 다투는 지점에 서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직 죽음과 생명이 싸우고 있는 곳에 있는 는 모든 것이 모호하다.

그럼으로써 와 언니의 대비는 명확하다. 생명에서 멀어진 언니는 다툼을 피하고 모든 것에 순응하는 삶을 살지만, ‘는 이혼을 하고 위자료를 공평히 분배하고 전을 부치지 않고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도 생명의 멀어짐을 어찌할 수 없다. 딸 연주가 이혼에 대한 불평 섞인 편지를 보내왔을 때. ‘는 자신의 낳은 생명이 자신에게 칼끝을 들이미는 것을 느낀다. 즉 생명()이 자신을 적대하고 멀어져가려 준비하는 것이다. 손자의 쌀알 같은 이를 보며 생명()을 느끼고, 대비된 자신의 죽음(폐경)을 느끼며 고통스럽게 얼굴이 변해가는 언니도 마찬가지다.

 

가 멸종위기에 빠진 철새처럼 보이는 그이에게 빠진 이유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죽음(멸종)과 가까워져 가는 모습 속에서 자신과 닮은 모습을 보았고, 그 모습에 이끌려서 어느새 앙고라 털과 머리카락을 걱정해주는 사이로 발전한 것이 아닐까.

 

이제 작품 외적인 것으로 넘어가 보자.

 

본작을 말할 때, 여성관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오래된 작품이어서 현대 가치관에 맞지 않기도 하거니와, 문체 자체가 마초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내가 인정하는 점은 하나의 대상에는 무수히 많은 시각들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의 작품을 읽고도 다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듯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중요하게 보고 싶은 것은, 여성이 가지고 있는 생명의 힘이라는 것은 무겁고도 아름답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생명이라는 가치기지를 집요하게 파고든 본작에 대해서, 나는 문학적인 관점에서 굉장히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싶다.

 

그래서 나는 본작을 읽고 서서히 멀어지는 삶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싶다.

죽음이라고 확정 짓는 것이 아닌, 서서히 멀어지는 삶에 대해서 말이다.

 

얼마 전 조모님이 소천하셨다.

고통 없는 마지막이었고 날씨마저 좋아, 호상이라며 상중 많은 위로를 들었다. 조모께선 치매를 앓으셨고 그로 인해 소천하시기 전까지, 많은 것들이 어그러진 여생을 보내셨다. 다행히 자식들의 얼굴은 잊지 않으셨지만, 안타깝게도 손자들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셨다.

치매증상이 보이던 10년 전.

나는 조모님의 여생을 기록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잊히는 기억에 대항하고 싶은 마음과, 죽음을 더 자세히 들여다 보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그래서 틈날 때마다 카메라로 조모님의 모습을 남겼다. 몇 년만에 끝나겠지 라는 그 일들을 벌이며, 나도 모르게 10년이란 세월이 지나갔다.

조모께서 소천하시던 날.

나는 밤을 새워 그 영상들을 편집했고 장례식에서 반복 재생 되도록 설치했다. 15분짜리 영상이었다. 2010년부터 2020년까지의 조모님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해가 가면 갈수록 머리에 서리가 나리셨고, 미소에 구멍이 생기셨으며, 눈빛이 흐려지셨다. 나는 그 모습들을 시간순대로 이어 붙이며, 조모님의 미소를 눈에 새겼다.

나는 그때 서서히 멀어지는 삶에 대해서 새벽까지 생각했다.

그저 인생,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싶더라도 막상 그 자리에 서면 나는 어떠한 모습으로 서 있게 될지.

 

어떠한 모습으로 남게 될지, 쉽사리 떠오르질 않는다.

 

 

질문 : 아주 서서히 죽어가는 대상의 모습과 마주한 적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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