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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귀 - 4장. 주술
게시물ID : panic_10214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neptunuse
추천 : 2
조회수 : 58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1/02/06 17:0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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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저... 이쪽길이 아닌 것 같은데요?”


마을을 나와 한참을 걷던 중 사내가 조심스레 경비대장에게 물었다.


“아니긴. 이길 맞아. 내가 어디 한두번 와봤어야 길을 잘못들지.”


경비대장의 퉁명스러운 말에 사내는 조금 위축된 듯 보였지만 뭔가 이상함을 느낀건지 이어서 말했다.


“아랫마을로 내려가는거 아니었나요? 그럼 여기가 아니라....”


“아 거참 말 많네. 어련히 알아서 할테니 닥치고 따라오기나 해!”


경비대장이 말을 끊고 버럭 소리 지르자 사내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침묵속에서 사람들의 발소리만 고요히 울려퍼질 때 천천히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다 왔다. 안으로 들어가.”


“네? 저긴 동굴 이잖아요? 도대체 왜...”


분위기가 이상하다고 느낀 사내가 눈치를보며 뒷걸음질 치자 특별조 두명이 재빨리 그의 양팔을 잡아 포박했다.


“잠깐, 왜들그래요? 뭐 때문에 이러는건데요?”


“그건 이따 설명해줄테니까 그냥 입다물고 있어. 그리고 신입. 거기 이놈 짐 들고 따라와.”


기령은 사내가 떨어뜨린 짐을 집어들고는 다른이들을 따라 동굴로 들어갔다. 동굴안은 횃불이 밝혀져 있었고 가장 안쪽 공간엔 멍석깔린 바닥과 두꺼운 말뚝이 있었다. 특별조 사람들은 익숙한 움직임으로 사내의 입을 막고 손발을 포박한뒤 말뚝에 묶어 놓았다.


“이장님은 부대장이랑 같이 오고 계시지? 아직 시간이 좀 있겠군. 어이 신입. 들고있는거 이리 가져와봐.”


기령이 짐을 가져다 주자 경비대장은 즉시 짐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이건 뭔.. 거지새끼도 아니고... 꿍쳐둔 재산이라곤 이거뿐이야? 노잣돈도 안되것구만.”


경비대장은 투덜거리며 짐에 있던 약간의 돈을 꺼내 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신입, 넌 아무것도 못본거다? 우리도 술값은 벌어야지. 너도 데려갈테니까 이장님껜 비밀로 해. 알겠지?”


기령은 우선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이 너무 빠르게 돌아가는 통에 아직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다. 일단을 입을 다물고 있다가 대충 상황을 파악한 후에 비밀을 지키건 고자질을 하건 하면 되는 것이다.


그때 부대장이란 사람과 함께 이장이 동굴 안으로 들어왔다. 경비대장은 이미 짐을 내려놓고 일어서서 이장을 맞이하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이장님.”


“그래, 기다리게 했구만. 서두른다고 했는데 조금 늦었어. 미안하네. 자네도 여기까지 오는데 별문제 없었겠지?”


“네 이장님. 보는 눈도 없었고 다 완벽하게 준비했습니다.”


경비대장은 서글서글 웃으며 대답했다. 이장은 그런 경비대장의 모습을 잠시 보다가 한쪽에 놓여있는 짐꾸러미로 시선을 옮겼다. 조금은 어설프게 갈무리된 짐을 보고 이장은 강인한 어조로 이야기했다.


“뭐든 철저히 해야 하네, 자네 일처리가 확실한건 내 잘 아네만 누구든 실수하기 마련이지 않나. 내가 그리 꽉막힌 사람은 아니네만 뭔가 좋지않은 일을 목도하게 되면 그냥 넘기기도 뭐하니 피차 서로 어색한 상황은 피하고 싶다네. 알겠는가?”


뼈가있는 말이었다. 기령은 이장이 저렇게 모든걸 알고 있다는 듯이 말할 때마다 호흡이 곤란해 짐을 느꼈다. 하지만 경비대장은 조금 멋쩍게 웃을 뿐 무어라 말을 하지 않았다. 이장역시 더 언급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 감옥 속 사내를 바라보았다.


“시간이 많지 않으니 바로 시작하지. 재료들을 꺼내오게.”


이장의 지시에 따라 특수조가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내 앞에 작은 제단이 만들어졌고 그곳에 온갖 것들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과일과 음식부터 시작해서 닭의 내장이나 쥐의꼬리. 심지어는 뱀의 뼈와 토끼 다리 같은 것들이 잔뜩 올라왔다.


“상납받은 물품으로 준비하긴 하지만 구하기 껄끄러운 것들도 있으니 신입 넌 저 재료들 떨어지지 않도록 잘 관리해. 사냥하던 가락이 있으니 그리 어렵지 않겠지.”


대략 준비가 되자 경비대장이 슬쩍와서 일러두었다.


“자 그럼 시작하도록 하지. 저친구를 일으켜 세우게.”


이장의 말에 몇몇 특별조가 사내를 일으켜 세웠다. 사내는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는 마구 발버둥 쳤다.


“내말을 들어주게. 비록 내가 원망스럽겠지만 모두를 위한 일인 것을 알아주길 바라네. 나를 저주해도 좋네만 우리 마을과 다른 이들을 미워하지는 말게. 자네의 희생으로 수많은 이들이 행복해질테니 이해해주게.”


이장은 그 말을 끝으로 방울을 흔들며 무언가 알아들을 수 없는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말로만 들었던 주술이 시작되는 모양이었다. 기령이 어린시절 마을에서 보았던 굿하는 모습과 비슷해 보였다. 하지만 격렬할 지언정 그렇게 요란법석 하지 않았다. 때문에 그 모습이 더욱 기이하고 섬뜩해 보였다. 주술은 제법 오랜시간 동안 계속되었다.


어느순간 부터 묶여있는 사내가 고통스럽게 울부 짖기 시작했다. 막혀있는 입으로 사내의 신음소리가 마구 새어나왔다.


“이제 되었다. 전부 물러서서 준비해.”


경비대장의 명령에 다들 사내곁에서 물러나 무기를 꺼내들었다. 얼마안가 사내의 등쪽이 탈피를 하듯 세로로 쭉 찢어지기 시작했다. 그걸 확인한 이장은 주문을 멈추고 돌아섰다.


“뒤처리를 맡기겠네. 난 부대장과 함께 먼저 돌아가보겠네.”


“예 이장님. 금방 정리하고 갈테니 먼저가서 푹 쉬시지요.”


경비대장은 그 특유의 서글서글한 웃음을 지으며 이장을 배웅했다. 기령은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 들고있는 창에 힘을 주었다. 사람이 역귀로 변하는 모습은 너무도 충격적이었다. 갈라진 등안으로는 짖무르고 핏발선 끔찍한 피부가 보였다. 마치 부패한 시체를 불에 불려놓은 듯한 끔찍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사내가 고통의 울부짖으며 고개를 들자 머리역시 찢어지며 끔찍한 살덩이들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점점 부풀어 오르는 통에 몸에 묶인 밧줄과 옷이 튿어져 나갔고 입마개 역시 풀려 사내의 비명소리가 울려퍼졌다. 그와 동시에 역귀 특유의 그 끔찍한 냄새가 동굴을 가득 채워나갔다.


“신입. 정신 차리고 그거 제대로 써. 잘못했다간 그냥 기절할걸?”


경비대장은 기령의 목에 걸려있는 복면을 가르키며 말했다. 이미 특별조 모두가 천으로 코와 입을 막고 있었다. 기령은 재빨리 복면을 쓰고는 무기를 쥔손에 힘을 주었다. 긴장으로 인해 입안이 시큼해 졌지만 긴장 때문에 침을 삼킬수도 없었다. 사내는 몸을 뒤틀며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어느새 몸집은 두배 가까이 커져있었고 사람의 형태만 있을뿐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해갔다.


“거의 끝났다. 놈을 동굴 밖으로 쫒아내. 나머지 놈들은 길 열어줘.”


경비대장의 명령에 역귀 뒤에있는 특별조 두명이 역귀에게 창을 들이대었다. 그리고 사정없이 역귀를 찔러대기 시작했다. 역귀는 고통스럽게 울부짖으며 창을 피해 동굴 밖으로 튀어 나가기 시작했다.


“이번놈은 말 잘듣네. 가끔 안나가고 버티는 놈이 있거든. 저렇게 풀어놔야 마음껏 돌아다니면서 역병들을 다 받아내지. 가끔 마을로 들어오려고 하는게 문제지만. 그거 막는 것도 우리가 할 일이니까. 여튼간 고생했다 신입. 나 먼저 내려가서 한잔하고 있을테니까 뒷정리하고 와! 첫임무 마쳤으니 뒤풀이 제대로 해야지.”


숲으로 도망치는 역귀의 모습을 보며 경비대장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기령의 귀에는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경비대장의 웃음 대신 역귀의 비명만이 메아리처럼 맴돌고 있었다.


다른 특별조와 함께 동굴안을 정리하던 기령은 가만히 생각을 정리했다. 자신이 생각하던 경비대의 모습이 아니었다. 물론 기대이상의 대우를 받았기에 충분히 만족스러웠지만 하는 일에는 조금 의문이 들었다. 마을을 위한 일이겠지만 경비대장의 태도는 지나치게 무심했고 때로는 너무 무감각했다. 정당하다지만 너무도 가볍게 일을 진행하는 모습은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마을을 위해 희생하는 이의 물건을 아무렇지도 않게 훔치는 것 역시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혹시 자신이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은 아닐까? 그런 의문이 들던 차에 이장의 말을 떠올렸다.


‘자네의 희생으로 수많은 이들이 행복해질 테니 이해해주게.’


이장은 분명 희생자에 대해 충분한 예의를 갖추었고 경비대장의 행동에 대해 경고했다. 명백한 신념을 가지고 행동한 것이 분명하다.


‘그래, 지금 내가 느끼는 문제는 이장님의 문제가 아니다. 경비대장과 경비대의 문제지. 내가 정신을 차리고 이곳을 새롭게 고쳐나가야 한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바꿔 버리고 말겠다.’


기령에게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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