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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귀 - 6장. 습격
게시물ID : panic_10215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neptunuse
추천 : 2
조회수 : 56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1/02/08 17:5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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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현장에 도착해보니 분위기가 조금 이상했다. 역귀가 마을 안으로 들어오려 시도한 것은 그리 드문일은 아니었다. 때문에 경비대가 마을 주변에 방벽을 쳐서 방어를 하고 있었다. 과거 설치되었던 울타리만으론 부족하다 여겨져 두꺼운 방벽으로 교체한 것이다. 그 덕에 역귀들은 애꿎은 방벽만 두드리다가 경비대가 쏜 화살에 맞아 도망치기 일쑤였다. 하지만 현장은 생각보다 어수선했고 다들 동요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어떻게 된 일이냐?”

 

기령은 방벽쪽 망루로 올라가 현장에 있던 경비대에게 상황을 물었다.

 

“네 부대장님. 평소처럼 경계를 하다가 역귀가 내려오는걸 보고 경보를 울렸습니다. 다들 대비하고 있다가 역귀가 다가오자 쫒아내려고 활을 쐈는데... 녀석이 전혀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곤 몸에 화살이 꽂히는것에도 아랑곳 않고 방벽을 두들겨 대고 있습니다.”

 

확인해 보니 그말대로 역귀가 화살 따위는 무시한 채 미친 듯이 벽을 두들겨 대고 있었다. 평소같아선 저정도 공격이면 곧장 도망 쳤을텐데 왠지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아직 까지 큰 문제는 아니었다.

 

“우선 녀석을 방벽으로부터 떨어뜨려놓은 다음 불화살을 쏴서 쫒아낸다. 화살을 계속 퍼붓고 창을 든 자들은 나와 같이 방벽 안쪽에서 역귀놈을 공격한다.”

 

기령 역시 망루에서 내려가 창을 챙겨 들었다. 방벽에는 작은 구멍들이 있었기에 그곳을 통해 공격을 할 수 있었다. 기령을 포함한 세명의 경비대는 구멍 너머로 보이는 역귀의 모습을 보며 창을 겨냥했다.

 

“한번에 찌른다. 준비해...”

 

혹여나 과하게 공격해서 역귀가 죽기라도 한다면 골치가 아파지니 적당히 해야했다. 역귀가 나타나면 최소한의 대응만 하면서 자신을 부르라 당부한 이유도 이런 이유였다.

 

“아직 아직이다. 조금더 기다려.... 좋아, 지금이다! 공격!”

 

기령의 외침에 세 개의 창이 구멍을 통해 역귀의 몸에 정확히 적중했다. 곧 역귀의 끔찍한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역귀는 그대로 도망치는 대신 몸에 창이 박힌 채 더욱 격렬히 방벽을 공격하고 있었다. 뭔가 이상했다.

 

“창을 수습해. 다시 공격한다.”

 

창을 뽑아내고는 다시한번 역귀에게 내질렀다. 그 순간, 역귀가 방벽에서 물러났다. 불안감이 조금 가신 기령은 그대로 경비대에게 소리쳤다.

 

“불화살을 준비해라. 방벽에 피해가 안가도록 조심해서 녀석을 쫒아낸다.”

 

이제 불화살 한, 두발 정도만 맞춰서 쫒아내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내 기령은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역귀가 달려옵니다!”

 

망루에서 들리는 소리에 기령은 다급히 정신을 차리곤 구멍을 통해 밖을 바라보았다. 역귀가 떨어진건 고통 때문이 아니라 공격을 위함이었다. 기령이 어떻게 반응하기도 전에 엄청난 굉음과 함께 방벽 파편들이 기령과 경비대를 덮쳐왔다.

 

“방벽이 무너졌다!”

 

당황한 기령이 파편들을 헤집고 나왔을 때 눈앞엔 끔찍한 모습의 역귀가 포효하고 있었다. 온몸에 화살이 박혀있고 창에 찔린 곳에선 피와 체액이 마구 흘러내리고 있었지만 역귀는 건재했다. 게다가 당장이라도 모두를 죽일 것 같은 기세로 격렬하게 몸을 휘두르고 있었다. 처음보는 모습에 기령은 당황하여 아무런 대처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정신 차려라!!! 모두 무기를 들고 역귀를 둘러싸!”

 

그때 멀리서 천둥 같은 호통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그곳엔 무기를 뽑아든 경비대장이 평소와는 전혀 다른 강렬한 눈을 한 채 다가오고 있었다.

 

“세놈씩 짝을 지어서 역귀를 둘러싸! 자기 짝 두명을 지키면서 공격하는거다. 아까처럼 돌진 할거 같으면 억지로 막지 말고 이탈해서 피해. 나머지가 빠르게 따라붙어서 다시 대형을 만든다. 가까이 붙지 말고 망루놈들은 활로 견제해.”

 

순식간에 대형이 갖춰졌다. 기령역시 재빨리 무기를 갖추고는 자세를 잡았다. 그간 훈련한 티가 나는 듯 경비대장이 명령하자 모두는 그걸 완벽히 해냈다.

 

“멍청하긴. 기껏 가르쳐놨더니만 부대장이란 놈이 그렇게 멍하니 자빠져 있으면 애들이 뭘 믿고 칼질을 하겠냐?”

 

기령은 반박할 수 없었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닥치지 빠릿하게 움직이기 어려웠다. 그에 반해 경비대장은 평소 한심한 모습과는 달리 말그대로 장군과 같은 위엄을 보이고 있었다. 기령은 경비대장의 옆에서 무기를 빼어들고 역귀를 둘러싸며 말했다.

 

“이상합니다. 활도 쏘고 창도 써봤지만 크게 피해를 입지 않은 것 같습니다.”

 

경비대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생각하는 것 같았다. 대형을 이룬 경비대가 잘 막아내고 있었지만 역귀는 어지간한 상처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으며 격렬하게 공격을 해대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경비대에 큰 피해가 올게 뻔했다.

 

“이거 안되겠네. 아무래도 죽여야겠어.”

 

경비대장은 옆에 떨어져있던 창을 집어 올리며 말했다.

 

“죽이다니요. 왠지 모르지만 저녀석에게 무기는 안통합니다. 게다가 역귀를 죽였다간 마을에 역병이...”

 

기령의 말에 경비대장은 코웃음 치며 말했다.

 

“안 통하긴. 넌 저게 안통하는 걸로 보이냐? 뭐, 이상하게 멀쩡하긴 하지만 아예 안통하는건 아니야. 이미 상태가 많이 안좋아졌어. 문제는 상처가 깊어지면 더 격하게 지랄을 할테니 순식간에 처리해야 한단거고. 역병은 뭐... 어떻게 되겠지. 역병에 뒤지나 역귀한테 뒤지나...”

 

경비대장은 재빨리 앞으로 튀어나가며 소리쳤다.

 

“모두 물러나라!!!”

 

그리곤 그대로 뛰어올라 역귀에 등에 창을 꽂아 넣고 매달렸다. 역귀는 전에 없이 격렬한 저항을 했지만 경비대장은 악착같이 버티며 창을 더 깊게 쑤셔 넣고는 한손으로 칼을 뽑아들었다. 격렬한 역귀의 움직임에 그 누구도 감히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다. 경비대장은 한손으로 창을 단단히 부여잡고 매달려 다른 한손에 든 칼로 미친 듯이 역귀를 난도질 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순간 역귀의 격렬한 움직임에 경비대장은 창을 놓치고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바닥을 한번 구른 경비대장이 재빨리 빠져나오려 했지만 온몸에 역귀의 체액을 뒤집어쓴 탓에 미끄러워 빠르게 움직일 수 없었다. 약해질 대로 약해진 역귀지만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경비대장의 다리를 잡아챈 역귀는 터무니없는 힘으로 경비대장의 몸에서 다리를 뽑아내 버렸다.

 

“이 망할새끼가!!!”

 

끔찍한 고통일 테지만 경비대장은 비명을 지르는 대신 욕설을 내뱉으며 한손에든 칼로 다시 한번 역귀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제야 기령은 정신이 들었다.

 

“대장님! 다들 공격! 놈을 죽여라!!”

 

이내 멍하니 있던 경비대들이 전부 달려들어 역귀를 난자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기령은 경비대장을 끌고 자리를 피했다. 얼마안가 역귀가 숨이 끊어졌는지 경비대원들에게서 함성소리가 들려왔다.

 

“빨리도 온다. 게을러 터진 새끼가....”

 

피를 흘리면서도 경비대장은 신음소리 한번 내지 않고 툴툴 거렸다.

 

“죄송합니다. 제가 조금더 빨리 대처했어야 하는데...”

 

기령은 진심으로 자신의 무능함을 탓하고 있었다. 경비대장은 이제 기운이 빠지는지 더 입을 열지 않았다. 그때, 뒤에서 이장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경비대장. 잘해주었네. 자네가 마을을 지켜내었어.”

 

이장은 상황을 계속 지켜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서둘러야겠구만. 경비대장 자네를 이대로 보내버릴 수는 없으니 말일세.”

 

그 말에 경비대장은 코웃음을 흘릴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기령이 자네가 좀 도와주겠나. 시간이 그리 많지 않으니 어서 준비하게.”

 

“예. 서둘러 치료를....”

 

기령이 대답하자 경비대장이 말을 자르고 소리쳤다.

 

“멍청아 닥치고 특별조나 불러모아!”

 

그 말에 당황한 기령이 고개를 들어 이장을 바라보자 이장은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역귀가 사라졌네. 요즘들어 역병이 많이 줄어들었다 해도 역귀의 부재는 곤란해. 시간이 그리 많지 않으니 경비대장이 다시한번 마을을 위해 힘써줘야 할 듯 하네.”

 

기령은 순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늘 쓸모 없다고 생각한 경비대장이었지만 오늘 모습을 보고는 생각을 막 바꾼 터였다. 경비대장은 그다지 놀랍지 않다는 듯 말했다.

 

“속이 시원하시겠습니다. 늘 맘에 안들던 놈이 역귀랑 싸우다 병신이 되서 때마침 딱 필요한 재료가 생겼으니.”

 

이장은 별다른 표정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난 자네의 능력을 잘 알고 있네. 다른 이들은 몰라도 난 자네가 경비대장에 가장 잘 맞는 이라고 생각했지. 언젠간 모든걸 바쳐 마을을 지킬거란 것도 알고 있었어. 그에 대해 깊은 감사를 하네. 다만 마을을 위해 자네가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딱하나 남았으니 염치없는 부탁을 하는 날 용서하게.”

 

“.... 망할. 팔자 좋게 호의호식하다 곱게 가나 했더만.”

 

경비대장은 그말을 끝으로 입을 다물었다.

 

“서두르게, 어서 특별조를 불러와서 준비를 하게. 나도 곧 따라가겠네.”

 

기령은 혼란스러웠지만 언제까지고 멍하니 있을 수는 없었다. 차마 경비대장을 바라보지 못하고 조용히 일어나 특별조인원들을 불러내었다. 문득 기령은 생각했다. 만약 똑같은 상황이었다면 자신역시 군말 없이 역귀가 되었을까? 무어라 설명하기 힘든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저리도 대범하게 받아들이지는 못할 것 같다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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