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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욕설이 있으니, 익숙지 않으시면 읽지 마시길 당부드립니다.
게시물ID : readers_3542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hinejade
추천 : 1
조회수 : 461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21/02/21 03:26:58

 

    “앨리시어의 어머니는 씨/발을 그냥 말하지 않는다. 그녀가 그년을 씨/발년이라고 말할 때 그년은 진정 씨/발이 된다. 백 퍼센트로 농축된 씨/, 백만 년의 원한을 담은 씨/, 백만 년 천만년은 씨/발 상태로 썩을 것 같은 씨/, 그 정도로 씨/발이라서 앨리시어는 그녀가 씨/, 하고 말할 때마다 고추가 간질간질하게 썩는 듯하고 손발이 무기력해진다.”

    “그녀는 그럴 때가 있고 그럴 땐 멈추지 않는다. 그럴 때 그녀는 어떤 사람이라기보다는 어떤 상태가 된다. 달군 강철처럼 뜨겁고 강해져 주변의 온도마저 바꾼다. /발됨이다. 지속되고 가속되는 동안 맥락도 증발되는, 그건 그냥 씨/발됨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씨/발적인 상태다. 앨리시어와 그의 동생이 그 씨/발됨에 노출된다. 앨리시어의 아버지도 고모리의 이웃들도 그것을 안다. 알기 때문에 모르고 싶어하고 모르고 싶기 때문에 결국은 모른다. 앨리시어가 그녀의 씨/발됨을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황정은의 장편소설 야만적인 앨리스씨에서 나온 대목들이다. 본작은 재개발을 앞둔 빈민가에서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아이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작가가 욕설부터 시작되어 일상적인 관용어와 감탄사로까지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씨/발이라는 단어를 본작에서 거침없이 사용했다는 점이다. 작가는 이 씨/발을 통해 폭력을 행하는 당사자와 폭력을 방관하는 제3자를 표현하고 싶어했다. 이곳에서의 씨/발은 폭력성을 상징한다. 그럼으로써 폭력적인 상태마저 작가는 씨/발됨이라는 단어로 제대로 표현해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씨/발됨이라는 문학적 수사가 아름다워 보인다는 점이다.

 

    /발의 어원은 다양하지만, 성교를 뜻하는 씹에서 파생되어 발음하기 쉬운 씨/발로 정착되었다는 것이 지배적인 의견이다. 이 과정은 씹, 씹할, 씨팔, /발로 보여지는데, 왜 성교하다가 욕설로 변모했는지를 알기 위해선 씨/발과 함께 사용된 관용구를 생각하면 쉽다. /발의 앞에는 당신의 어머니를 뜻하는 니미 혹은 니애미가 관용구로 붙는데, 이 관용구를 생각하면 제 어머니와 성교를 할 정도로 온전하지 못하다 라는 의미이니, 충분히 욕설로써 기능하는 것이다.

    하지만 앞서 우리가 보았듯이 씨/발은 욕설로써만 기능하고 있지 않다. 하다못해 우리가 씨/발을 사용하고 있는 과거의 상황들을 떠올려 봐도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굉장히 멋진 것을 봤을 때도 씨/발이라고 말하며, 굉장히 역겨운 것을 봤을 때도 씨/발이라고 말하는 데다가, 굉장히 슬픈 것을 봤을 때도 씨/발이라고 말한다. 황정은의 설명처럼 씨/발은 일상적인 관용어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황정은의 소설을 읽은 대부분의 독자들이 느꼈던 것처럼, /발은 아름다워 보일 수도 있다.

    즉 씨/발 속에는 폭력성만이 담겨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씨/발인 것이다.

 

    엄격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나머지, 나는 욕을 굉장히 늦게부터 시작했는데. 초등학교 고학년에 가서야 욕을 시작했다. 심지어 내가 욕을 처음 한 순간(방아깨비를 잡다가 놓친 친구가 내뱉은 걸 순간적으로 따라 한 그 순간, 하필 그 욕도 씨/발이었는데) 하나님께 죄송하다고 기도를 드릴 정도였다.

    그 이후로 나는 욕설은 좋은 것이다, 나쁜 것이다 라는 두 가지 인생의 방향성에서 고민을 하곤 했는데. 여성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젠틀한 척 비속어를 쓰지 않은 시기도 있었고, 좋아하던 팟캐스트 진행자가 외치던 씨/발이 멋져 따라 하던 시기도 있었으며, 순수한 표현으로 얼마나 임팩트 있는 문학적 장치인가 라는 생각에 거침없이 쓰던 시기도 있었다. 물론 씨/발거릴 때마다 주변 사람들의 얼굴도 씨/발로 변해갔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뭐든 과하면 씨/발인 법이었다.

 

    결론을 말하자면.

    나는 씨/발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발이라는 입에 착 감기는 그 발음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을 설명하기 귀찮을 때 그저 씨/발이라는 단 두 글자만 말하면 되는 효율성, 하지만 그 두 글자로 모든 감정이 절묘하게 표현되는 그 기적적인 기능성, 그리고 입 밖으로 내었을 때의 속 깊을 곳을 긁어주며 막힌 곳을 뻥 뚫어버리는 그 통쾌함. 이 모든 것 때문에 나는 씨/발을 씨/발 좋아한다.

    /발을 씨/발 씨/발한다.

 

    물론 씨/, 글을 이렇게 씨/발내면 씨/발이니 씨/, /발되지 않게 씨/발해보면 씨/.

    나는 사실 아름다운 글을 쓰고 싶기 때문에, /발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발이라는 욕설조차 아름다워 보이는 글을 쓰고 싶기 때문에. /발조차도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그릇으로 보일 수 있는 글을 쓰고 싶기 때문에. 나는 씨/발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오늘 이 글에선 씨/발로 대표하여 말하고 있지만, /발을 대체할 단어는 이 세상에 무궁무진할 것이다.

    하나의 단어로 이렇게 깊은 감정을 이끌어낼 수 있다니 얼마나 멋진 일인가.

    나는 그런 위대한 글을 쓰고 싶다.

    아름다운 소설을 쓰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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