옵션 |
|
#1.
갑자기 배가 살살 아파,
지하철역 안 작은 공중화장실에 들어간
대학생 준수는, 하나 있는 대변기 칸 앞에서
줄을 서 있는 벙거지 모자의 남자를 보았다.
그 남자의 뒤에서 기다리며, 발을 동동 구르던 준수는
마침 그 칸의 문이 열리고 용무를 마친
사람이 나오자,
너무 배가 아픈 나머지,
앞의 벙거지 모자 남자에게
제대로 설명도 안하고,
남자를 어깨로 '툭' 밀치며
그 칸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준수는 냅다 문을 닫고는,
좌변기에 냅다 엉덩이를 깔면서
급한 대로 마구 소리를 질렀다.
`제가 먼저 좀 들어갈게요. 너무 급해서….
죄송합니다. 대신 금방 나올게요. 헤헤`
***
준수가 대변기 칸에 들어가 무사히 용무를 다 보자마자
갑자기 휴대전화기로 전화가 왔다.
친구인 영태였다.
[야~ 준텡이 왜 빨리 안 와? 지하철역 밖은 추워 죽겠는데. 어딘데?]
[엉. 나? 지하철역 공중 화장실. 제기랄. 조금만 늦었으면 역 안에서 X델 뻔 했다.
왜냐고? 킥킥. 새벽에 네가 준 바나나 우유가 X나 상했는지 갑자기 배가…. 어쩌고저쩌고...]
삼수생인 불알친구 영태하고 둘이 어제 클럽에 가서 꼬신 여자 이야기를 하며
서로 크게 웃으며 자지러지느라,
좌변기에 앉은 채 20분이 후딱 지나가는지도 몰랐다.
불연 듯 벙거지 남자에게 아까 금방 나오겠다고
소리쳤던 것들이 생각났다.
문 쪽에다 귀를 살짝 대보았다.
좌변기 칸 바깥은 웬일로 쥐죽은 듯이 조용했다.
`설마~. 20분이나 지났는데. 그 새끼, 어디 딴 데 가서 해결했겠지? 별로 급해 보이지도 않던데.
아니면 얼굴 빛이 안 좋아 보이는 게, 심한 변비였을 수도 있고. 킥킥킥`
그때 갑자기 앞에서 누가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똑똑`
`어? 깜짝이야. 그 벙거지, 아직 안가고 있었나?`
준수는 가느다란 문틈으로 밖을 빼꼼 내다 보았다.
분명 화장실 안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이 보였다.
`이상하다. 어제 먹은 술이 아직 안 깨서 헛것이….`
`똑똑`
`준수의 양 귀에 분명히 들렸다. 밖에 사람이 없는데,
노크 소리가 계속 나고 있다`
`똑똑`
'시발~ 뭐야?'
준수는 괜히 겁이 나기 시작하면서,
어쨌든 화장실을 빨리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대충 마무리 하고,
일어서서 옷을 주섬주섬 고쳐 입는데,
`똑똑`
준수의 손이 바르르 떨리며, 셔츠가 바지 속으로 잘 들어가 지지 않았다.
`똑똑`
`에이 씨. 사람 안에 있는 것 정말 모르나?
지금 나가면 될 거 아니야? 대체 어떤 새끼야?`
`똑똑`
옷을 대충 다 입어가면서,
동시에 한 손으로 문을 밀었다.
문이 전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 문을 내가 반대로 밀었나?`
문 잠금장치가 옛날 고리 걸쇠를 거는 식이었고,
오래 제작된 문의 구조상 손으로 밀던, 당기던
문이 활짝 열려 야만 했다.
`이렇게 새게 밀었는데, 왜 문이 안 열지지?`
`똑똑` `똑똑`
준수는 서서히 목이 마르고, 입에서 침이 천천히 고이기 시작했다.
`똑똑` `똑똑`
안되겠다, 싶은 준수가 두 손으로 문고리를 잡고 사정없이 흔들었다.,
`똑똑` `똑똑`
`아, 알았어요, 아저씨, 아까는 제가 잘못했습니다. 너무 배가 아파서 그만.
그러니 한 번만 좀 봐….`
`똑똑` `똑똑`
`똑똑`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문이 휘청일 정도로
연속하여 계속 들려오고 있었고,
`똑똑` `똑똑`
`똑똑` `똑똑`
`아, 아저씨, 그만 좀 하세요. 그만. 아무리 화가 났어도
장난이 너무 심한 것 아닙니까?`
`똑똑` `똑똑`
`똑똑` `똑똑`
그때 갑자기 준수의 머리 위에서
쇠를 칼로 깎아 내리는 듯한 기분 나쁜 소리가
들려왔다.
`끽~ 끽~ 끽~`
`끽~ 끽~ 끽~`
`끽~ 끽~ 끽~`
`끽~ 끽~ 끽~`
준수는 서서히 머리 위를 쳐다보았다.
벙거지의 남자가 화장실 천장에 매달려
처음 `똑똑` 소리가 날 때부터
준수를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배운 사람이 새치기하면 쓰나?`
벙거지 남자가 준수 밑으로 떨어졌다.
`끽~ 끽~ 끽~`
`끽~ 끽~ 끽~`
`똑똑` `똑똑`
`똑똑` `똑똑`
`끽~ 끽~ 끽~`
`끽~ 끽~ 끽~`
`똑똑` `똑똑`
`똑똑` `똑똑`
계속 휘청이던 대변기 칸의 문짝이
그만 충격을 견디다 못해 '와장창'
떨어져 나가 버렸고,
놀란 준수의 머리와 몸뚱이가 각각 분리가...
"시~~~~~~ 쾅쾅'
대변기의 물 내려 가는 소리와 함께
준수의 것들이 쥐도 새도 모르게 증발해 버렸다.
준수를 기다리다 지친 영태가, 핸드폰 상에서 통화 연결만 되고,
아무런 대답을 안 하는 준수를 찾아 지하철역 공중화장실 앞에 섰다.
[야~ X발 장난해? 추워 뒈지겠는데. 지하철 출입구로 왜 안 올라와?
그리고 전화를 했으면, 살았으면 살았다, 죽었으면 죽었다고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아냐?]
영태가 화장실 안에 들어가자
눈 앞에 부서진 좌변기 칸 문짝이 보였고,
갑자기 영태의 머리 위에서 칼로 쇠를
깎아 내리는 듯한 기분 나쁜 소리가
들려왔다.
`끽~ 끽~ 끽~`
`끽~ 끽~ 끽~`
`끽~ 끽~ 끽~`
`끽~ 끽~ 끽~`
영태가 화장실 천장을 천천히 올려다보자,
벙거지를 쓴 남자가 준수의 휴대전화기를
귀에 대고 있다가, 히죽, 히죽 웃었다.
"너도 그 새치기, 친구지?"
"예?"
몸통이 어슷하게 잘려나간 준수의 머리통이
영태 눈 앞에 '툭' 떨어졌고,
시뻘건 핏방울이 영태의 머리 위로
`똑똑` `똑똑`
떨어졌다.
쇠를 깎아 내리는 듯한 기분 나쁜 소리가
계속 다가왔다.
`끽~ 끽~ 끽~`
`끽~ 끽~ 끽~`
'나, 나, 나, 이, 이 새끼 누군지 정말 몰라~
모른다구~'
벙거지 남자가 영태 밑으로 떨어졌다.
'네 친구 얼굴, 자세히 한번 봐봐봐'
`오, 오지마... 그, 그, 그아아아아악~`
문짝이 떨어져 나간 좌변기 칸에서는
대변기의 물 내려가는 소리에 묻혀,
영태의 외마디 비명소리는
아예 들리지도 않았다.
--------------
이 지하철역 안, 유일한 공중화장실 문앞에 붙은
표지판 하나.
[대변기 막힘에 따른 대 공사 중으로 당분간 사용이 어려우니...]
한달 후.
갑자기 배가 살살 아파,
지하철역 안 작은 공중화장실에 들어간
대학생 태호는,
하나 있는 대변기 칸 앞에서
줄을 서 있는 벙거지 모자의 남자를 보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