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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애완견들의 수다 (remaster)
게시물ID : panic_10222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윤기사
추천 : 3
조회수 : 112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1/03/20 10:3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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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느 동물병원 1층 애완견 호텔.

 

앞문에 창살이 붙어있는 작은 격실 5호에 갇혀있는 골든 리트리버가 지겨운 듯이 하품을 해댔다.

 

~ 아하~ 아하~ 도대체 내 주인 놈은 언제 나를 데리러 오는 거야? 여기 호텔 공간이 너무 작아서 여태 기지개도 제대로 못 펴고 지낸다고

 

4호실의 몰티즈가 그 소리를 듣고는 바로 맞받아쳤다.

 

어이~ 5호실. 1년 동안 여기에 갇혀있는 나도 있는데, 고작 여기 들어 온 지 3개월밖에 안 된 양반이 엄살은~. 거기서 맨날 누워만 있지 말고 나처럼 스트레칭이나 하면서 몸매 관리나 좀 신경 쓰셔. 인간들은 워낙 변덕이 심한 종족이라 갑자기 여기 나타나서 뒤룩뒤룩 살쪄있는 당신을 보면 마음 바꾸어서 그냥 버리고 갈 수 있다고

 

그러면서 몰티즈가 맞은편 3호실에 갇혀있는 치와와의 눈치를 슬쩍 보았다.

 

어제 애완견 호텔에 들어와 제일 큰 공간에 누워있는 2호실 진돗개가 4호실 몰티즈의 말을 집중해서 듣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니 주인들이 처음 약속한 보관 기간이 넘어도 우리 애완견들을 잘 안 찾아간다는 것이 사실이었군요? 그래도 내 주인은 착해 빠져서 나를 모른척하고 버릴 것 같진 않아 보이던데?”

 

그제야 가만히 누워있던 3호실의 치와와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아마 저번 달 일거야. 옆방 진료실에서 원장이랑 관리인이랑 하는 이야기를 내가 우연히 들었는데, 내 주인이 여기서 나 대신 요새 인기 있는 다른 종의 강아지로 바꾸어 갔더라고. 나를 그렇게 예뻐해 줄 때는 언제고.”

 

 

다른 애완견들이 그 소리를 듣고는 애처롭게 3호실 치와와를 쳐다보았다.

 

치와와가 비교적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계속 이었다.

 

우리 애완견들의 목숨은 정말 파리 목숨보다도 못해. 지금이 한창 더운 여름철이잖아. 그렇게 다들 멍하니 수다나 떨지 말고, 제발 100이상으로 팔팔 끓은 지옥에 안 끌려가게 해달라고 하늘에다가 어서 빌기나 하라고

 

이 호텔에서 제일 고급스러운 시설인 1호실에 누워있는 포메라니안이 애완견들이 서로 푸념하는 모습을 보고 코웃음을 쳤다.

 

어휴~ 불쌍한 영혼들, 그러게 태어날 때부터 주인들을 잘 만났어야지. 바로 내 주인이 이 건물 주인인 동물병원 원장이야. 여기서 그렇게 푸념이나 하고 있지 말고 다들 나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이 호텔의 왕으로 모시라고. 출장 간 우리 주인이 곧 돌아오면, 내가 너 네 주인들에게 전화 한 통 씩 해서 여기서 나가게 해달라고 주인에게 선처를 부탁해 볼 수도 있어.”

 

다른 애완견들이 주인의 우월한 지위를 이용하여 갑질을 하려는 포메라니안의 말을 듣고, 어떻게 처신을 해야 할지 서로 눈치를 살폈다.

 

                                                                                                   ***

 

그때 철커덕하고 호텔 현관의 자물쇠 푸는 소리가 나며, 애완견 호텔 관리인과 조수가 안으로 들어왔다. 여기 있던 모든 애완견이 처음 호텔에 맡겨질 때, 자기 주인에게 살살 웃으며 이 호텔에 대해서 친절히 설명을 하던 바로 그 사람들이다.

 

포메라니안을 이 호텔의 왕으로 모시려고 결정하려던 순간, 마치 서로 약속이나 한 듯 애완견들이 조용해졌다.

 

관리인이 파란색의 파일 철 서류를 한 장씩 넘겨보더니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이번 휴가철에는 우리 호텔에 맡겼다가 아예 버리고 간 주인들이 엄청나게 많네?”

 

 

옆에 빨간색 빨판이 촘촘히 붙어진 면장갑을 낀 조수가 말했다.

. 안 그래도 제가 그 주인들에게 전화를 한통 씩 돌렸는데, 그중에 반은 전화를 아예 받지 않고, 나머지 반은 저희보고 알아서 잘 처리해달라고 처리비까지 미리 계좌로 보내왔어요. 인터넷 동호회 모임으로 알게 된 회원들한테 요즘 핫한 종으로 새로 분양을 받았다나 뭐라나?”

 

관리인이 고개를 끄덕였을 때, 호주머니에 있던 휴대전화가 심하게 울렸다.

 

여보세요? ? 벌써 왔어? , 알았어. 지금 싹 다 싣고 나갈게

 

관리인이 왼쪽 손목의 찬 명품시계를 한번 슬쩍 보더니 옆의 조수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 개시장 출발하는 트럭 벌써 밖에 왔단다. 여기 애완견들을 어서 몽땅 실어

 

    

                                                                                                  ***


관리인의 소리를 들은 3호실 치와와는 이제 모든 것을 체념하며 동그랗게 큰 눈을 감고 아까 자신이 예기한 팔팔 끓은 지옥에만 안가 게 해달라며 애처롭게 울부짖었으며,

 

4호실의 몰티즈는 자신이 1년 동안 갇혀 있었던 좁은 공간이 사실은 너무 넓고 좋으니, 여기서 조금만 더 있게 해달라고 왔다, 갔다 하며 진한 애교를 피웠다.

 

5호에 갇혀있는 골든 리트리버는 자기 주인은 절대 자기를 헌신짝처럼 버릴 사람이 아니라며, 제발 주인에게 한 번만 더 전화를 해보라고 앞발을 비비며 눈물을 흘렸고,

 

들어온 지 이틀이 안 된 2호실 진돗개는 멍하니 앉아 있다가, 자기는 이 호텔의 젊은 피인 새내기 애완견이니, 저런 늙은 구닥다리 노인 견들이나 얼른 잡아가라고, 관리관과 조수를 쳐다보며 큰소리로 멍멍 외쳤다.

 

조수가 코를 씰룩거리며 관리인에게 다시 물어보았다.

 

 그런데 진짜 애완견들 전부 다요? 여기에 원장님.”

관리인이 조수의 말을 단박에 끊으며 눈을 치켜떴다.

 

저 밖에 서 있는 트럭 예약한 사람이 바로 원장이야. 자기 출장 갔다 오면 지금까지 예약된 애완견들 호텔에 새로 받아야 한다고 청소까지 싹 해놓으라고 했다니까?”

 

조수는 이제야 이해한 듯이, 면장갑을 낀 손으로 창살이 달린 각 격실 문을 순서대로 열었다.

 

1호실에서 편안히 누워있는 포메라니안이, 마구 울먹이면서 자기 격실에서 꺼내져 밖으로 옮겨지는 애완견들을 보며 자조 섞인 웃음을 지었다.

 

쯧쯧쯧

 

이놈의 더러운 세상을 대체 어쩌겠는가? 처음부터 금 수저로 태어나지 않으면 자기 목숨 하나 부지하기도 쉽지 않은 세상인데. 노력?, 기회? 그런 건 금수저들이 흙 수저들에게 던져주는 일종의 떡고물에 불과해.

 

주인을 잘 만난 자기처럼, 태어날 때부터 부와 특권을 가지고 태어나는 종들과 그렇지 않은 종들은 애초에 똑같은 출발선에서 서로 경쟁을 하지 않는다.

흙 수저들은 흙바닥 운동장에서, 금수저들을 좋은 트랙이 깔린 운동장에서 자기들과 비슷한 부류들끼리 인생의 경쟁을 한다. 경쟁을 하는 운동장 자체가 틀린 데, 전체 참가자들의 달리기 기록을 평가한 들, 과연 공정한 경쟁이 되겠는가?

 

한마디로 금수저들은 흙 수저들이 열심히 땀을 흘리며 노력하고 있는 흙바닥 운동장에 절대 내려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관중석에서 휘파람 불며 수고했다고 그저 박수나 치고 있을 뿐이지.

 

-----------

 

 

조수가 2호실에서 안 나오려고 막 발버둥 치는 덩치 큰 진돗개를 힘들게 끄집어내고는, 마지막으로 1호실에서 웃고 있는 포메라니안을 슬며시 쳐다보았다.

포메라니안도 조수에게 같은 웃음을 보이며 소리쳤다.

 

우리 원장님, 혹시 외국 출장 갔다 아직 안 돌아오셨어요? 돌아올 때 유명한 애완용품가게에서 나 줄려고 맛있는 껌 사 온다고 했는데.”

 

조수가 지저분한 것들이 묻은 면장갑을 새것으로 바꾸어 끼고선,

 한 손에 동물 마취용 주사기를 들고 나머지 한손으로 1호실의 문을 조용히 열었다.

 

 포메라니안이 큰 눈을 연신 껌뻑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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