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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홀로 반짝이던 그대를 생각한다
게시물ID : lovestory_9186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2
조회수 : 36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1/05/22 21:07:39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1.jpg

 

황금찬, 꽃의 말




사람아

입이 꽃처럼 고와라

그래야 말도

꽃처럼 하리라

사람아

 

 

 

 

 

 

2.jpg

 

김기림, 길




나의 소년시절은

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길을

어머니의 상여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


내 첫사랑도

그 길 위에서 조약돌처럼 집었다가

조약돌처럼 잃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푸른 하늘빛에

혼자 때없이 그 길을 넘어 강가로 내려갔다가도

노을에 함북 자줏빛으로 젖어서 돌아오곤 했다


그 강가에는 봄이,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나의 나이와 함께 여러 번 댕겨갔다


가마귀도 날아가고 두루미도 떠나간 다음에는

모래둔과 그리고 어두운 내 마음이 남아서 몸서리쳤다

그런 날은 항용 감기를 만나서 돌아와 앓았다


할아버지도 언제 난지를 모른다는

마을 밖 그 늙은 버드나무 밑에서

나는 지금도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 돌아오지 않는 계집애

돌아오지 않는 이야기가 돌아올 것만 같애

멍하니 기다려 본다


그러면 어느새 어둠이 기어와서

내 뺨의 얼룩을 씻어준다

 

 

 

 

 

 

3.jpg

 

김종길, 자전거




내리막길에는 가속(加速)이 붙는다

발은 페달에 올려놓으면 된다


그러나 균형은 잡아야 한다

무엇이 갑자기 뛰어들지도 모른다

그런 뜻하지 않은 일에도 대비해야지


그런데도 그런대로 편안한 내리막길

바퀴살에 부서져 튕기는 햇살

찌렁찌렁 울리는 방울


언덕길 밑바지에선 해가 저물고

결국은, 결국은 쓰러질 줄 알면서도

관성(慣性)에 몸을 실어, 제법 상쾌하게


가을 석양(夕陽)의 언덕길을 굴러 내려간다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아가면서

지그시 브레이크도 걸어보면서

 

 

 

 

 

 

4.jpg

 

이형기, 산




산은 조용히 비에 젖고 있다

밑도 끝도 없이 내리는 가을비

가을비 속에 진좌한 무게를

그 누구도 가늠하지 못한다

표정은 뿌연 시야에 가리우고

다만 윤곽만을 드러낸 산

천 년 또는 그 이상의 세월이

오후 한 때 가을비에 젖는다

이 심연 같은 적막에 싸여 조는 둥 마는 둥

아마도 반쯤 눈을 뜨고 방심 무한 비에 젖는 산

그 옛날의 격노의 기억은 간 데 없다

깎아지른 절벽도 앙상한 바위로

오직 한 가닥 완만한 곡선에 눌려버린 채

어쩌면 눈물어린 눈으로 보듯

가을비 속에 어룽진 윤곽

아아 그러나 지울 수 없다

 

 

 

 

 

 

5.jpg

 

이동순, 필라멘트




가장 최소한의 공기도 허용하지 않고

타협이라곤 아예 모르던 그대를 생각한다


세상을 다 내다 볼 수 없는 우유빛

유리공 속의 불투명이 깊어가면 갈수록

오히려 그의 자세는 꼿꼿하여 흩어지지 않았다


몰라, 부딪쳐 깨지면 깨어질까

결코 굽힘을 모른다던 어느 우국지사의 생애처럼

죽어서도 이 밤을 지키는 책상머리 위

허공에 높이 걸려 그의 정신은 빛난다


여린 몸집 하나로 무수히 오고 가는

온갖 협잡의 시대를 감당해 내며

비오는 저녁 쓸쓸한 골목에 서서

보낼 수 있는 만큼은 그의 눈빛을 보낸다


강한 전압과 무절제한 공기를 만나는 일순

그의 몸을 끊어서까지 불굴의 아픔을 보여준다


지금 세상은 어둡고 한 점 별도 없는데

진공 속에서 홀로 반짝이던 그대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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