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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신이
게시물ID : panic_10232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neptunuse
추천 : 9
조회수 : 117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1/06/19 18:4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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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어려서부터 난 할머니 손에 키워졌다.


부모님께서 사고로 일찍 떠나시는 바람에 시골 할머니 집에 살게 된 것이다.


대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대략 몇년간을 그 오지나 다름없는 시골 마을에서 자랐다.


다합쳐 봐야 20가구가 넘지 않는 그 작은 마을은 하나의 공동체였고 너무도 자유로웠다.


어른들이 일하러 가면 아이들은 나이가 제일 많은 형누나들 통솔하에 제법 먼거리에 있는 분교로 통학했고


학교가 끝나면 산과 들을 누비며 놀았다.


부모님이 늦으시는 날엔 아무렇지 않게 옆집에 가서 밥을 얻어먹곤 했다.


자유롭고 건강한 분위기에서 마음껏 자랄 수 있었지만 마을에는 아주 중요한 규칙이 있었다.


해가 떨어지고 난 뒤엔 절대로 혼자 돌아다니지 말 것.


그리고 늦은밤 누가 찾아오더라도 절대 문을 열어주지 말 것.


이 규칙엔 아이도, 어른도 예외가 없었다.


당시 시골마을 분위기에 맞지 않는 조금 의아한 규칙이었다.


그 이유에 대해 물었을 때 동네 형들은 이렇게 말해주었다.


“밤이 되면 ‘득신이’가 돌아다니거든.”


생각해보면 할머니께서도 내가 말을 듣지 않거나 떼를 쓰면


득신이가 잡아간다는 말을 해주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엔 그게 무엇인지 몰랐지만 아무튼 ‘굉장히 무서운 녀석...’ 이라는 생각을 했다.


사실 다들 비슷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호랑이라거나 귀신, 도깨비 등 이름만 다를 뿐 아이들이 떼를 쓸 때마다 어른들이 의례 사용하던 방법이니까.


나 역시 철이 들어감에 따라 그걸 거짓말로 생각했지만 어른들이나 형, 누나들은 이상할 정도로 진지했다.


해만 떨어지면 애어른 할것없이 모든 사람들이 집으로 들어갔고, 


혹여나 이동할 일이 있으면 세사람 이상씩 모여 다녔으며 어지간 해서는 다른 집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그 덕에 밤만 되면 불빛하나 없는 마을은 그야말로 침묵에 잠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년에 한번꼴로 마을에는 꽃상여가 들어섰다.


듣기로는 늦은밤 혼자 화장실을 가다가... 혹은 술취한채 늦게 집으로 돌아가다가 득신이를 만났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마냥 어른들의 겁주기 용으로만 생각할 수 없었다.


언젠가 동네형에게 득신이에 대해 진지하게 물어본적이있다.


“근데 형, 득신이가 진짜 뭐에요? 


대체 뭐길래 밤에 밖에도 못돌아다녀요? 


잘못 만나면 죽는다는건 아는데...”


형은 주변을 조심스레 둘러보더니 목소리를 낮추곤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득신이란건 말이야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이래.


누군 혼을 빼간다고 하고 누군 저승으로 데려간다는데 뭐 다 같은 말이겠지.


저 뒷산엔 오래전부터 득신이 한 마리가 살고 있어서


밤만 되면 마을로 내려와 잡아먹을 사람을 찾는다는 거야.


득신이라는게 사람을 홀려버리는 녀석이라 혼자다니면 절대 안되고


두사람 세사람이 같이 다녀야 한 대.


이거 괜히 장난하는거 아니니까 너도 명심해.


우리 옆집 상철이 아저씨나 촌장님 막내아들 죽은거 너도 알지?


시체가 갈가리 찢겨서 살덩어리 몇 개만 남았다잖아.”


그 외에도 몇가지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득신이 같은 괴물은 초대받지 않는 한 집으로 들어오지 못하니 집안은 안전하다는 것.


그리고 사람이 가장 원하는 무언가의 모습을 한 채 사람을 꾀어낸다는 것.


그러니 절대 유혹에 넘어가면 안된다는 것.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고전 설화에 나오는 두억시니, 혹은 어둑서니의 한 종류가 아닐까 생각한다.


다만 누군가의 모습과 목소리로 꾀어내는 것은 창귀나 장산범과 비슷했다.


아무튼 나 역시 어른들이나 형들의 말대로 규칙을 잘 지켰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 그러니까 고등학교 졸업을 목전에 둔 어느날이었다.


이제 얼마뒤면 할머니를 떠나 대학 기숙사에 가야한다는 생각에 싱숭생숭하던 시기였다.


‘독립해서 혼자 살면 좋기야 하겠는데, 할머니 혼자 적적하게 계실거 생각하니 좀 그러네...’


할머니는 어릴때 돌아가신 부모님 대신 날 키워준 유일한 내 가족이었다.


당연히 더욱 각별할 수 밖에 없었다.


복잡한 감정에 잠을 이루기 어려웠지만 대학에 가고 나중에 직장에 취직하더라도 자주 찾아뵐거라 다짐하고는 늦게 잠이 들었다.






‘똑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난 힘겹게 눈을 떴다. 


묘하게 몽롱한 기분을 느끼며 귀를 기울여 보니 다시 한번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똑똑똑’


“누구세요?”


무심코 대답을 한 나는 번뜩 정신을 차렸다.


우리마을에선 늦은밤 다른집에 찾아가거나 문을 두드리는 것은 금기다.


그때 밖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철아....”


오싹함이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아는 목소리였다. 오래전이라 기억이 희미했지만 확신 할 수 있었다.


분명 돌아가신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내방 문을 두드리며 내 이름을 부르고 있는 것이다.


“기철아. 애비다. 문 좀 열어다오...”


정신을 차려야 했지만 그리운 목소리를 들은 순간 눈에 눈물이 맺혔고


머리는 자꾸 몽롱해 졌다.


무심코 문을 열려는 것을 억지로 참았지만 감정이 소용돌이 치는건 막을 수 없었다.


고개를 돌려버리려 해도 창호문너머 비치는 그리운 아버지의 실루엣에 자꾸만 눈이 갔다.


“기철아. 밖이 춥구나. 어서 문좀 열어다오. 네 엄마도 같이 왔단다. 어서 열어달래도..”


곧이어 나를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와 함께 어머니의 그림자 역시 문에 비쳤다.


난 터져나오는 울음을 참고는 바닥에 엎드렸다.


그동안 씩씩하게 자랐다고 자부했지만 안에서부터 무언가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문을 열고 나가 두 분을 마음껏 안아드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기철아... 어서 열어다오... 우리가 보고 싶지 않았던 게냐?”


‘정신차려... 저건 괴물이잖아...’


그렇게 다짐했지만 터져 나오는 울음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러는 동안 밖에 있는 목소리는 점차 격하게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쿵쿵쿵!’


“어서 열지 못해!! 밤새 여기 세워둘 셈이냐?”


이번엔 귀를 막고 구석에 웅크렸다.


만약 내가 조금만 더 어리고 철이 없었다면, 


아니 적어도 주변 사람들에게 수십, 수백번 주의를 받지 않았다면 정말 문을 열었을지도 모른다.


그 순간은 누구든 이성적으로 생각 할 수 없다.


가짜임을 알면서도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난 귀를 막은채 이를 악물고 소리를 무시하며 수없이 되뇌었다.


‘저건 가짜야. 저건 가짜라고. 두분은 돌아가셨어. 저건 그냥 괴물이야...’


어느덧 문은 부서질 듯 흔들려대었고 목소리는 점차 이상해 지더니


마치 여러명이 동시에 말하는 것처럼 들려왔다.


“문열어!!!! 문!!!!! 문열어!!!!”


또다시 공포심이 찾아왔다. 


밖에 있는 무언가가 당장이라도 문을 부수고 방안으로 들어올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한참동안을 이불 속에서 덜덜 떨다가 아침이 되어서야 간신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밤사이 흘린 땀으로 온몸이 푹 젖어 있었고 피로감과 긴장감 때문에 완전히 녹초가 되어 그대로 앓아 눕고 말았다.




“득신이가 왔다 갔구만....”


이장님은 누워있는 내게 말했지만 난 대답하지 않았다.


할머니께서 걱정스레 날 간호해 주고 계셨기에 괜한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기도 했지만


우습게도 막상 지나고 나니 공포심이 물러가고 그리움이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어제 본 부모님의 그림자, 그리고 목소리. 


가짜일 뿐이라고 지워버리려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때 만약 문을 열었으면 부모님의 모습을 볼 수 있었을까?


자꾸 터져 나오는 나쁜 생각을 애써 무시 한 채 눈을 감았다.


혹여나 꿈에서라도 나타날까 하는 헛된 상상을 하면서 말이다.


그 이후로 득신이가 다시 찾아오는 일은 없었다.





시간이 흘러 난 할머니와 헤어져 대학교 기숙사에 들어갔다.


“걱정하지 마요. 시간날 때마다 내려올게. 


밥도 꼬박꼬박 먹고 잠도 잘잘테니까 할머니도 건강히 계셔야되요? 알겠죠?”


시간 날때마다 내려오겠다는 약속을 하고는 마을을 떠났다.


첫 학기는 제법 바쁘게 보냈다.


도시생활에 적응 하랴 학교생활에 적응하랴 간단치 않았다.


그렇게 한두달 정도 지나 슬슬 학교생활에 적응해 갈 때 쯤, 마을 이장님의 연락을 받았다.


[기철아. 큰일이다. 너희 할머니... 문을 여신 모양이구나...]




고향집에 차려진 할머니 영정사진 앞에 쓰러져 오열하는 내게 이장님께서 말씀하셨다.


“네 잘못이 아니란다. 그저 손주가 몹시도 그리우셨던 게지.... 죽은 아들내외 목소리는 그리 잘 참아내시던 분이 네가 떠나자마자 이럴줄은...”


이장님이 말에도 난 나 자신을 용서 할 수 없었다.


전화라도 한번 더 드리고 주말에 무리를 해서라도 찾아왔다면...


그랬다면 할머니가 득신이에게 넘어가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죄책감과 그리움과 슬픔이 뒤섞여 당장이라도 가슴이 터져나갈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장례를 치르고 할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는 동안에도 뒤틀리는 감정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며칠을 인형처럼 멍한 상태로 보냈다.


시간이 지나 어느정도 마음이 정리된 나는 대학을 포기하고 다시 마을로 돌아왔다.


이곳에서 집을 지키며 마을일을 하면서 평생을 보내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나쁜 마음을 버리지는 못하고 있다.


만약 나중에라도 늦은밤 방문을 두드리는 노크소리가 들린다면 난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수 있을까?


그것이 부모님일지 할머니일지는 모르지만 행여나 가짜일 지라도 꼭 만나고 싶었다.


만나서 부모님께 사랑한다고 말하고 할머니의 손과 얼굴을 쓰다듬으며 죄송하다고 말하고 싶다.


비록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때문에 오늘까지도 혹여 그것이 내방으로 찾아오지 않을 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과 불안감을 가진채 잠자리에 들곤 한다.





by. neptun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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