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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속버스터미널로 가기 위해 지하철을 기다리던 영태의 휴대전화기로 전화 벨소리와 문자가 계속 울려댔다. 하지만 영태는 전화기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분명 작년에 급전이 필요하여 돈 오천만 원을 신용대출 했던 을지로 ‘00 해피신용’일 것이다. 갚기로 한 날짜가 되자마자 해피신용 사람들이 매일 매일 전화질에, 심지어 어젯밤에는 집 대문 앞에서 돈을 갚으라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는 통에 한바탕 난리를 치기도 했다.
영태는 ‘더 이상은 안 되겠다.’싶어 이른 아침이 되자마자, 옆에 자고 있던 아내를 깨워 일단 친정으로 빨리 피신하라고 신신당부하고선, 본인도 간단한 짐들만 챙겨 들고 무작정 밖으로 나왔다. 일단 지방에 있는 친구네 집에 몇 달 만이라도 숨어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장 두 식구 먹고살 돈도 없는데, 신용회사에서 대출받자마자 그 길로 경마에서 다 날린 돈을, 무슨 수로 다 갚는단 말인가? 내가 경마에 정신이 팔려 잠깐 정신이 어떻게 되었나 보다. 사랑하는 아내를 친정에 보내고, 나또한 지금 몰래 도망이나 치러가는 처지니 참. 내 꼴이 정말 우습구나.’
어느덧 지하철이 플랫폼으로 쏜살같이 들어왔고 자동문이 열리자, 영태는 힘없이 올라탔다. 한 손에 쥠 가방을 들고서 무심히 열차 내 광고판을 바라보는데, 참가자를 모집한다는 어떤 광고판 글이 눈에 띄었다.
[A 기업 부설 00 뇌 과학 연구소에서 임상시험 참가자를 모집합니다. 간단한 수술 동의와 함께 저희가 준비한 소정의 실험에 참가하시게 되며, 참가자분에게는 개인별 기여금 외에, 별도의 교통비와 우리 연구소에서 준비한 각종 복지 혜택들을 드립니다.]
영태는 잽싸게 아래의 기여금 문구를 확인하였다.
[기여금 : 1인당 1억 원]
‘엉? 대체 무슨 수술에 참여하기에, 기여금을 한사람 당 1억 원씩이나 줄까? 구미가 좀 당기는데? 뭐, 버스표를 아직 예약한 것도 아니니, 한번 문의정도만 해 볼까?’
영태는 당장 1억이 수중에 있으면 00 해피신용에서 빌린 돈이랑 그동안 이자를 싹 해결하고도, 아내랑 충분하게 쓸 수 있는 생활비까지 되겠다는 계산을 해보고, 광고판 아래에 나와 있는 연구소 직통 전화번호를 휴대전화기에 저장하였다.
***
“아이고, 김영태 님 반갑습니다. 여기 연구소의 총괄 책임자인 이 실장입니다. 우리나라 뇌 과학의 발전을 위해 큰 결심을 하여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저희가 그 노고에 따른 보상은 섭섭지 않게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하하하”
중간에 지하철에서 내려 저장한 번호로 전화를 걸자, 상담직원 왈, 이 실험은 국가 중요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반드시 직접 방문을 해야만 실험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는 통에, 영태는 그 길로 이 연구소를 찾아오게 되었다.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제가 무슨 수술을 받게 되는 겁니까? 설마 제 목숨하고도 관계가 있는 건가요?”
이 실장은 작은 눈을 크게 뜨며 손사래를 쳤다.
“아유~ 김 선생님. 이래봬도 명색이 저희가 대기업 부설 뇌 과학 연구소입니다. 요즘 그런 잔인한 인체실험은 연구소 이미지 문제도 있고 해서 잘 하지 않으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잘 하지 않으니???’
이 실장이 갑자기 자신의 검지를 이마 왼쪽에 갔다 대었다.
“계속해서 수술에 대한 설명해 드리면, 우리 인간의 윤리의식을 담당하는 뇌 중추가 바로 ‘복내측 전전두엽 피질’이라는 부분입니다. 이것의 제거에 대한 수술 동의를 해주시면, 저 연구소에서 우리나라 최고의 신경 외과적 기술을 바탕으로 선생님의 그 부분을 제거해 드릴 것입니다. 아, 만일 제거가 된다고 해도 선생님의 일상생활에는 지금과 같이 전혀 문제가 없다고 먼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혹시, 이런 수술을 과거에도 하신 적이 있나요? 저 말고 다른 참가자한테요?”
이 실장이 일부러 헛기침하며, 영태 앞으로 다가왔다.
“우리나라는 아직 입니다만, 외국에서 얼마 전에 군인 참가자를 대상으로 한 수술을 한 적이 있습니다. 요즘 세계 각지에서 내전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는데, 세상에 어린이를 병사로 훈련해서 전쟁에 투입을 한다고 합니다.”
“그래요?”
“군인들이 아무리 적군이라지만 총을 들고 있는 어린이와 앞에 마주쳤을 때, 과연 정상적인 방어 및 공격을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 애초에 이 연구의 시작이었습니다.”
“...”
“그리하여 이 피질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은 군인들이 요즘에 서서히 투입되고 있다고 합니다. 뭐, 우리나라는 그것에 비하면 아직 걸음마인 셈이죠. 본격적인 이 연구의 처음 시작을, 바로 김영태 씨께서 몸소 행하여 주시는 것이고요”
영태는 웃고 있는 이 실장의 얼굴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돈도 안 되는 그런 윤리적인 의식 같은 것, 내 머리에서 좀 없어지면 어떤가? 그게 없어도 일상생활은 전혀 문제없다고 동의서에도 분명 쓰여 있지 않는가? 어차피 00 해피신용에 빌린 돈을 갚지 않으면, 여기 수술에 대한 문제점을 따질 겨를도 없이 내 몸의 장기들이 빌린 돈 대신 팔려나갈 판인데.’
영태는 결국 수술을 결심하고, 동의서를 제출하면서 이 실장에게 슬쩍 물어보았다.
“그럼 돈 1억 원은 언제쯤 제가 받을 수 있나요? 혹시 가능하면 수술 전에 돈을 먼저 받을 수는 없나요? 사실 제가 돈이 좀 급해서….”
“물론 가능합니다. 계좌번호를 저희에게 미리 알려주시면 김영태 씨가 수술실에 들어감과 동시에, 저희가 입금을 해드릴 겁니다. 원하시면 수술실에서 직접 은행에 전화하셔서 계좌를 확인해 보셔도 되고요!”
***
‘앗 따가. 어? 여기가 어디지?’
영태는 머릿속에서 전기 자극 같은 따가운 통증을 느끼며 잠에서 깨어났다.
눈을 떠보니 갑자기 웬 자동차 안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자동차가 저절로 핸들을 움직이면서, 시속 80km의 속도로 국도 위를 달리고 있었다.
영태가 어리둥절해 있는 사이, 차량 스피커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아, 김영태 씨, 잘 들리세요? 저, 상담 드렸던 연구소 이 실장입니다. 다행히 영태 씨의 ‘복내측 전전두엽 피질’수술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오른쪽 머리 옆쪽으로 아마 수술 자국이 나 있을 거라 조금 아프실 수 있습니다.”
안 그래도 영태는 머리의 방금 그 부분을 손으로 만져보고 있었다. 실밥 같은 것이 툭~ 만져졌고, 손으로 그 부분을 누르자 많은 통증이 밀려왔다.
“자, 영태 씨가 본인의 은행 계좌 잔액도 직접 확인하셨고, 수술도 잘 끝났으니 이제 우리 연구소 실험을 바로 진행하겠습니다. 눈을 뜨니 갑자기 웬 차 안이라서 좀 놀라셨죠?”
“아, 예. 신기하게도 자동차가 저절로 움직이고 있네요? 마치 영화에서 본 미래의 자동차처럼 말이에요”
이 실장의 웃음소리가 스피커에서 차 안으로 울려 퍼졌다.
“지금 영태 씨가 타고 있는 차는, 제가 지금 원격에서 조종을 하고 있어 그렇습니다. 자, 이제 실험에 대한 설명해 드릴 테니 잘 들으세요. 시간이 얼마 없으므로, 설명은 딱 한 번만 드리겠습니다. 제 설명이 끝남과 동시에 속도는 그대로이지만 차량 핸들은 수동으로 바뀌어 영태 씨가 직접 운전을 하셔야 합니다.”
영태는 자기가 직접 운전을 해야 한다는 말에, 갑자기 식은땀이 흘렀다.
‘뭐, 운전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만….’
“대략 2km 전방 지점에 양 갈래 길이 나오는데, 그 갈래 길은 단지 1차선 도로로 되어 있습니다.”
‘예? 지금 이 2차선 국도 길도 이렇게 빡빡한데?‘
“갈래의 왼쪽 길에서는 창문 외부가 모두 검은 천으로 덥혀 있는 큰 버스 한 대가 서 있고, 오른쪽 길에서는 한복판에 빨간 원피스를 입으신 여자 분이 홀로 서 계실 겁니다. 김영태 씨가 그 상황에 직면하시게 되면, 본능에 맞게 차량의 진행 방향을 선택하시면 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진행코자 하는 실험의 핵심입니다.”
“뭐, 뭐라고? 결국, 나더러 교통사고를 내고 살인자가 되라는 거잖아요? 이건 처음과 이야기가 다르잖아요?”
“당신이 차량의 방향을 어떻게 정 하느냐에 따라 그 여인이 죽지 않을 수도 있고, 또 그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오로지 판단은 운전자인 당신이 결정하시는 겁니다.”
“이것보라고! 사람 죽이는 이깟 실험을 하려고 나에게 거짓말을 했어?”
“아~ 참고로 말씀드리면, 영태 씨가 지금 타고 있는 차는 그 속도에서 저큰 버스와 충동하였을 때, 당신을 보호해 줄 그 어떤 안전장치도 전혀 설치되어있지 않습니다. 이건 제가 확실히 보증하죠. 그럼 건투를 빕니다.”
스피커에서 말소리가 끊기고 저 멀리에서 갈래 길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실장의 말대로 도로가 갑자기 좁아지면서 왼쪽 길에는 검은색 천으로 가려진 버스가 한 대 서있고, 오른쪽 길에는 빨간 옷을 입은 여인이 뒤를 돌아서 서 있었다.
차량의 내비게이션 경보음이 목표물과 좁혀지는 거리를 점점 알려오고 있었다.
[1km 전방에 갈래 길이 있습니다. 운전자께서는….]
[500m 전방에 갈래 길이 있습니다. 운전자께서는….]
영태는 식은땀이 나며 입술이 바짝 말라왔다. 수술 받은 머리 부위에서 계속 통증이 느껴왔다. 이왕 일이 이렇게 된 거, 상황을 한번 단순하게 생각해 보기로 했다.
영태가 만약 길의 왼쪽으로 틀 경우, 버스랑 정면으로 충돌하게 되고 아무런 안전장치가 달렸지 않은 영태의 차량은 순식간에 종이 쪼가리가 될 것이다.
반면, 오른쪽으로 핸들을 틀면….
[200m 전방에 갈래 길이 있습니다. 운전자께서는….]
[ 50m 전방에 갈래 길이 있습니다. 운전자께서는….]
[ 10m 전방에 갈래 길이 있습니다. 운전자께서는….]
드디어 갈래 길이 영태의 눈앞에 바로 보였다. 영태는 차마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여인이 서 있는 오른쪽으로 차의 방향을 틀었다.
“에이, 나도 모르겠다.”
오른쪽으로 차량을 틀자, 뒤돌아 있던 빨간 원피스의 여인이 갑자기 영태 쪽으로 돌기 시작했다. 그 여인과 영태의 차량이 한 200m 거리 정도로 남아있었다.
‘어?, 저 여인은 굉장히 낯이 익는데? 설, 설마?’
앞에서는 빨간 원피스를 입고 서 있는 영태의 아내가 눈물을 흘리며 다가오는 차량을 바라보고 있었다.
‘왜? 왜? 아내가 저기 서있는 거지? 혹시... 아내도 이 연구소 실험에 참가한 것인가? 앞에 오는 차량을 보고도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가 있지?’
영태의 머릿속에서 수많은 윤리 회로들의 잔상과 인간 본연의 북받치는 감정이 복잡하게 뒤엉키기 시작했다. 내 힘으로는 차량을 멈출 수가 없고, 굉장히 좁은 길이라 방향을 다른 쪽으로 조금만 틀어도 잘못하면 차량이 국도변 아래로 추락 하게 된다.
지금 상황은 굳이 영태가 이 수술을 받지 않았어도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자신의 안전에 더 유리한지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직진을 하면, 앞에 서 있는 내 아내는….’
[50m 전방에 고정된 물체가 있습니다. 운전자께서는….]
‘이 실장이 아까 내 머릿속에서 무슨 피질 같은 것을 잘라냈다고 하지 않았나? 그것도 성공적으로? 그 말이 맞다 면 나는 그대로 직진을 해야 해’
영태의 머릿속에 그 생각이 떠오름과 동시에, 영태는 오른쪽 난간으로 핸들을 틀었고, 차량은 흰색 가드레일을 넘어 국도변 아래로 하염없이 추락을 하였다. 떨어지는 차 안에서 영태는 마지막으로 아내의 얼굴을 떠올렸다.
‘아내는 이 차량에 내가 타고 있다는 것을 과연 알았을까? 빌어먹을! 내가 경마로 돈만 날리지 않았어도…. 여보, 정말 미안해….’
***
이 실장이 연구소 모니터로 영태의 차량이 난간 아래로 추락하는 장면을 지켜보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김영태 씨 부인도 나에게 찾아와, 두뇌 피질 제거 수술을 받았었는데... 차라리 저 부인을 운전시킬 걸 그랬나? 그랬으면 실험 결과가 조금은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는데...’
이 실장은 얼른 다른 쪽의 모니터를 작동시켜, 나타난 화면의 상대에게 90도로 인사를 하고는 방금 종료된 실험의 결과를 보고하였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이번에도... 또 실패인 것 같습니다.”
심기가 불편해진 회장이 물
었다.
“실패인 것 같습니다. 라는 말뜻이 정확히 뭔가요? 이 실장님?”
“예? 저... 말 그대로 연구소에서 두뇌 피질을 제거한 실험 대상이 연구소가 원하는 대로 잘 움직이지가….”
화면 속의 회장님이 엄청나게 격노했다.
“야~ 이 실장. 지금 그걸 내 앞에서 보고라고 하는가? 애초에 인정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냉혹한 인간 킬러들을 양성해 내는 것이 우리 연구소의 설립 목적 아니었나? 이래 가지고 내가 어느 세월에 윗분들에게 만족할 만한 보고를 하겠어? 쯧쯧쯧”
화면 속의 회장님이 답변을 제대로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이 실장을 바라보다 참다못해 이 실장 뒤쪽에 서 있는 보안요원들에게 새로운 명령을 내렸다.
“여기 이 실장도 그냥 실험실로 데려가. 아니면 아예 다음 피질 실험 대상으로 참가 시키던지...”
이 실장이 개 끌려가 듯 보안요원들에게 둘러쌓여 밖으로 끌려나가고, 화면 속의 회장님이 연구소의 모니터가 계속 켜진 지도 모른채 어디론가로 급히 전화를 걸었다.
'띠디디디딩~ 띠디디디딩~ 띠디디디딩~'
상대편 누군가가 전화를 천천히 받았다.
"여. 보. 세. 요."
회장이 저절로 상체를 숙이고 두손으로 휴대전화기를 부여잡으며 공손히 말했다.
"각하. 정말 송구하게도 이번 실험도 또 실패로 끝났습니다. 이거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하지만 다음 실험에서 꼭 우수한 킬러들을 양성하여..."
"쯧~ 쯧~ 멍청한 놈!"
듣고 있던 상대방이 그냥 전화를 끊어버렸다.
회장이 전화를 끊고 무심코 모니터 앞을 바라보자, 연구소 모니터를 통해 수십명의 연구원들이 자신의 모습을 목격하고 있었다.
방금 회장과 통화를 한 VIP의 목소리 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