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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검은색 나비 선글라스를 낀 아주머니
게시물ID : mystery_940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윤기사
추천 : 0
조회수 : 1579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21/07/10 11:4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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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하고 있는 PS 이동통신 대리점 출근을 위해 나는 아침부터 우리 집 근처 지하철역에서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 원래는 열차가 벌써 도착을 하고도 남았어야 하는 시간인데...

조금 전 역내 방송에서, 전 역에 도착한 열차가 전기 순환 기계의 이상 작동으로 긴급 정비를 하고 있으며, 열차가 정상 운영이 되기에는 앞으로 약 1시간 정도가 소요되겠다는 역무원의 안내 멘트가 다급하게 들려왔다.

사실, 지하철 말고도 버스를 몇 번 더 갈아타고 일하는 매장에 출근하는 방법이 있었으나, 나는 음악을 들으며 그냥 계속 기다리기로 했다.

그렇게 결심을 한 이유는 첫 번째, 오늘 날씨가 엄청나게 푹푹 쪄서 버스를 타러 밖으로 다시 나갈 체력이 안 되었고, 두 번째는 굳이 내가 대리점 사장도 아닌데 내 차비를 더 들여가면서 우리 사장님의 영업 수익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열차를 하염없이 기다리며 사장님에게 갑작스러운 열차 지연으로 어쩔 수 없이 늦게 출근을 하겠다는 문자를, 달콤한 이모티콘을 곁들여서 최대한 정중하게 발송했다.

특히 구역 내 몇 안 되는 PS 통신사 공식인증 대리점이라는 대단한 자부심을 가진 우리 사장님은 시간관념이 정말 철두철미하신 분이라, 웬만한 이유로는 직원의 지각 자체를 전혀 용납하시지 않는다. 그래도 오늘은 열차 고장이라는 확실한 지각 사유가 있으니 조금은 봐주시겠지?

어느 덧 1시간 정도가 지났을까?’

 

 

~ 하는 소리와 함께, 열차가 곧 도착하겠다는 안내 멘트가 다시 흘러나왔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플랫폼으로 서서히 들어오는 열차의 앞부분부터 마지막 칸까지 유심히 바라보았다. 유리창 넘어 3~4번째 칸에 빈자리가 있는 것이 내 레이더 망에 잡혔다.

‘4 째 칸 정도에 타면 바로 앉아서 갈 수 있겠구나!’

나는 지금 서 있는 위치에서 옆으로 좀 더 이동하여, 열차가 정차하자마자 4번째 칸에 얼른 탑승하였다.

나의 예리한 관찰력대로 4번째 칸 안에는 빈자리가 딱 한 칸이 남아 있었고, 그것도 나는 철제 손잡이 봉에 바로 기댈 수 있는 자동문 바로 옆, 로열 석에 당당히 앉을 수가 있었다.

앗 싸! 이제 내릴 때까지 쭉~ 자면서 가면 되겠다.’

이 열차 노선의 종점 바로 전역인 00역에서 내려 3번 출구로 바로 올라가면, 내가 일하는 이동통신 대리점이 바로 보인다. 처음 면접을 보러 갈 때부터 찾기 쉬운 위치가 제법 마음에 들었다. 최종적으로 여기 이동통신 대리점을 일자리로 선택한 이유도 바로 출퇴근이 편하다는 이유가 우선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로열 석에 앉아서 이어폰을 다시 귀에 끼우려 하는데, 열차가 출발을 위해 자동문이 닫히는 직전에 어떤 아주머니 두 분이 헐레벌떡 열차로 뛰어오시면서 자동문 사이에 끌고 오신 조그만 이동용 카트를 다짜고짜 집어넣으려고 하셨다.
 
자동문이 닫히려다 문 사이에 그 카트에 걸려 계속 부딪치기를 반복하였고, 잠시 후, 자동문이 닫혔다, 열리기를 반복하였다. 승객들 사이에서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렸고, 두 아주머니는 마치 전쟁터에서 멋지게 승리한 개선장군처럼 당당하게 열차에 탑승하셨다.

아이고 힘들어~, 영숙아, 거봐~. 내가 어떻게든 탈 수 있다고 했지?”

호호호, 그러게. 이거 놓치면 20분은 족히 기다려야 하잖아. 장바구니 카트 가져오길 잘했네?”

승객들은 자동문 사이에 카트가 끼어서 하마터면 안전사고로 일어날 수도 있었던 아찔한 순간을 목격한 뒤라, 다들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모습이었으나, 오직 두 아주머니만은 지하철을 놓치지 않았다는 안도감에 희희낙락 하고 계셨다.

이제 숨을 좀 돌리셨는지 두 아주머니 중, 흰 면장갑을 끼고 검은색 나비 선글라스를 낀 아주머니가 열차 내 좌, 우로 두리 번, 두리 번하며 무엇인가를 살피기 시작하셨다. 나는 본능적으로 얼른 두 눈을 감았다.

[~ 분명 앉을 자리를 찾기 위함이리라!]

나는 눈을 지그시 감고 있다가, 진행되는 상황이 궁금하여 한쪽 눈을 살며시 떴다. 그때, 바로 내 앞에서 흰색 장갑이 보였다. 고개를 들어보니 검은색 나비 선글라스 아주머니가 나를 아래로 뚫어지게 보고 계셨다.

~’

나비 선글라스 아주머니는 내 앞에, 열차에 같이 탔던 친구 분은 그 옆에 나란히 서서 나를 계속 흘끔 쳐다보셨다.

영숙아, 무릎은 좀 괜찮아? 오늘 상당히 덥지? 요즘 젊은 사람들은 어찌나 예의범절들이 없는지?”

괜찮아~ 먼저 앉은 사람이 임자지 뭐, 그런데 아까 뛰어 왔더니 계속 서 있기가 조금 힘이 들긴 해. 머리도 좀 어지럽고. 그런데 이번에 너 환갑잔치한대, 거기 얼마에 했어? 점심 뷔페 먹을 만하더라. 나도 몇 달 있으면 환갑이잖아, 자식들에게 장소는 어디서 하는 게 좋겠다고 미리 호들갑은 떨어나야지~”

나는 일부러 계속 눈을 감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 두 아주머니가 내 앞에서 꼭 내 얘기를 하는 것 같아 계속 신경이 쓰였다. 그렇지만 내가 누구인가, 수많은 억겁의 세월 동안 산전수전, 공중전, 우주전 까지 다 겪은 내가 아니던가?

나는 마치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 것처럼, 이어폰의 볼륨을 더 크게 조작하는 시늉을 하며, 계속 자는 척하였다. 중간, 중간 졸면서 고개 떨구는 시늉까지 완벽하게 액션을 소화하였다. 그러다가 마침, 내 옆의 자리가 하나 생기면서 선글라스 아주머니의 친구 분이 냅다 자리에 앉으셨다.
 
생각보다 좌석의 간격이 넓지가 않았는지, 아니면 친구 분이 차지하는 면적이 내 생각보다 컸던지, 내 오른쪽 어깨선과 그 친구 분의 왼쪽 어깨선이 서로 끽끽부대끼기 시작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왼쪽 철제 손잡이 봉 쪽으로 최대한 몸을 잡아당겼다.

영숙아, 미안해. 나 먼저 앉아 버려서. 너도 좀만 더 참아봐. 그래도 사람이 눈치란 게 있으면 금방 비키겠지.”

어머, 어머, 나는 괜찮아. 편하게 앉아있어. 그런데 사실. 아까부터 다리가 저리긴 하네. 말했었나? 내가 얼마 전에 인공관절 수술했잖아. 의사가 잠깐이라도 서 있지 말라고 했는데.”

선글라스 아주머니는 그 말을 하시면서 나를 계속 쳐다보셨다. 나는 자는 척하는 와중에도, 귓불이 빨개지며 앞으로 얼굴을 어떻게 들어야 할지 참으로 난감했다. 벽에 붙은 지하철역 노선도를 힐끔 보니, 00역까지는 한 세 정거장 정도가 남아있었다.

인공관절? 그럼 아까 출발하려는 지하철을 타기 위해, 100전방에서 쇼핑 카트를 들고서 전속력으로 달려오신 분은 누구였을까?’

열차가 역에 정차할 때마다, 열차 안이 앞뒤로 흔들리며 선글라스 아줌마의 인공관절 무릎과 앉아있는 내 무릎이 살짝살짝 부딪혔다. 그런데 가만히 느껴보니 우연이 아니었다. 일정한 박자 간격으로 선글라스 아줌마가 자기의 무릎으로 내 무릎을 계속 톡톡건드리고 있었다.

나는 애써 자는 척하는 와중에도 일정한 박자로 톡톡하며 그 아주머니는 무릎이 내 무릎에 닿는 것에 계속 신경이 쓰이기 시작하였다.

정말 도저히 안 되겠군!’ 

 
 나는 갑자기 선글라스 아주머니를 향해 눈을 번쩍 떴다. 선글라스 안쪽으로 그 아주머니의 이글거리는 눈동자와 정면으로 마주쳤다. 아주머니는 어깨를 으쓱하시더니, 나를 보고는 고개를 왼쪽으로 가리키셨다.

끝내 자리를 좀 비켜달라~, 이건가?’

나는 그 순간 바로 휴대전화를 꺼내어 사장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장님. 접니다. 아까 지하철 고장으로 출근이 좀 늦겠다는 문자메시지는 받으셨죠?”

~

~


, . 그런데 제가 너무 오래 기다렸다가 열차를 타서 그런지, 자리에서 깜빡 졸다가 모르고 종점 역까지 와버려서요. 다시 거꾸로 타고 가려면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사장님.”

나는 일부러 큰 목소리로 내가 종점 역까지 그대로 앉아서 갈 것 이라는 것을. 그 아주머니에게 확실하게 전달하였고, 심각하게 통화 내용을 듣고 계시던 선글라스 아주머니는 드디어 톡톡무릎 치기를 멈추셨다.

나는 양 볼에 미소를 띄우며, 선글라스 아주머니의 얼굴을 흘낏 쳐다보았다. 검은 선글라스 렌즈 넘어 먹이를 놓쳐서 아쉬워하는 하이에나의 눈동자가 나를 잡아먹을 듯이 뚫어지게 보고 계셨다.

얼마가 지났을까? 다른 승객들의 상황을 좌우로 계속 살피더니 또 다른 먹잇감을 발견했는지, 쇼핑 카트를 끌고 어떤 학생 앞으로 슬슬 이동하시기 시작했다.

아이고, 젊은이가 얼굴은 샌님같이 생겨서, 보기와 다르게 정말 두꺼워~”

내 옆에 앉으신 친구 분이, 내 귀에다 들릴락 말락, 중얼거리시더니 천천히 일어나서 선글라스 아주머니 쪽으로 같이 따라가셨다.

, 예스~ 아주머니들 안녕히 잘 가세요~”

나는 이제야 한숨을 돌린 듯, 이어폰을 끼고 열차가 종점 역에 도착할 때까지 제대로 한번 잠을 청하리라 결심하였다.

                                                                                               ***

종점 역에 도착하여 지하철에서 내린 나는 00역에 다시 이동하기 위해 지하철을 다시 반대로 탑승하였다.

이건 정말 비밀인데...

 

 

내 고향은 지구에서 5억 광년이나 떨어진 곳에 있는 안드로메다 피셔지구에서는 일명 ‘PS 이라 부른다. 우리별에서도 극심한 취업난으로 중, 장년층의 일자리를 구하기가 힘들어지면서 나는 남은 내 인생을 다시 시작할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그래도 아직 희망이 넘치는 지구별까지 날아오게 된 것이다.

우리별에서 제법 장년층에 속했던 나의 생체 나이는 55에이지 이다. 아마 여기 인간 종족들의 생체 주기와 비교하여 내 나이를 지구의 나이로 환산하면, 어림잡아 133세 정도가 될 것이다.

아까 환갑잔치 어쩌고, 저쩌고말씀하신 두 아주머니의 나이를 합친 것보다도 나의 신체 나이가 훨씬 많은 샘이다. , 이 정도 나이면 나도 열차 안에서 제법 호기를 부리며 뻔뻔하게 앉아 갈 권리 정도는 있지 않을까?

열차에서 내려 지하철 역사의 작은 창문을 바라보니, 화창했던 날씨가 갑자기 어두워지며 소나기를 퍼부으려는지, 고질적인 허리 통증이 슬슬 몰려오기 시작했다.

나보다 딱 한 살이 더 많은 우리 가게 사장님이 나보다 먼저 매장에 도착하여 지각했다고 잔소리를 퍼붓기 전에, 나는 003번 출구 쪽으로 급히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

 

 

~ 사실 아까 내색은 안했지만 더 놀라운 사실도 있다.

 

 

아까 그 검은색 나비 선글라스를 낀 아주머니 일당도 부족한 일자리를 찾아 지구에 몰래 숨어 들어온 젊은 외계인들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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