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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오늘도 너는 왜 기다리는지 모르면서 기다린다
게시물ID : lovestory_9212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3
조회수 : 443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21/07/17 14:21:26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1.jpg

 

유홍준, 백년 정거장




백년 정거장에 앉아

기다린다 왜 기다리는지

모르고 기다린다 무엇을 기다리는지

잊어버렸으면서 기다린다 내가 일어나면

이 의자가 치워질까봐 이 의자가

치워지면 백년 정거장이

사라질까봐

기다린다 십년 전에 떠난 버스는

돌아오지 않는다 십년 전에 떠난 버스는

이제 돌아오면 안 된다 오늘도 나는 정거장에서 파는

잡지처럼 기다린다 오늘도 나는 정거장 한구석에서 닦는

구두처럼 기다린다 백년 정거장의 모든 버스는

뽕짝을 틀고 떠난다 백년 정거장의

모든 버스는 해질녘에 떠난다 백년

정거장의 모든 버스는 가면

돌아오지 않는다 바닥이 더러운 정거장에서

천장에 거미줄 늘어진 정거장에서

오늘도 너는 왜

기다리는지

모르면서 기다린다 무엇을

기다리는지도 모르면서 기다린다

 

 

 

 

 

 

2.jpg

 

기형도, 오래된 서적




내가 살아온 것은 거의

기적적이었다

오랫동안 나는 곰팡이 피어

나는 어둡고 축축한 세계에서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질서


속에서, 텅 빈 희망 속에서

어찌 스스로의 일생을 예언할 수 있겠는가

다른 사람들은 분주히

몇몇 안 되는 내용을 가지고 서로의 기능을

넘겨보며 서표를 꽂기도 한다

또 어떤 이는 너무 쉽게 살았다고

말한다, 좀더 두꺼운 추억이 필요하다는


사실, 완전을 위해서라면 두께가

문제겠는가? 나는 여러 번 장소를 옮기며 살았지만

죽음은 생각도 못했다, 나의 경력은

출생뿐이었으므로, 왜냐하면

두려움이 나의 과거이므로

나는 존재하는 것, 그러므로

용기란 얼마나 무책임한 것인가, 보라


나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모두

나를 떠나갔다, 나의 영혼은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누가 나를

펼쳐볼 것인가, 하지만 그 경우

그들은 거짓을 논할 자격이 없다

거짓과 참됨은 모두 하나의 목적을

끔꾸어야 한다, 단

한 줄일 수도 있다


나는 기적을 믿지 않는다

 

 

 

 

 

 

3.jpg

 

김기택, 멸치




굳어지기 전까지 저 딱딱한 것들은 물결이었다

파도와 해일이 쉬고 있는 바닷속

지느러미 물결 사이에 끼어

유유히 흘러다니던 무수한 갈래의 길이었다

그물이 물결 속에서 멸치들을 떼어냈던 것이다

햇빛의 꼿꼿한 직선들 틈에 끼이자마자

부드러운 물결은 팔딱거리다 길을 잃었을 것이다

바람과 햇볕이 달라붙어 물기를 빨아들이는 동안

바다의 무늬는 뼈다귀처럼 남아

멸치의 등과 지느러미 위에서 딱딱하게 굳어갔던 것이다

모래 더미처럼 길거리에 쌓이고

건어물집의 푸석한 공기에 풀리다가

기름에 튀겨지고 접시에 담겨졌던 것이다

지금 젓가락 끝에 깍두기처럼 딱딱하게 잡히는 이 멸치에는

두껍고 뻣뻣한 공기를 뚫고 흘러가는

바다가 있다 그 바다에는 아직도

지느러미가 있고 지느러미를 흔드는 물결이 있다

이 작은 물결이

지금도 멸치의 몸통을 뒤틀고 있는 이 작은 무늬가

파도를 만들고 해일을 부르고

고깃배를 부수고 그물을 찢었던 것이다

 

 

 

 

 

 

4.jpg

 

박용철, 고향




고향을 찾아 무얼하리

일가 흩어지고 집 무너진 데

저녁 까마귀 가을 풀에 울고

마음 앞 시내도 옛자리 바뀌었을라


어릴 때 꿈을 엄마 무덤 위에

남겨 두고 떠도는 구름 따라

멈추는 듯 불려 온 지 여남은 해

고향은 이제 찾아 무얼하리


하늘가에 새 기쁨을 그리어 보라

남겨 둔 무엇이길래 못 잊히우랴

모진 바람아 마음껏 불어쳐라

흩어진 꽃잎 쉬임 어디 찾는다냐


험한 밭에 짓밟힌 고향 생각

아득한 꿈에 달려가는 길이언만

서로의 굳은 뜻을 남께 앗긴

옛사랑의 생각 같은 쓰린 심사여라

 

 

 

 

 

 

5.jpg

 

장만호, 별이 빛나는 밤에




지난 사랑은 오래된 음반과 같아

그 사람 서성이던 자리, 자리마다

깊은 발자국들

흠집들


바늘이 튈 때마다

탁, 탁, 장작 타는 소리 들려오고


일제히 떠오르는 무수한

불티들, 급히

손으로 눌러 끈 자리

그 밤하늘 자리에


지문 같은 별들

소용돌이치는 밤


가만히 그 손을 입술에 대보는

별이 빛나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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