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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기 2030년.
전 세계 인구 증가에 따른 식량, 석유자원 분쟁 문제로 자칫 전쟁이 일어날 뻔한 나라 간 테러 사건이 발생한 이후, 과거처럼 인간을 우생학적으로 관리하자는 움직임이 대학이나 명망 있는 학자들 사이에서 붐처럼 일어났으며,
각종 식량이나 석유 등 지구 위에서 이미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비슷한 부류의 인간들끼리 시비를 벌이다 엄청난 테러 사건을 겪은 전 세계의 정치인들은,
남들보다 모든 면에서 뛰어난 능력을 갖춘 우수한 인간들 일부가 사회의 모든 부분을 직접 통제하고, 나머지 인간들을 안전하게 다스리는 우생 사회의 본격적인 도입을 추진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우리나라도 전 국민의 건강, 재산, 학력, 출신 성분 등 각종 신상데이터를 세분화하여 총인구의 약 1%에 해당하는 상위 50만 명을 서열로 뽑아내 ‘능력자’로 분류하고, 그들을 중심으로 사회의 모든 분야가 점차 통제되기 시작했다.
***
서기 2035년, 정부 직속 국가 우생위원회.
“장관님. 얼마 전에 국방연구소에서 유사 시 보이지 않는 ‘쉴드’기능을 가진 전투용 차량을 개발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우생위원회 위원장인 강영도 박사가 국방부 장관을 향하여 큰 박수를 쳤다.
국방부 장관이 어깨를 한번 으쓱하며 위원장에게 말했다.
“테러 집단의 본거지에 은밀히 침투하기 위한 작전용으로 우리 연구소 직원들이 몇 년 동안 휴가를 반납하고 개발한 신개념의 전투용 차량, 바로 S-2입니다. 평상시처럼 아군의 진지를 달일 때는 평범한 승용차의 모습이나, 운전석에 달린 ‘쉴드’스위치를 누르면 차량의 외형이 투명하게 되어 외부의 적들에게 전혀 보이지가 않게 됩니다. 하하하”
위원장이 그 설명을 듣고 눈을 가늘게 뜨며, 장관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장관님. 그런 엄청난 물건을 만드신다고 몇 년 동안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장관님께 친히 부탁을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만”
“위원장님께서 갑자기 저에게 무슨 부탁을…?”
“방금 말씀하신 그 보이지 않는 차량 S-2를, 현재 우리 사회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상위 1% 인구의 ‘능력자’들에게 1대씩 무상으로 지급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예?”
장관이 놀라서 위원장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들이 사회의 발전을 위해 밤낮으로 엄청나게 노력해온 것들은 여러분들이 바로 당사자이시니까 잘 아시지 않습니까? 우리 사회‘능력자’분들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해 이 신기술 차량을 포상으로 한 대씩 지급하는 것이 그들의 사기를 위해서라도, 또 일반시민들과의 차별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라도 괜찮은 생각이 아닐까? 합니다만”
그렇게 말하며 강영도 박사가 국방부 장관에게 애처로운 눈빛을 간절하게 보냈다.
“하지만 애초에 군사용으로 개발된 차량이라, 아무리 능력자들이라도 대부분 민간인 신분인데 무상으로 지급하는 것이 법적으로 가능할지….”
그 대답을 듣고 위원장이 법무부 장관을 바로 쳐다보았다.
“법무부 장관님. 이 S-2 차량을 능력자들에게 무상으로 지급을 하는 것이 법적으로 정말 어렵겠습니까?”
법무부 장관이 눈치를 좀 보다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이 기회에 국방연구소 훈령을 개정하여, 외부 베타테스트 차원으로 시범 사용에 동의한 민간인들에게 군사용 차량 지급이 가능토록 한다는 내용을 추가하면 법적으로 크게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만….”
법무부 장관과 국방부 장관의 눈빛이 서로 은밀히 교환되었다.
위원장이 법무부 장관의 대답을 듣고는 최종 결론을 내며 의사봉을 두들겼다.
“여기 모이신 위원님들의 중지를 모아 이번에 국방연구소에서 개발된 신무기 차량, 일명 S-2를 우리나라 상위 1%의 능력자들에게 무상으로 지급도록 하는 안건을 최종 의결하겠습니다. 탕 탕 탕”
재력과 체력, 지능과 학력, 부모와 직계 친척의 직업들까지. 유전적으로 인간을 개량할 목적으로 국가에서 주도면밀하게 검토하여 선발한 우리나라 상위 1%의 능력자들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국방, 외교, 의료 등 각 사회 분야에서 정책을 입안하고, 처리하는 관리자의 임무를 수행하였으며,
그 보답으로 월급을 포함해서 각종 연금이나 다수의 복지혜택이 일반 시민들의 그것에 비해 상당하였다. 또한, 1%의 능력자들의 결혼은 반드시 배우자를 능력자들에게서만 고를 수가 있도록 가족 계획법이 구체화 되어, 능력자들의 유전자들이 그대로 보존되면서 번식될 수 있도록 정부에서 남, 녀 간의 만남 정책을 공식적으로 이끌었다.
드디어 상위 1%의 능력자들이 정부로부터 공식적으로 S-2 차량을 무상 지급 받게 되었다.
일반 시민들은 능력자들이 디자인부터 잘 빠진 최첨단의 승용차를 그것도 무상으로 타고 다니는 것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볼 수밖에 없었으며,
도로에서 씽씽 달리는 S-2 차들을 보며 자신들이 사회에서 진짜로 열등한 존재라는 것을 정부로부터 공식적으로 인증 받았다는 것에 대해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
***
다음 날 아침, 정부 직속 국가 우생위원회.
“위원장님. 급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S-2 차량의 교통사고 건수가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일반 차량들의 사고 건수에 비해서 엄청나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헐레벌떡 뛰어온 위원회 보좌관의 말을 듣고 위원장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음. 그래요…?”
위원장이 잘 알았다는 몸짓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보좌관을 나가게 했다. 그리고는 어디론 가로 전화를 돌렸다.
‘띠~ 띠~’
상대방이 전화를 받고선, 먼저 잽싸게 인사를 해왔다.
[아이고 위원장님. 안녕하십니까? 이른 아침부터 국가평등위원회에는 무슨 일로?]
[김 박사. 요새 S-2 차량들 동시에 운행시킨다고 많이 바쁘지요? 그런데 최근 올라온 S-2 차량 사고 데이터를 보니까, 사고를 한꺼번에 몰아서 만드시는 것 같아 조금 염려가 됩니다. 이렇게 티가 나게 사고를 조작하시면 우리 국민이 어디 불안해서 도로에 나갈 수나 있겠어요?]
[죄송합니다. 위원장님. 매월 할당된 능력자들의 사망 숫자를 맞추어야 해서요. 그래도 다음부터는 조금씩 기간을 두어서 차량 사고를 내도록 신경 쓰겠습니다.]
위원장이 김 박사의 대답을 듣고도, 제발 신중하게 사고 처리를 해달라고 재차 당부하였다.
김 박사가 갑자기 음흉하게 웃으며 위원장에게 말했다.
[어쨌든 이렇게 계속 능력자들의 사망 숫자가 늘어나게 되면, 결국 유일하게 살아남으신 위원장님께서 일반 시민들의 정신적 지도자가 됨은 물론, 자연히 이 나라의 지도자로 선출되실 것입니다. 앞으로 위원장님께서는 이 나라를 위해 더 큰 일을 하셔야 할 분인데, 이제는 사사로운 문제까지 너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위원장은 김 박사의 말을 듣고 내심 흐뭇해 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렇다. 정부에서 상위 1%의 능력자들에게 무상으로 지급된 S-2 차량은, 비밀로 운영되고 있는 국가평등위원회 소속 감시센터에서 일괄 원격제어가 되고 있었다.
즉, S-2 차량의 운전자가 쉴드 기능을 끄고 운전을 해도 센터에서 그 기능을 바로 활성화하기만 하면, 잘 달리던 본인들의 차량이 갑자기 도로에서 안 보이게 되는 신세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나 똑똑하고 남들보다 모든 면에서 우월한 1%의 능력자들은 운전하고 있는 S-2 차량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지 안 보이는지, 차 사고로 죽는 그 순간까지도 끝내 알 수 없을 것이다. 왜 자기 차량 쪽으로 다른 차들이 마구 돌진해 오는지 계속 궁금해 하면서 말이다.
정부 국가 우생위원회 위원장이자, 비밀로 운영되는 국가평등위원회 고문이기도 한 강영도 박사는 오랜 세월 동안 은밀하게 인간 능력의 조화로운 평등을 주장해온 과학자였다. 비슷한 능력을 갖춘 사람들끼리 만나서 서로 화합을 하며 사회를 이끌어나간다는 이상적인 유토피아 세계관을 정부 몰래 전국의 시민들에게 계속 전파하고 있었다.
이렇게 국가평등위원회에서는 정부에서 정한 1% 능력자들을 S-2 차 사고로 조작하여 모조리 몰살시키는 정책을 강영도 박사의 지시 아래 진행하고 있었다. 이 정도 추세라면 연말쯤엔 이 나라의 1% 능력자는 이제 위원장 본인과 추종자 세력 몇몇밖에 안 남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내년에 있을 이 나라의 대표자를 선출하는 선거에서, 내가 능력자 대표로 단독 출마가 가능하게 되지.
하하하.’
‘똑똑’
‘똑똑’
아까 나갔던 보좌관이 위원장의 집무실에 다시 들어왔다.
“위원장님. 오늘 예정된 정부 부처 장관들과의 오찬 참석하시러 나가실 시간입니다.”
“아~ 벌써 그렇게나 되었나? 어서 가세”
위원장이 건물 밖으로 나오자 보좌관이 냉큼 검은색 세단 차량의 오른편 뒤 자석 문을 열었다. 위원장이 천천히 탑승하고 보좌관이 운전석에 앉아 차량을 출발하려는 순간, 갑자기 ‘쿵 ‘소리와 나며 세단의 앞부분이 찌그러지고 그 충격으로 본 네트 쪽에서 불이 나기 시작했다.
이윽고 불길이 세단 전체를 덮으며 훨훨 타기 시작했고, 세단의 앞쪽에서 엉망으로 찌그러져 불길에 휩싸인 S-2 승용차의 모습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
은밀하게 운영되는 국가평등위원회 위원장이자, 정부 국가 우생위원회 위원인 김 박사가 강영도 위원장의 차 사고 장면을 모니터로 확인 후, 웃으며 사무실 문을 힘차게 나섰다. 바로 옆에 붙어있는 비서실에서 꾸벅 졸고 있던 김 비서가 문소리에 놀라 벌떡 일어났다.
“어이~ 김 비서. 나, 각 부처 장관님들하고 오찬 하러 나갔다 올 게.
그런데 여의도역까지 가려면 근처 지하철역에서 몇 호선으로 갈아타야 하지?”
김 비서가 갑작스러운 질문에 놀라서 말을 얼버무렸다.
“대기하고 있는 관용차 사용은 안 하시고요? 그게…. 5호선보라색…. 방화…….”
김 박사가 김 비서에게 다가와 은밀하게 말했다.
“내년에 내가 이 나라 대표자 선거에 출마하려면 서민적인 분위기도 미리 연출을 좀 해야 해서…. 이제 지하철을 슬슬 이용해 볼까? 하는데 생각보다 노선도 복잡하고 뭐가 어렵네?
아~ 지금 별로 할 일 없으면 김 비서가 나랑 같이 지하철 좀 타고 가자.
김 비서도 1% 능력자들 안에 선발되고 싶어 안달했잖아?
누가 알아? 내 말만 잘 들으면... 국회x원 정도는...”
그 말을 들은 김 비서가 충성을 다하는 애완견 마냥 눈을 반짝이며,
우생 접경 구역 쪽에서 서민들이 바글바글 모여 출, 퇴근할때 주로 사용한다는
지하철의 노선도를 인터넷에서 힘들게 찾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김 비서는 생각에 잠겼다.
'역시, 우생위원회 리더이신 김 박사님은 정말 대단하셔. 이 와중에 일명 지옥철이라 불리는 지하철을 이용하여
서민 코스프레를 생각해 내실줄은...'
김 비서는 한 10분동안 간신히 인터넷 검색을 한 덕분에, 이제는 검색엔진에도 잘 나오지도 않는
서민들의 지하철 노선도를 다행히 프린트 출력할 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