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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개구리 공주님
게시물ID : readers_3607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크리스마스
추천 : 4
조회수 : 362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21/08/11 17:5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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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옛날옛날 아주 먼 옛날, 조물주 뺨도 후려칠 만큼 아주 예쁜 공주님이 어느 마을에 살았어요. 너무 예쁜 탓에 싸가지가 없을 거라는 편견이 있었지만, 공주님은 그런 자잘한 소문 따위 신경 쓸 수 없을 정도로 마을 일에 바빴어요.

 

 “저기 옆 마을에서 배수로 공사를 해서 홍수를 막았대.”

 

 “알겠습니다. 바로 기술자들을 보내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

 

 “윗마을에서 이번에 새로 개량한 대포 위력이 아주 좋다는데?”

 

 “숙련된 병사들을 보내 바로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마도 공주님이 현대에 태어났다면 과학기술부장관 정도 되었을거에요.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공주님의 주위에는 항상 구혼을 하려는 남자들로 넘쳐났어요. 남자들은 저마다 아름다운 꽃, 영롱한 보석을 들고 와 사랑의 노래를 불렀지만, 조금도 공주님의 관심을 끌 수 없었어요.

 

 그리고 발걸음을 돌리는 남자가 늘어날수록, 임금님의 한숨도 깊어져만 갔어요.

 

 “공주가 저렇게 마을 일을 챙기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결혼에 도무지 관심이 없으니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신하들은 저마다 묘안을 가져왔지만, 번번이 실패하거나 공주님의 퇴짜를 맞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왕궁에 마녀가 찾아왔어요.

 

 “신에게 좋은 생각이 있사옵니다.”

 

 신하들은 마녀가 불길하다고 했지만, 임금님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마녀의 의견을 들어보기로 했어요.

 

 마녀의 의견은 간단했어요.

 

 “우선 공주님을 개구리로 바꾼 다음, 우물에 가둬 둘 겁니다.”

 

 신하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지만, 임금님은 마녀에게 이야기를 계속하게 했어요.

 

 “개구리에서 다시 공주님으로 돌아오는 조건은 단 하나. 우물에서 빠져나오는 겁니다.”

 

 “우물에서 빠져나오는 것이랑 결혼이랑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우물 안의 개구리는 절대 혼자서 밖으로 나올 수 없습니다. 따라서 구혼자들이 공주님을 구출하게 만드는 겁니다.”

 

 마녀의 말이 끝나자 신하들이 왈가왈부하는 소리가 성안을 가득 메웠어요. 해 볼만하다는 의견, 너무 위험하다는 의견 등등 신하들이 둘로 나뉘어 싸우는 가운데 임금님이 엄숙한 목소리로 헛기침을 했어요.

 

 “공주의 안전에는 문제가 없는 것이렷다?”

 

 눈을 떠보니 어두컴컴한 벽이 보였어요. 조금 전까지 푹신한 침대에 누워 있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공주님은 궁금했어요.

 

 “맞아. 마녀가 갑자기 내 방에 들어왔었지.”

 

 공주님은 자신의 방에 침입한 마녀를 이단 옆차기로 제압하고 관절기를 걸어 한판승을 얻어낸 것까지 기억해 냈어요.

 

 “이상하다. 분명 내가 이겼을 텐데.”

 

 겨우 바닥에서 일어난 마녀는 죽다 살아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어요. 그리고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품에서 요술봉을 꺼내 공주의 머리를 때렸어요. 마녀는 공주님에게 개구리가 될 거라고 했어요. 그리고 우물 안에서 나오지 못하면 평생 다시 원래 모습대로 돌아올 수 없을 거라고 했어요.

 

 “맞아. 그 빌어먹을 마녀가.”

 

 공주님이 주위를 둘러봤을 때는 이미 마녀는 온데간데없고, 어두운 벽과 차가운 물만이 느껴졌어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니 어슴푸레한 달빛만이 우물 위로 보였어요.

 

 그리고 다음 날, 마을 곳곳에 아이들이 호외를 뿌리고 다녔어요.

 

 “호외요! 호외! 마을 중앙에 있는 우물에서 개구리로 변한 공주님을 꺼낸 사람은 공주님과 결혼할 수 있답니다!”


 마을 사람들은 정말 가지가지 한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임금님이 성 앞에 나와 신문 내용을 읽을 때쯤 모두 열광의 도가니에 빠졌어요. 마을의 모든 젊은 남자들이 모여 우물 속의 개구리를 꺼낼 생각을 했어요.

 

 우물 안이 너무 어두워 그 깊이를 알 수 없었기 때문에, 횃불을 내려보기도 하고 밧줄에 몸을 묶어 내려가 보기도 했어요. 하지만 아무리 내려가도 개구리는 찾을 수 없었어요.


 “우물이 이렇게 깊었나?”

 

 저마다의 방법으로 개구리를 찾던 남자들이 하나둘 불평을 쏟아내기 시작했어요.

 

 “사실 개구리고 뭐고 아무것도 없는 거 아냐?”

 

 “공주가 애초에 결혼하기 싫으니까, 이런 유치한 방법을 생각해 낸 게 틀림없어!”


 하루, 이틀, 일주일이 지나고 우물가에 모여 있던 남자들은 저마다 집으로 돌아갔어요. 그런 남자들의 모습을 본 임금님은 공주가 걱정되어 다시 마녀를 성으로 불렀어요. 마녀는 전에 공주님에게 얻어맞은 상처가 아직 낫지 않았는지, 목발을 짚고 임금님을 만나러 왔어요.

 

 “지금 공주님을 원래 모습으로 돌려놓는 것은 상관없지만, 그렇게 되면 공주님은 영원히 결혼할 수 없을 것입니다.”

 

 물론 공주님이 원래대로 돌아오면 맞아 죽을지도 모른다는 말은 몰래 뺐어요. 그 말을 들은 임금님은 한참을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럼 조금만 더 지켜보도록 하지.”

 

 우물 속에 갇힌 공주님은 매일매일 좁은 물속에서 수영만 하는 나날을 보냈어요.


 “그 마녀 녀석. 나가기만 하면 이번엔 다른 다리를 꺾어 줄테야.”


 우물 위에서 남자들의 목소리가 간간이 들리는 것으로 봐서, 이번에도 임금님이 무언가 꿍꿍이를 꾸민 것이 틀림없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아빠는 다리를 꺾을 수 없으니까, 어떻게 해야 하지.”

 

 남자들은 우물 속에 개구리가 있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횃불을 내려보내기도 했고, 깊이를 확인하기 위해 돌멩이를 던지기도 했어요. 그리고 저마다 개구리를 찾기 위해 밧줄을 타고 내려와 긴 막대기로 물속을 휘저었어요.

 

 시간이 갈수록 남자들은 개구리를 찾는 데 혈안이 되었고, 심지어 개구리의 천적인 물뱀을 풀기도 했어요. 마녀의 마법 덕분에 다치지는 않았지만, 공주님은 점점 남자들의 행동에 질리기 시작했어요.

 

 “내가 정말 뭘 원하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공주님은 점점 더 남자들을 피해 우물 속 깊은 곳까지 내려가 숨었고, 질린 남자들은 하나둘 우물가에서 떠나기 시작했어요.

하루, 이틀, 일주일이 지나고 우물가에 모여 있던 남자들은 저마다 집으로 돌아갔어요.

 

 공주님은 남자들이 사라져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만, 평생 우물 밖으로 나갈 수 없는 것 아닐까 하는 불안감에 빠졌어요. 차라리 공주가 아니라 이름 없는 농부의 딸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걸, 공주님은 그렇게 생각했어요. 아니아니. 그러면 평생 연구서나 과학서적은 읽을 수 없을지도 모르니, 적당한 귀족 집안 정도가 좋겠다. 뭐 그런 생각도 했어요.

 

 그런 서글픈 마음에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면서 하늘을 올려다보니 달이 보였어요. 처음 우물에 왔을 때처럼 어슴푸레한 달빛, 이 아니라 무언가에 가린 달빛이었어요. 자세히 보니 우물 위에서 두레박이 내려오고 있었어요.

 

 보아하니 이걸 타고 우물 위로 올라오라는 뜻 같았어요.

 

 하지만 공주님은 물속에 가만히 숨어 두레박을 지켜보기만 했어요.

 

 “이걸 타고 올라가면, 그 사람과 결혼하라고 하겠지.”

 

 이미 공주님은 임금님의 머리 위에서 놀고 있었어요.

 

 “절대 그렇게 되진 않을 거야.”

 

 다시 공주님이 물속 깊은 곳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우물 위에서 가녀린 목소리가 들렸어요.

 

 “기술자들이 옆 마을에서 배수로 공사하는 법을 배워왔다고 합니다.”

 

 물속으로 들어가려던 공주님은 순간 귀가 솔깃해 다시 올라왔어요.

 

 “그리고 숙련된 병사들이 윗마을에서 새로 개량한 대포의 도안을 가지고 왔다고 합니다.”

 

 전부 얼마 전 공주님이 확인해 보라고 지시한 것들이었어요.

 

 말을 마친 목소리의 주인공은 공주님을 재촉하기라도 하듯 우물 위에서 두레박을 흔들었어요. 공주님은 순간 갈등에 빠졌어요.

여태까지 공주를 찾아온 남자들은 모두 아름다운 꽃과 영롱한 보석으로 자신의 환심을 사려 했을 뿐, 자신의 본질적인 모습에는 관심이 없었어요.


 “그래. 적어도 이런 남자라면 괜찮지 않을까. 아니, 근데 올라갔는데 엄청 호박이면 어쩌지.”

 

 그런 고민을 하는 사이 두레박이 조금씩 움직이면서 우물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어요.

 

 “안 돼! 기다려!”


 그렇게 공주님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두레박 위로 뛰어들어 우물 밖으로 나왔어요.


 우물 밖으로 나오자마자 공주님은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어요. 그리고 마지못한 표정으로 우물 주변을 둘러보았어요. 하지만 우물 주변에는 두레박과 작은 소녀 한 명이 있었을 뿐 어디에도 남자의 모습은 없었어요.

 

 공주님은 바닥에 주저앉아 자신을 멀뚱멀뚱 쳐다보는 소녀를 자세히 내려다봤어요.

 

 “어디서 본 얼굴 같은데.”


 그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공주님은 갑자기 생각난 듯 소리를 질렀어요.


 “! 항상 내 시종을 보던 그 아이로구나!”


 “황공하옵니다. 공주님.”

 

 다음 날 소녀를 데리고 성으로 들어간 공주님은 우선 마녀를 분이 풀릴 때까지 때려준 다음, 임금님에게 소녀와 결혼하겠다는 말을 했어요.

 

 “호외요! 호외! 공주님이 자신을 우물에서 꺼내준 소녀와 결혼한답니다! 호외요! 호외!”

 

 임금님은 너무나도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할 말을 잃었지만, 이미 내뱉은 말을 다시 되돌릴 수는 없었어요.

 

 “이번엔 저기 뒷마을에서 새로 벼를 개량했다고 하던데.”

 

 “이미 똑똑한 농부들을 보내 놨습니다.”

 

 “그럼 저번에 이야기했던 서적의 수입은 어떻게 됐지?”

 

 “사절단이 아마 내일 오후쯤에는 성으로 가지고 들어올 겁니다. 그리고 그보다 공주님.”

 

 소녀가 농후한 눈빛으로 공주님을 바라보자, 공주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졌어요.

 

 “, 아직 할 일이 많은데.”

 

 “어머, 그러셨어요?”

 

 결혼한 뒤 어쩐지 모르게 소녀의 성격이 바뀐 것 같다거나, 왠지 모르게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뜬 것만 같은 일들이 있었지만, 공주님은 좋아하는 연구를 계속할 수 있었기 때문에 자잘한 일들은 신경을 쓰지 않기로 했어요.

 

 이렇게 우물 속에서 나온 공주님은 소녀와 함께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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