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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시간은 아무 데도 없다
게시물ID : lovestory_9224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2
조회수 : 43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1/08/14 19:49:43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1.jpg

 

조창환, 후박잎에 비 쏟아질 때




후박잎에 후두둑

비 쏟아진다

나뭇잎 사이로 넓은 바람 온다

바람 사이로

휘적휘적 걸어가는 사람들

뒷모습만 보인다

풀꽃들 무거워 기울어지고

벌레들이 두텁게 울고 있다

먼 데 하늘이 저 혼자 흔들리고

젖은 숨소리들 삭아지는 소리

들린다

 

 

 

 

 

 

2.jpg

 

김병호, 세상 끝의 봄




수도원 뒤뜰에서

견습 수녀가 비질을 한다


목련나무 한 그루

툭, 툭, 시시한 농담을 던진다


꽃잎은 금세 멍이 들고

수녀는 떨어진 얼굴을 지운다


샛길 하나 없이

봄이 진다


이편에서 살아보기도 전에

늙어버린, 꽃이 다 그늘인 시절


밤새 혼자 싼 보따리처럼

깡마른 가지에 목련이 얹혀 있다


여직 기다리는 게 있냐고

물어보는 햇살


담장 밖의 희미한 기척들이

물큰물큰 돋는, 세상 끝의 오후

 

 

 

 

 

 

3.jpg

 

문정희, 돌아가는 길




다가서지 마라

눈과 코는 벌써 돌아가고

마지막 흔적만 남은 석불 한 분

지금 막 완성을 꾀하고 있다

부처를 버리고

다시 돌이 되고 있다

어느 인연의 시간이

눈과 코를 새긴 후

여기는 천년 인각사 뜨락

부처의 감옥은 깊고 성스러웠다

다시 한 송이 돌로 돌아가는

자연 앞에

시간은 아무 데도 없다

부질없이 두 손 모으지 마라

완성이라는 말도

다만 저 멀리 비켜서거라

 

 

 

 

 

 

4.jpg

 

이태수, 풍경(風磬)




바람은 풍경을 흔들어 댑니다

풍경 소리는 하늘 아래 퍼져 나갑니다


그 소리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 나는

그 속마음의 그윽한 적막을 알 리 없습니다


바람은 끊임없이 나를 흔듭니다

흔들릴수록 자꾸만 어두워져 버립니다


어둡고 아플수록 풍경은

맑고 밝은 소리를 길어 나릅니다


비워도 비워 내도 채워지는 나는

아픔과 어둠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어두워질수록 명징하게 울리는 풍경은

아마도 모든 걸 다 비워 내서 그런가 봅니다

 

 

 

 

 

 

5.jpg

 

신용목, 일어나지 않는 일 때문에 서해에 갔다




저녁이 하늘을 기울여, 거품 바다

그득 한 잔이다


속에서부터, 모든 말은 붉다. 불길 몸으로 휘는 파도의



돌아와 한 주전자 수돗물을 받았다

이 위로, 몇 척의 배가

지나갔을까


불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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