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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나는 오늘부터 저녁이다
게시물ID : lovestory_9291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3
조회수 : 36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2/02/13 16:20:48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1.jpg

 

강상기, 염전에서




뼈 시린 노동이

겨울 바다 위에 내리는 눈이라고

생각하다가


문득

땡볕과 바람에 단련된 눈물이

흰빛 반짝이는 소금꽃으로

결정된 것이라고

생각하다가


아득한 하늘 끝

일렁이는 수평선 너머

핏빛 노을을 한없이 바라보았다

 

 

 

 

 

 

2.jpg

 

이정록, 등




암만 가려워도

손이 닿지 않는 곳이 있다

첫애 업었을 때

아기의 입술이 닿았던 곳이다

새근새근 새털 같은 콧김으로

내 젖은 흙을 말리던 곳이다

아기가 자라

어딘가에 홧김을 내뿜을 때마다

등짝은 오그라드는 것이다

까치발을 딛고

가슴을 쓸어내린다

손차양하고 멀리 내다본다

오래도록 햇살을 업어보지만

얼음이 잡히는 북쪽 언덕이 있다

언 입술 오물거리는

약숟가락만한 응달이 있다

 

 

 

 

 

 

3.jpg

 

서안나, 애월




나는 밤을 이해한다

애월이라 부르면 밤에 갇힌다

검정은 물에 잘 녹는다


맨발로 돌 속의 꽃을 꺾었다

흰 소와 만근의 나무 물고기가 따라왔다


백사장에 얼굴을 그리면

물로 쓰는 전언은 천 개의 밤을 끌고 온다

귀에서 꽃이 쏟아진다

내 늑골에 사는 머리 검은 짐승을 버렸다


시집에 끼워둔 애월은 눈이 검다

수평선에서 밤까지 밑줄을 그어본다

검정은 물에 잘 녹는다

검정은 어디쯤에서 상심을 찢고 태어나나


나는 오늘부터 저녁이다

 

 

 

 

 

 

4.jpg

 

박소란, 감상




한 사람이 나를 향해 돌진하였네 내 너머의 빛을 향해

나는 조용히 나동그라지고


한 사람이 내 쪽으로 비질을 하였네 아무렇게나 구겨진 과자봉지처럼

내 모두가 쓸려갈 것 같았네

그러나 어디로도 나는 가지 못했네


골목에는 금세 굳고 짙은 어스름이 내려앉아


리코더를 부는 한 사람이 있었네

가파른 계단에 앉아 그 소리를 오래 들었네

뜻 없는 선율이 푸수수 귓가에 공연한 파문을 일으킬 때


슬픔이 왔네

실수라는 듯 얼굴을 붉히며

가만히 곁을 파고들었네

새하얀 무릎에 고개를 묻고 잠시 울기도 하였네


슬픔은 되돌아가지 않았네


얼마 뒤 자리를 털고 일어나 나는, 그 시무룩한 얼굴을 데리고서

한 사람의 닫힌 문을 쾅쾅 두드렸네

 

 

 

 

 

 

5.jpg

 

임지은, 대충 천사




천사가 있다면

자르다 만 핫케이크에 누워 있을 텐데

아무도 알아보지 못해서

나만 안다


천사는 대충을 좋아한다

대충 싼 가방을 메고 피크닉 가는 것을

몇 개의 단어로 일기 쓰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니까 천사는

모든 것이 대충인 세계로 온 것

좋아해서 그어놓은 밑줄 위에 천사가 누워 있다


내가 좀 전에 벗어놓은 추리닝을 입고 있는

천사는 튀어나온 무릎만큼

상심한다


인간은 악취 위에 뿌린 냄새 같아서

향수로도 잘 감춰지지 않고


우리는 틀어놓은 음악을 함께 듣고 있지만

모두 자기 자신만 듣느라

천사가 곁에 있다는 걸 알지 못한다


나의 이어폰으로 놀러 온 천사여

지금 그 기분을 벗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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