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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P.를 보았다.
게시물ID : freeboard_198319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Dr.Slump
추천 : 0
조회수 : 735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22/02/17 01: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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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대로 넷플릭스 드라마 D.P.를 봤다.
그러면서 아주 오래전인 내 군 생활이 떠 올랐다.

나는 해병대 68%기였다. 육군으로 따지면 1992년 1월 군번인 셈이다. 그리고 요즘은 모르겠지만 해병대 징집기수였다. 즉 해병대를 지원하지 않았음에도 그곳에 끌려온 그런 기수였다.

그바람에 2훈단에서도(훈련소) 처음부터 적응하는데 많이 힘들었었다. 1월 초에 입소했는데 6주간의 훈련기간 딱 2번만 난로를 피워줬다. 입소한 첫날과 영하 10도 아래로 내려간 그날 하루, 그게 다였다. 덕분에 이백여명 훈병들중 절반 가까이가, 아니 그 이상이 감기를 넘어 폐렴에 걸렸었다. 게다가 침상은 난방이 없는 2층 목제 침상이었다. 그걸 침낭 하나와 모포 두장으로 버텼다.

실무에 와서도 크게 좋아질 것은 없었다. 육군에서도 논산때문에 군기가 빠진다는 말처럼 우리도 징집기수가 해병 군기를 뺀다고 했었으니... 그래도 나는 운이 좋은 편에 속했다. 해안가 독립 대대의 독립  중대에 배치되었기 때문이다. 유일한 흠이라면 해안가 부대를 순환없이 근무하는 것이었고, 또한 그게 가장 큰 장점이기도 했다.

구타. 물론 있었다. 
내가 상병달기 전까지 거의 매일 맞았다. 조식후 짧게 훈시 및 구타후 근무 배치, 야간 순검전 근무평가 및 구타, 그리고 심야에 이뤄지는 빵빠레. 하루에 기본 두번은 맞았다. 첫해 8월에 기록한 경험으론 그달 두번 빼고 다 야간에 맞았었다. 내 기억으론 상병 달기 전까지 한번도 안맞은 날이 두번 있었다.

그래도 이번에 본 D.P.와 다른 점이 있다면 절대 개인을 상대로 한 그런 악행은 아니었다는 것이었다. 우리땐 모두 공동책임이었다. 내 동기가 잘못하면 같은 기수와 그 맞선임이 맞는 식이었다. 최소한 꿀을 먹인다면서 가래침을 뱉거나, 선임 앞에서 자위를 시키거나 하지는 않았다.

요근래 티비에 나오는 군대 가혹해위를 듣자면 과연 우리 군대가 선진화되고있는지 정말 의문이 든다.

나는 그런 선임이 되지말자는 생각에 빠따 군번이 되면서 쇠파이프를 없앴다. 내가 일년 가까이 맞았지만 그걸 되물림하고싶지 않았다. 물론 거기엔 우리 부대 특성도 있었다. 

내 위로는 선임이 매 기수별로 다 있었다. 그런데 내 후임은 4개월 후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다음 기수는 내 12개월 후에야 들어왔다. 말 그대로 꼬인 그런 기수가 나였고, 내 맞후임도 그랬다.

90년대 초에 군대를 갔다왔지만 지금은 그보단 나아졌기를 바란다. 끝내어야 할 것은 악습이고, 이어야 할 것은 전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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