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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모든 것을 돌이킬 수 없었다
게시물ID : lovestory_9294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4
조회수 : 35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2/02/21 14:45:59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1.jpg

 

이규리, 이후




봄은 오는 게 아니야 가고 있는 거야

그러니

손목은 너무 세게 잡지 말고

갈 때 놓아주도록 살며시

살며시, 라는 말 울고 싶은 말이기도 한데

당신은 거기서

나는 여기서

빽빽한 숲에서도 한눈에 드는 나무가 있지

놓아준 나무

놓아준 손목

시끄러운 곳에서도 뒤돌아보게 하는 목소리는

그렇게 놓아준 것이야

그 소리 목소리도

가고 있는 거

원했던 건 가고 있는 거

가고 있는 건 고요가 되겠지

비유 너머에 있는 그것

너머라는 말도 울고 싶은 말이었는데

거기 알 수 없는 그늘이 있지

느릅나무 분재는 겨울에도 가득 초록 잎을 달고

놓아줄 때를 잊고서

오래 머무는 건 정말 무서웠는데

쓸쓸하게도 머무는 사이 우는 법을 알아갔을 것이다

나무가 풍경에서 나갈 수 있도록

손목이 약속에서 나갈 수 있도록

 

 

 

 

 

 

2.jpg

 

이장욱, 밤에는 역설




당신을 잊자마자 당신을 이해했어

닫혀 있기 때문에 들어가고 싶은 문 앞에서

뜨거워져서 점점 더 뜨거워져서

드디어 얼어붙을 것 같았는데. 이봐

노력하면 조금씩 불가능해진다

바쁘고 외로운 식탁에서 우리는

만났으므로 헤어진 연인들처럼

당신을 알지 못해서 당신에 대해

그토록 많은 말을 했구나

어려운 책을 읽기 때문에 점점

단순한 식물이 되어서

해맑아서

잔인한 아이처럼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으니까

새벽마다 또 눈을 뜨네

내가 조용한 가구를 닮아갈 때

그건 방 안이 아니라 모든 곳

거기서

당신이 나타났다

밤이라서 너무 환한 거리에서

바로 그 눈 코 입으로

 

 

 

 

 

 

3.jpg

 

송기흥, 입속의 손




삶은 우렁이의 살을

이쑤시개로 빼 먹는데

우렁이의 새끼들이 사각거린다


이놈들이 어미 살을 파먹고

세상에 나온다는데 나와 보면

어미가 끌고 다녔던

빈 껍데기만

횅댕그렁할 것 아닌가


험상궂은 생 하나가


가만히 나를

만지고 간다

 

 

 

 

 

 

4.jpg

 

김지녀, 숫자를 배우고부터




숫자를 배우고부터 모든 것이 명확했다

열 개의 손가락이 생겼고

너를 가리켰고 지울 수 없는 역사가 바위처럼

우리의 무릎 앞에 굴러와 박혔다

역사를 배우고부터 고아가 되거나

혼혈아로 태어나는 인생을 쓸쓸한 마음으로 읽었다

단락을 나누듯이 우리의 인생이

갈라지는 것이 신기했다

도시가 점점 커졌다

문법을 배웠지만 너를 알고부터

비문의 세계가 열렸다

지구의를 돌려 어디라도 갈 수 있었다

더 밝아진 밤, 사물들은

잔상이 오래 남았다

내가 태어나고부터

의심이 싹텄다 상상력으로 나는 빈곤해졌다

중요한 일과 중요하지 않은 일을 구분했지만

꽃은 꽃으로 돌아왔다

모든 것을 돌이킬 수 없었다

 

 

 

 

 

 

5.jpg

 

박시하, 마리골드




새콤달콤한 냄새 속에

부푼 저녁달이

흰 밤으로 들어간다

세상의 악몽들을 모아서

마리골드

마리골드

그림자들이 외친다


우린 단지 죽지 않으려고

사랑했던 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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