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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사랑도 이젠 막바지다
게시물ID : lovestory_9298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2
조회수 : 31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2/03/04 15:58:25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1.jpg

 

박남희, 물집




못을 박다가 손가락을 찧어 물집이 잡혔다

물집은 아픔의 흔적을 한줌의 물로 보여준다

순간의 고통 속에 갇혀서 흐르지 않는 물

저 물은 북받치던 설움이 선뜻 눈물이 되지 않을 때의

알 수 없는 비밀을 가졌다


나에겐 물집이 잡혔던 몇 번의 기억이 더 있다

뜨거운 물에 데었던 기억과

과격한 노동의 끝

벌건 손바닥에 맺혔던 물집의 기억


뜨겁다는 것과 아프다는 것을

갇힌 물로 표현하는

저 벙어리 의 이상한 발성법을 누가 알랴

아침마다 풀잎 위에 맺혀있는 이슬도

하루의 그리움과 뜨거움이 남긴

말없음의 징표라는 것을 누가 알랴


한순간, 하루의 열기가 물집을 만든다

지구를 향한 태양의 뜨거운 사랑

그 무수한 햇살의 못들이 만들어 낸 물집이

달이라는 것은, 밤마다 하늘에 물집이 잡힌 채

환하게 울고 있는 저 달도 모른다


사랑의 저 말 못할 발성법은 물집도 모른다

 

 

 

 

 

 

2.jpg

 

송승언, 사랑과 교육




좋은 날이야

산책하기 좋은 날이다 정말


어느 날의 잠에서 깨어나 떠올린 기억이

어느 날의 산책이 아니라

산책 없이 헤어진 날 들었던 너의 목소리라면 그것은 사랑이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거리

모두 사라진 이 거리를 산책하며 쏟아지는

이상한 빛을 바라본다는 것

빛의 좋음 때문에

더는 혼자가 아니라는 착각에 휘감기고 있다면


그것은 신의 사랑일 것이다

불타는 이 도시의 꼴이 신의 교육이듯이


산책하며 익히는 건 걸음걸이

세계 불타는 것 중요하지 않고

내가 어떤 궤적을 그리며 걷고 있구나 하는 정도

그리고


좋은 날에 걸으면 죽고 싶다는 것

죽지 말라고 할 사람 죽어야 할 이유

더는 없는데도 몇 번씩이나

 

 

 

 

 

 

3.jpg

 

오은, 생일




축하해

앞으로도 매년 태어나야 해

매년이 내일인 것처럼 가깝고

내일이 미래인 것처럼 멀었다

고마워

태어난 날을 기억해줘서

촛불을 후 불었다

몇 개의 초가 남아 있었다

오지 않은 날처럼

하지 않은 말처럼

죽을 날을 몰라서

차마 꺼지지 못한 채

 

 

 

 

 

 

4.jpg

 

허연, 슬픈 버릇




가끔씩 그리워 심장에 손을 얹으면 그 심장은 이미 없지

이제 다른 심장으로 살아야 하지

이제 그리워하지 않겠다고

덤덤하게 이야기 하면

공기도 우리를 나누었지

시간의 화살이 멈추고 비로소

기억이 하나씩 둘 씩 석관 속으로 걸어 들어가면

뚜껑이 닫히면 일련번호가 주어지고

제단 위로 올라가 이별이 됐지

그 골목에 남겼던 그림자들도

틀리게 부르던 노래도

벽에 그었던 빗금과

모두에게 바쳤던 기도와

화장장의 연기와 깜빡이던 가로등도 안녕히

보랏빛 꽃들이 깨어진 보도블록 사이로 고개를 내밀 때

쌓일 새도 없이 날아가 버린 것들에 대해 생각했어요

이름이 지워진 배들이 정박해있는 포구에서

명치 부근이 이상하게 아팠던 날 예감했던 일들

당신은 왜 물위를 걸어갔나요

당신이라는 사람이 어디에든 있는 그 풍경에서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당신은 지옥입니다

 

 

 

 

 

 

5.jpg

 

황규관, 예감




이제 사랑의 노래는

재개발지역 허름한 주점에서 부를 것이다

가난한 평화는 한 블록씩 깨어지고 있다

그 아픔의 마른 냄새를 맡으며

잃어버린 대지를 찾지 않겠다

모든 밥벌이가 단기계약이듯

사랑도 이젠 막바지다

새끼들 칭얼거림을 다 듣고

아내의 지친 한숨도 내 것으로 한 다음에야 노래는

터져 나올 것이다

깨어진 기억은 길가에 치워져 있다

천장이 한없이 낮아

일찍 취하는 주점에서

마시고 내린 빈 잔을 가슴에 가득 담을 것이다

사랑은 막바지고

외로움도 좋다

백척간두가 내 힘이다

그러나 다시 노래는 울고 말 것이다

끝내 오고야 말 폐허까지

폐허의, 폐허의 아침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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