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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웹자서전] ep.20 어떻게 엇나가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관하여
게시물ID : sisa_119638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ozener
추천 : 4
조회수 : 371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22/03/08 13:3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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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묻는다. 신기하다고... 가난했고, 초등학교 졸업하자마자 공장에 다녔고, 자주 두들겨 맞았고, 팔도 다치고 후각도 잃었으며, 심지어 공부도 못하게 하던 아버지가 있었는데 어떻게 엇나가지 않았느냐고...



흔히 소년공들이 그런 것과 달리 나는 술, 담배도 하지 않았다. 공장 회식 때도 술을 마시지 않았다. 가출을 한 적도 없고 비행을 저지른 적도 없다. 월급을 받아 빼돌린 적도 거의 없이 아버지에게 고스란히 가져다주었다.



어떻게 일탈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은 낯설다. 스스로에게 한 번도 그런 질문을 해본 적이 없다. 대답을 하려 들면 생각은 결국 강이 바다로 흘러가듯 엄마에게 맨 먼저 달려간다.



넘치게 사랑해주던 엄마가 있었으니 일탈 같은 선택지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어린 마음에도 엄마를 기쁘게 해주는 일이 가장 우선이었다.



열다섯 살 때 한 번은 한 달 월급을 고스란히 약장수에게 바친 일이 있다. 점심시간에 공장마당에서 차력을 선보이는 약장수에게 홀딱 넘어간 것이다. 만병통치약이라는데 엄마의 증상과 딱 맞아떨어졌다. 이 좋은 약을 돈이 아까워 엄마에게 안 사준다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



그렇게 약을 사서 보무도 당당하게 귀가했다. 나는 그 일로 그렇게 혼쭐이 날 줄 몰랐다. 한 달 월급을 몽땅 바쳤으니 아버지가 화가 날 만도 했다. 그 길로 이틀을 집에도 못 들어가고 우리집과 뒷집 담벼락 사이에서 잤다.



공장에 다니면서 돈을 탐낸 적도 없다. 검정고시 준비할 때 용돈만으로는 책과 학용품을 살 수 없어 월급에서 몇 천원, 오리엔트 퇴직금에서 얼마, 그렇게 한두 번 삥땅을 쳤을 뿐이다. 용돈으론 학원 갈 버스비도 부족했다.



공부를 포기하고 다시 오리엔트 공장에 들어갔을 땐 다시 월급을 고스란히 아버지에게 건넸다. 공부에 쓸 게 아니라면 내게 돈은 의미가 없었다.

그즈음 하루는 엄마가 말했다. 그동안 내가 엄마에게 맡긴 돈이 5만원이라고... 그 와중에도 용돈을 아껴 엄마에게 맡기곤 했던 것이다.



5만 원은 한 달 월급에 이르는 큰돈이었다. 고민됐다. 평소에 카메라가 갖고 싶긴 했다. 찰나의 순간을 사로잡아 오래도록 기억하게 해주는 마법 같은 도구.

하지만 대입을 포기했으니 출세해서 엄마 호강시켜드리겠다는 결심도 물거품이 된 상황이었다. 엄마에게 금가락지를 해주자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카메라를 포기하자니 아까운 생각도 들었다. 일기장에는 그때의 번민이 고스란히 기록돼 있다.



아까워? 에이, 도둑놈아! 은혜도 모르니? - 1980. 8. 30



나는 결국 엄마의 손에 가느다란 금가락지를 끼워드렸다. 엄마는 처음에 엉뚱한 데 돈을 썼다고 펄쩍 뛰었지만 어느 날 이렇게 말했다.



“재맹아, 내는 이 가락지 끼고 있으먼 세상에 부럽은 것도, 무섭은 것도 없데이.”



엄마는 슬프고 힘든 일이 있으면 손가락의 금가락지를 매만졌다. 그런 엄마를 보면 마음이 짠했다. 그리고 돈이 어떻게 쓰일 때 가장 빛나는지 알 것 같았다.



어떻게 엇나가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모르겠다. 일탈조차도 사치였던 삶이라고 할까...



누구나 사는 게 너무 힘들어 잠시 엇나가더라도 멀리 가지는 마시라. 어딘가는 반드시 그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출처 https://m.blog.naver.com/jaemyunglee/222589646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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