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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저녁을 굶은 달을 본 적이 있다
게시물ID : lovestory_9307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4
조회수 : 41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2/03/28 20:41:58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1.jpg

 

문태준. 나는 이제 이별을 알아서




그때는 가지꽃 꽃그늘이 하나 엷게 생겨난 줄로만 알았지요

그때 나는 보라색 가지꽃을 보고 있었지요

당신은 내게 무슨 말을 했으나

새의 울음이 나뭇가지 위에서 사금파리 조각처럼 반짝이는 것만을 보았지요

당신은 내 등 뒤를 지나서 갔으나

당신의 발자국이 바닥을 지그시 누르는 것만을 느꼈었지요

그때 나는 참깨꽃 져내린 하얀 자리를 굽어보고 있었지요

이제 겨우 이별을 알아서

그때 내 앉았던 그곳이 당신과의 갈림길이었음을 알게 되었지요

 

 

 

 

 

 

2.jpg

 

조원규, 네게 닿았지




우리는 가로질러

소리도 없이 저 길을 왔다


보렴 눈은 희고 또 푸르다

새벽은 바다 타오르는


너로 인하여 파멸하는 나

네가 없으면 파멸할 나


참 이상하다 나는 불안이

사라질 때 불안을 사랑한다


심해의 야광어 같은 신호등을 지나

찢겨진 신문 널린 계단에 앉아


말한다 나는 너에게

우린 이곳에 닻을 내리지 않아

 

 

 

 

 

 

3.jpg

 

류경무, 어제




캄캄한 방에 앉아 있었다

그 방엔 나밖에 없었다

구석에서

인기척이 났다

그가 누군지 알 수 있었지만

나는 그를 모른 척했다

문을 잠그고 돌아서는 나를 향해

그가 말했다

이만하면 됐잖냐고

그만하라고

나는 무표정하게 앉아 있었다

이제 울 만큼 다 울었다

울고 싶은 건 하나도 없다고

굳이 꼽으라면

당신밖에는 당신밖에는 그리고

마지막으로 얼굴이 흠뻑 젖은 그가 말했다

그만하자고

나를 그만 용서하라고

 

 

 

 

 

 

4.jpg

 

허수경, 네 잠의 눈썹




네 얼굴

아릿하네, 미안하다

네 얼굴의 눈썹은 밀물과 썰물 무늬

하릴없이 달은 몸자국을 안았구나

달눈썹에 얽힌 거미는

어스름한 잎맥을 그냥, 세월이라고 했다

어설픈 연인아

얼마나 오랫동안 이 달, 이 어린 비, 이 어린 밤 동안

어제의 흉터 같은 당신은 이불을 폈는지

어미별의 손은 너를 배웅했다

그 저녁, 울던 태양은 깊었네

그 마음에 맺힌 한 모금 속

한 사람의 꽃흉터에 비추어진 편지는

오래된 잠의 눈썹

시작 없어 끝없던 다정한 사람아

네가 나에게는 울 일이었나 나는 물었다

아니, 라고 그대 눈썹은 떨렸다

네 눈썹의 사람아

어릿하네, 미안하다

 

 

 

 

 

 

5.jpg

 

이승희, 저녁을 굶은 달을 본 적이 있다




얼마나 배고픈지, 볼이 움푹 파여 있는

심연을 알 수 없는 밥그릇 같은 모습으로

밤새 달그락 달그락 대는 달


밥 먹듯이 이력서를 쓰는 시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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